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클래식 음악계에는 놀라운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 출신 음악가들의 분야별 콩쿠르 우승 소식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악장, 수석 혹은 종신 단원으로 활약하게 된 연주자들의 이름이 꾸준히 발표된 것.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 상주음악가가 됐고, 작곡가 진은숙은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이라고 여겨지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받았다. 물론 한국인이 진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어마어마한 해이기도 하다. 여기에 20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빼놓을 수 없다. 2022년 18세 나이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해 세상을 놀라게 한 소년은 올해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에서 피아노 부문 음반상과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신인이던 스타 연주자가 2년 만에 권위 있는 음악평론가들이 뽑은 2024 최고 피아노 음반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임윤찬. ⓒ The Cliburn
클래식 음악 시장은 모차르트 같은 젊은 천재의 등장에 관심이 많았다. 팬데믹의 그늘에서 막 벗어나고 있던 2022년 6월,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마치 천재 탄생을 예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콩쿠르 영상 제작과 중계에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리스트 ‘초월기교 연습곡’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연주 영상은 지금도 조회수를 갱신하고 있다.
음악사에는 스타가 됐지만 과도한 관심과 무대 위 긴장을 감당하지 못해 중도에 연주를 접는 음악가들이 많았다. 198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자였던 알렉세이 술타노프,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초대 우승자였던 반 클라이번도 연주 생활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고, 바르샤바 국제 쇼팽 콩쿠르 1985년 우승자 스타니슬라프 부닌, 2000년 우승자 윤디 리는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퇴보했다. 탁월한 기량으로 단시간에 시선을 끌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자기 서사를 깊이 있게 만들어내는 사람이 오래도록 사랑받게 된다. 콩쿠르 우승 이후 2년, 임윤찬은 그간 어떤 무대에 섰고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올해 2월부터 시작한 임윤찬의 월드 투어는 연주 레퍼토리의 조합이나 완성도, 즉흥 해석의 범위는 물론 함께 협연한 지휘자, 오케스트라, 연주 장소까지 깜짝 놀랄 만하다. 먼저, 일본과 뉴욕에서 선보인 쇼팽 에튀드 전곡 연주는 관객은 물론 일본과 뉴욕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특히, ‘에튀드 10번’ 12개의 곡 해석은 감탄과 더불어 많은 의견을 불러일으킨 연주였다. 앨범에서도 그의 독특한 흐름 설정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지만, 공연장에서는 리허설 때마다, 장소를 옮겨 연주할 때마다 매번 다른 해석을 ‘실험’하며 자신만의 에튀드 해석을 들려주어 더욱 놀라웠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젊은 연주자의 뛰어남을 즐기지만, 연주자의 역량과 도전할 수 있는 레퍼토리의 범위를 나이로 제한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젊은 음악가의 베토벤 연주에는 쉽게 감탄하지 않으려 한다든가, 보편적인 해석에서 벗어난 연주에는 ‘나이가 어린 탓’이라며 마뜩찮게 생각한다든가. 더욱이 쇼팽 에튀드처럼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레퍼토리에 대해서는 젊은 음악가의 신선한 해석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쿄에서 임윤찬의 쇼팽 연주를 듣는데, 일본인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엔 너무 독특해서 그때마다 열심히 필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자체를 즐기고 싶어 펜을 내려놓았다.” 이는 쇼팽의 기존 해석에서 ‘해방됐다’는 뜻 아닐까. ‘에튀드 10번’의 12개 곡과 ‘에튀드 25번’의 12개 곡, 총 24개의 연습곡은 하나하나가 난이도와 서사로 꽉 채워진 쇼팽의 역작이다. ‘연습’하라고 쓴 곡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마스터피스인 셈. 무대 위에서 ‘잘 치는’ 연주도 어렵지만, 곡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더욱 어려운 곡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에서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전곡 앨범(DECCA)이 피아노 부문 음반상을 수상한 뉴스는 꽤 큰 이변이다. 콩쿠르는 신인 연주자를 발굴하기 위한 경연이지만, 음반상은 이미 피아니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전 세계 수많은 연주자와의 경쟁이기 때문. 한 해 동안 출시한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앨범 중 단 3장만이 후보에 오르게 되는데, 임윤찬은 자신의 앨범 2장을 명단에 올려놓고 상을 받게 된 것이다. 후보에 오른 임윤찬의 또 다른 앨범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리스트의 ‘초월기교 연습곡’을 연주했던 실황 앨범. 18세가 되자마자 처음 참가한 성인 콩쿠르에서 연주한 실황 앨범이 후보에 오른 사실도 기가 막힌데,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고전적 피아니스트들의 해석을 떠올리게 한다”라는 극찬까지 쏟아졌다. 한편, 함께 후보에 오른 폴란드 피아니스트 피오트르 안데르셰프스키는 수차례 음반상을 받아온 중견 피아니스트다. 2021년에는 바흐 앨범으로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을 했는데, 올해는 임윤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월부터 쇼팽을 연주해온 임윤찬은 4월 말 즈음, 향후 리사이틀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연주한다고 발표했다. 멘델스존의 ‘무언가’, 차이콥스키의 ‘사계’,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난곡을 내려놓고 또 다른 어마어마한 작품을 갖고 등장한 셈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풍성한 소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라벨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표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전람회에서 그림을 보며 이동하는 사람, 그림 속 이야기, 전시장 밖 교회에서 들려오는 먼 종소리까지 여러 장면을 묘사한다. 임윤찬은 피아노라는 악기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이 작품에서 선명하게 보여줬다. 특히 소리의 울림과 셈여림, 엇박자를 이용해 작품 속 시공간을 구분해 표현해내는 해석과 압도적인 몰입감은 다소 충격적일 만큼 놀라웠다(이 프로그램을 연주한 베르비에 페스티벌 실황은 메디치 TV, 도이체 그라모폰의 스트리밍 서비스 ‘스테이지 플러스Stage+’에서 볼 수 있다).

연주자의 입지는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협연 무대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임윤찬은 지난 2월 투간 소키예프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 협연을 시작으로, 3월 클라우스 메켈레와 ‘오케스트라 드 파리’ 투어를 했고, 4월에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임윤찬과 호흡을 맞춘 지휘자 마린 알솝과 볼티모어 심포니의 협연 무대가 있었다. 5월에는 샤를 뒤투아가 이끄는 루체른 심포니와 협연을 했으며, 7월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BBC 프롬스에서는 각각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파보 예르비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했다. 8월에는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로 LA 필하모닉과 협연했고, 9월에는 자난드레아 노세다가 지휘하는 내셔널 심포니 협연, 10월에는 바실리 페르덴코 지휘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투어, 11월에는 스승 손민수와 함께 대니얼 라이트가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협연을 마친 후 12월 1일까지, 야마다 가즈키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협연 무대가 이어졌다. 함께 무대에 오른 지휘자와 교향악단의 이름을 보면, 2022년 콩쿠르를 통해 데뷔한 신인 연주자의 일정인가 싶다.
올해로 20세가 된 젊은 피아니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작품의 연주도 진부하지 않다는 점을 꼽고 싶다. 우선, 임윤찬은 진부하지 않은 레퍼토리를 선택한다. 특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리사이틀에서는 레퍼토리 선택 폭이 넓고 표현의 영역도 훨씬 자유롭다. 같은 악보를 보면서도 저렇게까지 다른 얘기를 연주할 수 있을까 싶은 임윤찬만의 해석, 그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흥미롭다. 기술적으로 악기를 잘 다룬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든 맘껏 풀어낼 수 있는 좋은 도구를 가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품마다 건반 터치 자체를 바꿔 접근하려는 이 연주자에게는 ‘잘 친다’는 말이 의미가 없고,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가’에 주목하게 된다.
그동안 임윤찬이 연주한 작품들 중 가장 파격적으로 다가온 작곡가는 바흐, 베토벤, 리스트였다. 임윤찬의 베토벤 초기 소나타 해석은 베토벤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갖게 해줄 만큼 파격적이었고, 리스트의 ‘순례의 해 2년 이탈리아’ 전곡 연주는 많은 사람이 갖고 있던 리스트에 대한 오해와 불편함을 불식시킨 것은 물론 리스트가 얼마나 놀라운 음악가인지 새삼 깨닫게 해줬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전 인터뷰지만, 그의 리스트 연주에 매료돼 작곡가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임윤찬은 이렇게 답했다.
“리스트 음악은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리를 먼저 세우고, 피아노 뒤에 오케스트레이션이 있다면 어떨까 항상 생각하면서 공부해요. 기술적으로 뭘 더 해보려고 하면 음악이 안 만들어지는 걸 느꼈어서, 무대에서는 그냥 다 버리고 음악만 생각해요.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면 손과 발이 저절로 움직이게 된다는 걸 좀 믿고 있습니다.”
임윤찬을 가르친 손민수 교수는 리스트 스페셜리스트인 러셀 셔먼의 제자다. 스승의 모든 것을 닮고 싶었다는 손민수 교수는 바흐, 베토벤, 리스트로 이어지는 작품 연구에 천착해왔는데, 자신에게 스승 손민수는 ‘신’이라고 얘기한 임윤찬의 다음 행보가 예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내년부터 펼쳐질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감히 임윤찬이 생각하는 바흐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고 할 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훌륭한 클래식 음악가로 성장하려면 어릴 때 재능을 발견해야 하고, 서둘러 유학을 떠나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유학을 떠난 사람들 중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국에서 충분히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유학을 떠난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임윤찬 같은 연주자도 있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의 정서와 애정과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명문 음대에 들어가고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과 음악이 재밌고, 음악 하는 것이 한없이 좋아서 연주자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 사이의 간극은 꽤 크게 느껴진다.
17세였던 임윤찬에게 ‘선생님이 미치는 영향과 유대 관계’와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는데, 그때 그가 했던 답을 다시 옮겨본다.
“저에게 선생님은 거의 종교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거의 모든 것을 믿고, 선생님 역시 저를 진심으로 지지해주세요. 제가 너무 못 칠 때는 하나하나 알려주시긴 하지만, 평소에는 제가 만들고 싶어 하는 음악의 방향이 있으면 모든 걸 믿고 들어주시는 스타일이에요. 지금까지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저만을 위해서 음악을 했어요. 앞으로도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제 음악을 할 겁니다.”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자 공연 기획사 크레디아의 계간지 <클럽발코니> 편집장. 한국일보 ‘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칼럼을 격주로 게재하고 있으며, 음악인들을 인터뷰한 단행본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를 집필했다.
WRITER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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