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2월호

[THE FACE OF 2024] 혼종과 뚝심의 스토리텔러 장재현

한동안 싸늘하게 얼어 있던 극장가의 냉기를 몰아내고 ‘천만 영화’ 타이틀을 획득한 영화 <파묘>. 무려 오컬트 장르로 대중의 마음을 훔친 이 영화의 성취는 장재현 감독의 꿋꿋한 진심과 대범한 행보에서 탄생했다.

EDITOR 이연우


<파묘>의 희귀한 반짝거림은 ‘천만 영화임에도’ 그토록 호불호가 갈렸다는 데 있다. 오컬트 장르의 흥행력은 이미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보여준 바 있지만 그건 한 번의 사례로 그치고 말 수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장재현 감독은 <파묘>를 성공시킴으로써 <곡성>과 <파묘>로 이어지는 무속 신앙의 추체험이 한국인의 엔터테인먼트임을 검증한 셈이 됐다. 게다가 <파묘>의 흥행은 덩달아 오컬트 장르를 향한 분분한 논의도 진행시켰다. 그가 일관된 오컬트 여정을 지속 중인 감독이어서다.

<파묘>에 이르러 나는 이제 장재현 감독이 긍정적 의미에서 혼종적(패스티시pastiche) 감각의 소유자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는 오컬트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엑소시스트>의 외연에 한국의 군대·입시 문제를 섞고(<12번째 보조사제>), 탱화 옆에 목사를 세워두고(<사바하>), 나이 든 지관 옆에 르메르와 컨버스를 두른 MZ 무당을 심는(<파묘>)다. 그의 취향은 <파묘>에서 다소 난감한 설정으로 ‘불거진다’. 오묘한 긴장을 자아내는 오컬트를 능란하게 끌고 가던 감독이 후반부에서 갑자기 ‘특촬물’풍의 다이묘를 등장시킬 때, <파묘>에 대한 입장은 순식간에 갈리고 만다.

<파묘>의 혼종적 구성을 두고 논의하고 싶은 것은 영화 만들기의 실제에서 발휘되는 연출자의 뚝심, 그리고 고집의 문제다. 약 천만의 관객이 장재현의 고집을 확인했다. ‘천만을 위한’ 기획 영화가 결코 안겨주지 않는 경험이다. 예컨대 장재현 감독은 다이묘를 재현할 때 특수 효과를 최소화했다. 특수 분장에 힘쓰고 실제 촬영의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과정에 대해 그는 “이런 부분이야말로 내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발악 같은 것”(<씨네21> 인터뷰)이라 말한다. 이 대목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현실감이다. 일본의 원귀에 극대화된 실물감을 부여하는 작업은 <파묘>가 무속을 파다가 식민 통치의 잔재를 발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명백히 역사 인식의 부각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무수한 영화가 이 반일과 항일이라는 민족주의적 코드에서 납작하게 촌스러워지곤 했다는 것. 그러나 <파묘>는 다소 황당한 방식으로 다른 길을 간다. 다이묘의 촌스러움, 그로 인해 더욱 선명하게 감지되는 장르적 비틀기가 외려 주제의 노골성이란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미뤄두게 만든다. 오컬트에서 히어로물로, 그러니까 강한 장르에서 또 하나의 강한 장르로 옮겨가면서 가히 뻔뻔하게 관객의 주의력을 빼앗는다고도 말해보고 싶다. 이것은 재미를 위한 전략일까, 아니면 주제를 감싸기 위한 전략일까. 어느 쪽이든 그 시도는 흥미롭다. 대중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그는 논쟁적인 전략을 세웠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방식을 끝까지 실행시켰다.

영화 도입부에서 인물들이 보이스오버를 통해 자신의 직업을 천명하는 대목으로 돌아가보자. 히어로 영화의 외연을 뚫고 들어가면 헌신과 우수성에 노력을 기울이는 주인공이 활약하는 직업 드라마의 전통이 숨 쉬고 있다. <파묘>의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화림의 대살굿 신은 그 섬뜩함이나 자극성에 방점을 둘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직업적 능숙함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전문가 드라마의 만족스러운 한 구간으로 바라보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장재현 감독은 무속 신앙만큼이나 전문가의 집요함에서 신비를 찾는다. 이쯤에서 <파묘>의 주인공들에 관해 ‘묘벤져스’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던 것을 떠올려본다. <파묘>의 4인방은 오컬트적 현상의 당사자가 아니라 해결사로서 서사에 진입한 뒤 후반부에 다이묘와 마주 선 순간에 이르면 마블 영화에서 빌런과 마주한 대결자의 위치에 선다. “젖은 나무는 쇠보다 질기다”라는 식의 음양오행적 논리는 일종의 멀티버스를 떠받치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달리 말해 <파묘>의 성취는 오컬트 전문가인 감독이 스스로 자기 장르에서 빠져나와 하나의 개별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오컬트 영화에선 미지가 논리를 이기고, 악에 의해 곧잘 모두가 파괴된다. 그러나 장재현 감독은 선명한 물리적 실체를 들이밀고 유능한 베테랑의 승리로 귀결 짓는다. 다시, 이것을 장재현의 세계관이라 불러볼 수 있다면? <12번째 보조사제>의 신부와 <사바하>의 목사, <파묘>의 무당과 지관이 어느 날 한자리에서 만날 수도 있다고 기대해보게 된다.

그의 성취 앞에서 섣불리 K-오컬트의 이정표를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기다려지는 것은 그저 장재현의 다음 영화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파묘>를 본 천만이 앞으로의 또 다른 호불호를 경험하는 데 전보다 좀 더 익숙해졌으리란 것. 한층 더 상찬하고 논쟁하고 불신할 준비를 마쳤다는 것. 더 혼종적인 것들로 가득 찬 세계관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재현 감독이 영화 내적으로 불러일으킨 굵직한 찬반의 반응은 비록 약간 투박해 보일지 몰라도 뜨거워서 귀하다. 그리고 한국 영화 신작이 희박해질 내년과 내후년 즈음엔 덜컥 그리워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소미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취재팀장. 비평지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글과 말로써 관객과 영화를 더 가까이 잇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WRITER  김소미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