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2월호

공간, 소리 그리고 예술의 3중주

전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외양은 흡사 거대한 현악기 같다가도, 진동에 반응하듯 파르르 떨리는 스트링을 보면 무용수의 춤사위를 보는 것 같다.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가 공간과 소리의 조우로 구현한 작품 ‘시네마티카’는 비물질적 소재를 공감각적으로 치환해내는 과감함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몰입감으로 한국의 아트 러버를 사로잡았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창화(인물)

아틀리에 오이  1991년 스위스에서 오렐 아에비, 아르망 루이, 파트리크 레몽 3인이 설립했다. 건축, 인테리어디자인, 제품 디자인 및 무대 디자인 등 장르와 학문의 경계를 아우르는 작업을 통해 사물에서 공간까지 총체적인 융합을 고민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공간이 악기가 된다면? 수십 명의 단원으로 구성한 오케스트라가 그러하듯 ‘어마무시’한 장악력과 장엄한 감동이 온몸의 감각을 환기시키지 않을까. 이러한 상상이 바로 서울에서 실현됐다. 지난 10월 30일부터 약 일주일간 성수동에서 열린 ‘제2회 디파인 서울’ 현장에서 말이다. 디파인은 디자인과 현대미술을 조합한 단어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페어로, 디자인design과 현대미술fine art이라는 비슷한 듯 확연히 다른 두 예술의 간극을 연결해 예술을 대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정의를 변화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단순의 의미: 이성적 시대의 본질적 추구’라는 주제로 열린 두 번째 디파인 서울은 작년 대비 1.5배가량 커진 규모로 관람객을 맞았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끈 건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의 특별전 <시네마티카Cinemática>. 전시장 중심에는 얇은 구리 소재의 스프링을 겹겹으로 연결한 프레임이 마치 진자운동을 하듯 초저주파 진동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면서 빛을 포착해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해내는 대형 사운드 설치 작품이 자리했다.

다양한 진동 프레임이 베일처럼 레이어를 만들며 공간을 미세하게 분할하는 데 여념이 없다면 공간을 부드럽게 품어주는 건 국악인 박지하의 음악이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동시에 일렉트로닉과의 장르적 결합을 꾀하며 국악의 현대적인 변용을 보여주는 박지하의 음악은 때로는 현악기처럼, 강렬한 사운드의 일렉 기타처럼 일렁이는 스트링과 공명한다. 전시장에 발을 들인 관람객은 만질 수 없는 소리의 성질이 만질 수 있는 공간적 경험으로 치환됨을 눈으로, 귀로, 피부로 경험하며 소리, 공간, 디자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그 어떤 설명도, 화려한 작품의 나열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소리를 공간과 합치시키는 단 하나의 수단이 불러일으키는 몰입감은 올해 디파인 서울의 메시지와도 결을 같이한다. 한쪽에는 수많은 팝업 스토어가, 반대편에는 공장 지대가 위치한 이 소음 가득한 도시에서 전시는 감각을 정화하는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셈.

얼핏 단순한 형상이지만 마치 조각한 듯 공간을 정교하게 메우는 완성도, 그로 인해 높아지는 관람객의 집중도는 건축과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과 무대연출 분야에서 오래도록 경험치를 쌓아온 아틀리에 오이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테다. 1991년 파트리크 레몽, 아르망 루이, 오렐 아에비 3인이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는 디자인으로 펼쳐낼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무대가 될 공간과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를 항시 최우선으로 한다. 이번 특별전 준비를 위해 몇 차례 서울을 방문했을 정도. 루이 비통, 불가리, 오데마 피게 등 내로라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열렬히 러브 콜을 보내는 데에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깊이 이해하는 시도와 결과로서 이를 고스란히 펼쳐내려는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전시가 한참 계속되던 11월의 초입, 파트리크 레몽과 아르망 루이를 만나 그들이 추구하는 디자인 그리고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원동력에 대해 그간 품어온 몇 가지 물음을 던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전시명이자 작품의 명칭이기도 한 단어 ‘시네마티카’가 물리 운동학을 지칭하는 말이더군요. 전시장의 시노그래피를 보니 그 의미가 더욱 와닿았습니다.

‘시네마티카cinemática’라는 단어가 내포하듯 공간 전체에서 운동학적인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동시에 ‘시네마’, 즉 영화에서나 볼 법한 드라마틱한 시각 요소 역시 전시장에 구현해보고 싶었죠. 운동학적 움직임을 공간 구성과 상호작용하도록 조화롭게 시각화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이를 위해 떠올린 건 너울대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 그리고 악기였어요. 음악을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죠. 음악, 다시 말해 소리는 분명 들리고 존재하며 감각할 수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요소예요. 이를 빛과 구리로 만든 스트링을 활용해 시각적이면서도 동적인 형태로 재편한 작품이 ‘시네마티카’입니다. 이제 아틀리에 오이에게 ‘시네마티카’는 이 3개의 요소를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단어가 됐죠.


말씀하셨듯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소리’, 그리고 이를 구현해낸 방식입니다.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을 텐데요. 작품 구상을 위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비단 이번 작업뿐 아니라 우리가 선보이는 모든 작업은 자연현상을 면밀하게 포착해내는 기민함, 많은 실험과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합니다. 시네마티카의 경우 독일의 물리학자 프란츠 멜데Franz Melde의 실험이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1859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중 팽팽한 줄에 소리굽쇠를 통해 만든 파波를 이용해 역학적 파장이 간섭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전자 진동자를 사용한 실험도 공개한 바 있는데, 우리 셋 모두 그가 보여준 일련의 파동 현상에 매료됐어요. 이번 창작에도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고요.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악기의 현이 진동하는 모습을 떠올린 거죠. 전시장에서 작동하는 이 거대한 현악기의 모습처럼요.


매해 루이 비통과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선보여왔다. 레드 컬러를 입은 ‘스파이럴’ 램프 시리즈 역시 그들이 제작한 것.



올해 디파인 서울 페어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순의 의미: 이성적 시대의 본질적 추구’였습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요?

디자인과 예술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페어의 의도가 뜻깊었습니다. 아틀리에 오이 역시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을 사랑하는 한국 관람객들에게 우리의 철학과 창작 과정을 전달하고 싶었죠. 다만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관객이 우리의 창작 과정과 철학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우리의 작품과 상호작용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많은 배경지식과 현학적인 사유 대신 타고난 신체의 감각을 활용해 전시를 감상하며 작품의 일부가 되어주기를 바랐고요. 작품을 매개로 전하는 우리의 의도가 디파인 서울의 메시지와도 맞물려 있다고 봤어요.


페어가 열린 성수동은 한국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예술 중심지입니다. 매일 수많은 팝업 스토어가 오픈하고 그 반대편에는 공장들이 빼곡히 자리해 어찌 보면 소음의 메카로도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네마티카> 전시가 마치 소음에 지친 이들을 품어주는 방공호 같은 인상도 들더군요. 관람객들 역시 오래도록 전시장에 머물렀고요.

도시의 맥박과 예술 표현 사이에는 분명 강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수동은 젊고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한국 작가들의 창작물과도 닮았죠. 유행의 공식에 따르지 않고 변칙적이며 개개인의 개성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요. 비록 아티스트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스타일, 곳곳에 자리한 아이코닉한 숍들만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네마티카>를 기획하며 세운 목표는 감정과 기억에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실마리를 선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시에서 어떤 인상을 받든 이곳을 찾은 관객들이 독특한 순간을 경험했다면 그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목표를 이뤄냈다고 봅니다. 당신이 말해준 감상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웃음)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한국 전통 음악가 박지하와 함께 선보인 라이브 퍼포먼스인 듯합니다. 전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그의 곡이죠. 전시 공간에서 한국 고유의 소리를 선보이는 라이브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장르 간의 교류, 문화적인 융합은 새롭고 독창적인 결과를 창조해내는 가장 좋은 씨앗이 됩니다. 우리와 다르게 사고하고 창작하는 다른 이들을 보며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열리는 페어인 만큼 지역적인 특색과 역사가 담긴 예술을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운드 스케이프를 완성한 박지하는 피리, 생황, 양금 등 한국의 전통악기를 기반으로 여러 사운드를 창조해왔습니다. 특히나 한국 악기의 소리와 표현 방식을 여타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통해 현대적 사운드로 결합하는 작업도 선보인 바 있죠. 그 역시 협업의 여정과 진가를 잘 이해하고 있더군요.



세계 최대의 시계 축제 바젤월드에서 불가리의 전시장 시노그래피를 디자인했다.



올해 디파인 서울의 핵심 볼거리 중 하나였던 뮤지션 박지하의 라이브 퍼포먼스. 전시장 내에서 흐르는 국악 선율이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는 후문.



올해 6월 공개한 아틀리에 오이의 ‘더 공’ 건축 프로젝트. 3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완성했다.



2014년 ‘디자이너의 토요일’ 페어에서 USM과 협업해 선보인 전시 <라비 앙 로즈>. ⓒ USM Modular Furniture



전시 포스터에 적힌 “아틀리에 오이 프리베atelier oï PRIVÉ”라는 문구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내밀한’이라는 뜻의 단어 프리베를 붙인 문구에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나요?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성사되는 결과물이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디자인 철학과 아이디어를 최대한 녹여내지만 분명 클라이언트의 생각 역시 녹아들 수밖에 없죠.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왕왕 있고요. “아틀리에 오이 프리베”라는 문구는 오직 아틀리에 오이만의 철학과 디자인적 가치를 실현한 작업물에만 붙이는 수식어예요. 우리 스스로가 클라이언트가 되는 셈이죠. 가장 사적이고도 내밀한, 가장 우리다운 결과물에만 붙이는 일종의 애정 표식이라고나 할까요?


실제로도 루이 비통, 오데마 피게, 불가리 등 유수의 럭셔리 하우스와 협업을 선보였죠. 러브 콜을 받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우리는 모든 프로젝트를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작가가 되어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를 완결내는 데 모든 힘을 쏟죠. 실제로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시행하는 전 과정을 ‘스토리텍처Storytecture’라는 단어로 정의합니다. 앞서 말한 아틀리에 오이 프리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토리텍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목적성이 다르니까요. 특정 상황이나 요구, 맥락에 따라 수정할 수 있게끔 변화를 수용하고 맞출 수 있어야 하죠.


아틀리에 오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재료, 전통, 문화, 사람, 자연을 존중할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조급해하지 않는 너른 마음과 열린 태도가 럭셔리한 삶, 럭셔리한 사람을 만들죠. 이는 동시에 우리의 디자인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손이 기억하는 바를 최우선으로 따르되 작품을 구성하는 소재나 작품이 놓이는 지역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보는 이를 생각한다는 점에서요.


현재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애석하게도 무엇 하나 공개할 수 없다는 게 슬픕니다. 오래도록 꿈꿔온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아틀리에 오이가 창립되기도 전 우리 셋 모두를 매료시킨 회사와의 협업이 드디어 성사된 것인지라 매일이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내년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공개할 것이라는 정도만 알려드릴 수 있겠네요.



COOPERATION  디파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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