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2월호

[THE FACE OF 2024] 한국문학의 또 다른 시간 한강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물음에 응답하는 이야기, 문학은 그렇게 우리의 삶에 말을 건다. 올해 한국 문학은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둔 한강 작가로 인해 새로운 영토를 획득했다.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장으로 험난한 역사 속 개인의 삶을 포착해내는 한강 작가,  그의 이야기로 인해 우리는 조금 더 굳건히 살아갈 힘을 얻는다.

EDITOR 이연우



한강이 한국인과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 문학상은 총 121명에게 주어졌지만, 한강은 여성 작가로는 18번째 수상자다. 아시아 국가 작가로는 2012년 중국 남성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2022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는 수상 소감에서 “노벨상은 남성을 위한 제도”라고 지적하면서 “전통에 얽매이는 것은 아마도 더 남성스럽게 보이고, 그것은 서로에게 권력을 전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세계에 알린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문학계가 공정한 시대, 개인의 정체성이 공로를 가리지 않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준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들은 세계문학의 장이 ‘남성/여성’, ‘서구/비서구’의 위계질서에서 그동안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강의 수상은 이 모든 완강한 위계에 균열을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 위계는 한국문학의 내부에도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노벨 문학상에 대한 한국인의 갈증은 ‘서구=중심=보편’이라는 ‘타자’의 인정을 목말라하는 것이었고, 한국문학이 주변부에 속해 있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구 중심의 ‘보편’이란 그 자체로 제국주의적 허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학과 지식 시장에 일종의 위계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세계문학은 영어·프랑스어·독어로 창작된다’는 것은 허위지만, 그 허위가 오랫동안 세계문학 시장을 지배해왔다. 이제야 한국인은 ‘번역되지 않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처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문학이 지금 경험하는 것은 이 예외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문학의 패러다임이 바뀐 상황, 한국문학의 급격한 ‘시간 이동’이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사이에 일종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감각은, 한국문학의 주변부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한국문학은 ‘한국어 문학’일 수밖에 없고 한국어 문학의 시장은 상대적으로 협소하다. 문학 시장의 협소함은 한국문학 내부의 양극화를 만들고 다양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한국어 문학이 세계문학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번역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기간 역시 짧지 않다. 이를테면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가 세계문학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6년으로 1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이 상징적인 시간, 그러니까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사이에 적어도 ‘10년’의 시차가 존재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시차는 한국문학이 보편적인 세계문학의 장에서 떨어져 있는 공간적·시간적 거리 감각에 속한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이 시차와 거리 감각에 파열을 만들었다. 이제 한국문학의 시간은 세계문학의 시간과 거의 동시간대에서 흐르게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부커상 수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보자. 한강의 작품들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익숙한 문법의 대중적인 작품도 아니었다. 한국문학이 근대의 출발 이후 ‘남성·이성애자’를 문학의 주체로 상정해온 역사는 오래되었다. 한국문학의 재래적인 정전들은 대부분 남성 작가의 것이다. 한국의 여성 문학은 1980년대 이후 가부장적 상징 질서를 뒤흔드는 언어들을 생산해왔고,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는 한국문학과 문학사 전체를 근원적으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문학의 흐름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었다. 세계문학의 중심이 아시아의 여성 언어에 주목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의 흐름이었다. 아시아 여성은 지역적으로 그리고 젠더적으로 이중으로 주변화되어 있어서, 세계문학에서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계기들이 한국문학의 중심에서 약간 비켜나 있었던 한강을 세계문학의 중심 무대에 세워주었고, 이것은 다시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동시에 변화시키는 예외적인 에너지가 되었다.

한강 문학이 가진 독창성의 가장 큰 부분은 ‘성숙한 남성의 서사’로 상징되는 재래적인 소설 장르의 규범을 완전히 넘어선다는 것이다. 시와 소설의 제도적 구분과 장르 규범은 서구 근대 장르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고, 이것은 본래적인 것도, 진리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적인 글쓰기라는 차원에서 이런 장르 개념은 불변의 것은 아니다. 노벨 문학상 발표에서 많이 언급되는 표현은 “혁신적인 시적 산문”이라는 것이다. 이 표현은 적확한 논평이겠지만, 문학에 대한 모든 논평이 그런 것처럼 완전하지는 않다.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바로 다음 해에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초기 활동은 단편소설에 집중되었고, 그 작품들은 창작집 <여수의 사랑>(1995)에 수록된다. 그의 시들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에 묶인 것은, 등단 20년 후 5권의 장편과 중편이 출간된 뒤의 일이다. 표면적으로는 한강 작가의 문학적 여정이 시를 잃어버리고 소설의 세계에 집중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반대의 관점도 가능할 수 있다. 작가는 계속해서 시적인 글쓰기를 진행해왔다고 말이다. 유럽에 아직 한강 작가의 시집이 번역되지 못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덜 알려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어쩌면 “혁신적인 시적 산문”이라는 논평의 ‘불완전함’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한강의 거의 모든 소설은 시적 은유와 도약과 환상으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에서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문득 알게 되는, 이 기습적인 상실감의 순간은 소설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수의 사랑>의 도입부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에 등장하는 여수라는 이미지는 상실의 근원지이며, 귀향의 충동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애도 행위이다.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가부장적 폭력을 채식이라는 방식으로 거부하는 여성적인 존재가 식물로 변신하는 설명되지 않는 환상이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죽은 소년의 목소리가 문장으로 발화되는 것은 재래적인 소설의 규범 안에서 설명될 수 없다. 한강 장편의 또 다른 절정인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시작과 끝,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억의 탐색에는, 우주의 신비와 생의 기원을 둘러싼 압도적인 물리학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의 소설들은 이야기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이미지의 동력으로 움직인다. 한강의 독창성을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목소리의 리듬 자체이다. 소설이 있을 법한 현실의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배치하는 것이라면, 한강의 문학에는 그런 소설의 규범을 넘어서는 강렬한 이미지와 시적인 목소리가 흘러넘친다. 한강은 <바람이 분다, 가라> 출간 이후 “소설의 방식을 부수면서, 동시에 소설의 육체를 가진 소설”을 말한 바 있다. 그의 문학들은 ‘소설의 육체’를 관통하는 시적 글쓰기의 여정이다.

한강 문학은 인간의 참혹함과 연약함 안에서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언어들로 구성되며, 인물들의 행위는 사라진 대상에 대한 기이한 ‘애도’의 형식에 가깝다. 애도는 어떤 대상의 상실과 부재 앞에서 그 기억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남은 자’의 중요한 문제이다. 한강의 많은 문학은 ‘다른 애도’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독창성을 갖고 있다. 애도 행위는 삶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시적인 목소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될 수 있다. 가령 작가가 시집에서 “영혼의 안쪽을 보았다”고 한 마크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대면하는 것은, 모든 서사가 응축되어 ‘영혼의 피 냄새’를 맡은 듯한 충격이다. 거기에는 모든 이야기가 폭발할 것처럼 하나의 색채와 이미지로 응집되어 있다.

악몽 같은 참혹함과 얼음 같은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이미지들과 이탤릭체로 등장하는 환청과 신음 같은 목소리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2017년 노르웨이 문학의 집 강연 중)이 문학이기 때문 아닐지.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소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한 무거운 애도를 끝낼 수 없다면, 뜨거운 애도의 언어들은 저 죽음들을 삶 안쪽으로 끝없이 불러낸다. 한국문학은 이제 그 목소리에 힘입어 창의적 다양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동시대의 시간을 얻게 되었다. 한강이라는 이름의 ‘다른 시간’이 이제 시작되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로 한강 작가의 책 <여수의 사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출간한 ‘문학과지성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장소의 연인들>, <작별의 리듬> 등의 책을 펴냈다.



WRITER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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