
그러데이션이 매력적인 이정원 작가의 유리 달항아리.
달항아리는 그 자체로 완연히 충만한 둥근 달 같다. 국내외에서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손꼽힐 정도다. 본디 도자의 미학은 기반이 되는 흙과 유약의 빛깔, 선, 표면의 무늬, 제작 기법 등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달항아리는 고유의 층위에 존재한다. 둥글지만 대칭되는 온전한 원을 이루진 않고, 그렇다고 이지러진 것 역시 아니다. 어딘가 비정형적인데 그 자체로 완성형처럼 보이다가도 텅 빈 듯 꽉 들어찼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달항아리를 한국 전통 공예의 대표로 꼽고 “단순함, 겸손함, 검소함 등의 철학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다”라는 평가를 남겼을 정도로 달항아리는 담백한 오묘함을 품고 있다. 흔히 ‘달항아리’라 부르지만 문화재로서 공식 명칭은 ‘백자 달항아리(백자호)’다. 문화재청이 2011년 문화재 명칭들을 정비하면서 확정했다.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부터 등장했다고 알려졌다. 다만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미학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다. 미술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를 필두로, 일본의 미술계에서는 ‘조선 민예품’을 주제로 한 전시를 마련했고, 그 중심에 달항아리가 있었다. 이 시기에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경성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구매한 달항아리를 두고 “이것을 영국에 가져가는 게 나에게는 더없는 행복”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지금도 달항아리의 가치를 논할 때면 종종 회자되는 말이다. 해방 전후로는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와 우현 고유섭이 달항아리에 대한 미학적 탐구를 본격화했다. 당대 문화 예술인 역시 달항아리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등 그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김환기다. “내가 아름다움에 눈뜬 것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할 만큼 그는 충만하고도 슴슴한 도자의 매력에 심취했다. ‘항아리와 여인들’(1951), ‘항아리와 매화가지’(1958) 등의 명작에는 어김없이 달항아리가 자리하고 있다.
달항아리는 여러 국내외 미술사가, 예술인들이 그 미학의 독자성을 인정한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역시 “한국 전통 미술은 자연과 같아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고 간결하고 소탈하며 너그럽다. 때로는 익살맞기까지 하다. 아무 장식과 문양이 없이도 이렇게 크고 너그러우며 덕이 있고 잘생긴 아름다운 항아리가 다시 있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동양 미술사학자 마이클 R. 커닝햄 또한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논평에서 “도자기라는 외형 안에 감춰져 있는 한국적인 목소리의 영예로운 표상”이라는 표현으로 달항아리를 설명했다. 아쉽게도 현존하는 달항아리의 수는 극히 적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와 보물, 개인 소장품을 포함하더라도 그 수가 세 자릿수를 채 넘기지 못한다. 고려 시대 제작한 불화만 하더라도 160여 점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달항아리 특유의 미학과 얼은 동시대 작가들에 의해 다채롭게 변주되면서 그 생명력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간다. 박물관과 미술관, 갤러리에서는 달항아리 전시가 끊이지 않는다. 일례로 최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솔루나아트그룹이 주최한 한중 공예 교류전 <공예의 언어>에서 달항아리는 한국 공예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했다. 솔루나아트그룹을 이끄는 노일환 대표는 “달항아리는 단순한 미적 가치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 한국 공예의 깊이를 보여준다”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도 달항아리의 가치는 시대를 막론하고 그 중요성과 상징성이 계속해서 논의된다. 우리나라 1세대 도예가 김익영과 권대섭 등은 달항아리의 정통성을 이어가고, 사진가 구본창과 화가 최영욱 등은 도자가 아닌 새로운 매체에서 고아한 형태를 구현하는 등의 노력을 거듭한다. 최근에는 박여숙화랑이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이헌정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해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전했다. 달항아리는 여느 문화재처럼 박물관에 박제된 채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계승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나아가 도자에 남겨둔 여백을 자신만의 시선과 해석으로 채워내는 작가들 역시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물성에 대한 실험은 물론, 형태에 관한 변칙적인 접근법 등을 시도하며 도자의 여백에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예술의 우주를 채운다. 자신만의 달항아리를 만들며.
칠흑의 달항아리, 김시영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2019)을 수훈한 청곡 김시영은 35년 동안 국내 유일의 흑자 도예가로 활동해온 작가다. 고려 시대 이후 명맥이 끊긴 전통 흑자를 재현하기 위해 ‘불’이라는 자연의 힘과 흙이 지닌 특유의 물성이 결합해 일으키는 변화에 집중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염의 연금술사’라는 표현으로 그를 지칭할 정도다. 도자의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선 물성의 실험을 위해 전국의 흙을 수집·조합하기까지. 그 결과 흙 안에 잠재된 신비한 색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전통 흑자의 멋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오고 있다. 특히, 그의 ‘흑 달항아리’ 시리즈는 위풍당당한 자태와 자연스러운 이지러짐 같은 기존 달항아리의 정체성에 작가만의 조형 언어를 대입해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물성의 결합으로 이룬 앙상블, 강민성


“과거에 달항아리를 만들었던 도공보다 더 잘 만들 수도 없고, 동일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1세기에는 그에 맞는 달항아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강민성 작가는 기존의 달항아리와 다른, 다양한 재료의 ‘결합’을 시도하며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에 무게를 둔다. 주로 흙, 유리, 금속 등을 사용하나, “재료는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을 위해 쓰는 수단”이라 말할 만큼 새로운 재료를 과감하게 도입하고, 재료 연구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저마다의 특질을 지닌 재료를 결합한다는 점이 사뭇 도전적이지만, 제작 방식은 전통의 관례를 따른다. 그가 달항아리를 만드는 방법은 예부터 전수되는 달항아리 제작 방식인 2개의 발 형태를 합치는 형식으로 이뤄지기 때문.
영성과 명상, 치유의 달, 허유나

뉴욕에서 활동하는 허유나 작가에게 달항아리는 우리의 문화유산과 자신의 예술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문화적 정체성과 물질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불교, 힌두교 등의 종교 특유의 영성과 명상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데에도 힘쓴다. 이는 허유나 작가의 작품이 느림과 성찰, 치유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이유이며, 달항아리의 넉넉한 품과 여백은 이러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더없이 제격이다. “달항아리는 영혼을 바라보는 눈이나 무한히 울리는 주문 같습니다”라고 덧붙이기도. 일례로 푸르른 색을 두른 달항아리 작품, ‘Sacred Echoes’는 가시적인 것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깊이를 지닌다.
도자에 불어넣은 생명의 생동, 이재익

파인 그래프트 작가로 자신을 명명하며, 주로 금속 오브제를 만든다. 그의 작업은 유기적 생명체의 진화와 변이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어 3D 프로그램으로 오브제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금속 판재 결합 방식을 통해 현실에 구현한다. ‘Transition’ 시리즈는 비정형의 달항아리를 형태적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달항아리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생명체의 유기적 표면과 흡사하다고 느꼈던 것. 표면의 불완전성에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읽었고, 마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생물의 피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수만 번의 망치질로 만든 실버 문, 이상협

무게 11kg, 두께 5.5mm 한 장짜리 은판을 망치로만 수천 수만 번 두들겨 완성하는 이상협 작가의 은 달항아리. 처음 공개될 당시 현대 금속공예의 대가, 스즈키 히로시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끝없이 이어가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라며 극찬했다. “항아리의 포만한 선에 중독됐죠. 항아리라는 기器는 한중일에 다 있지만, 그 선과 비율이 모두 다릅니다. 동양 예술에 관심이 많은 서양 컬렉터들은 내 작업을 보고 대번에 ‘네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겠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하는 이상협 작가는 판근 기법을 구사해 작품을 만든다. 왼손으로 크고 무거운 은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접점을 때려 판을 그야말로 종잇장처럼 얇게 편다. 그 후 조금씩 오므려 형태를 만드는데, 완성된 모습을 보면 우직하면서도 섬세한 인상이다.
유리의 물성과 만난 아름다움, 이정원

“달항아리는 조선을 대표하는 이상적인 미감의 도자입니다.” 이정원 작가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유리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때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유리 소재의 특징인 투명성과 불투명성이다. 이를 기반으로 흰색에서 투명으로 이어지는 그러데이션을 통해 기존 달항아리의 단아함과 고아한 매력을 색다른 물성으로 실체화한다. 금박을 활용한 작업도 선보이는데 충만한 보름달 속에 아름다운 금빛 은하수가 펼쳐진 인상이다. 유리판 사이에 금박을 넣고, 블로잉 작업을 하며 자연적으로 찢기게끔 연출한 것.
재와 그을음을 입다, 박지민

예올이 선정한 2024 젊은 공예인, 유리공예가 박지민의 달항아리는 철화백자에서 영감을 받은 지점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백자 표면에 그리던 문양인 매화와 목련, 포도 등을 두 장의 판유리 사이에 넣고 가마에서 가열하면 물질들이 유리 속에서 재와 그을음으로 변형된다. 백자 표면의 사물들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같이 추상적인 형태의 패턴으로 자리하고, 문양이 그려지던 도자, 즉 흙의 물성은 투명하고 시린 유리로 대체된다. 이 같은 박 작가의 달항아리는 재해석과 재탄생을 모두 거친 결과로도 보인다.
COOPERATION 국립중앙박물관, 갤러리밈, 솔루나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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