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4년 11월호

아티스트 전형산, 예술의 주체가 된 비음악적 사운드

일명 소음 혹은 잡음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소리가 전형산 작가에게는 더없이 적합한 예술의 소재가 된다. 그는 노이즈를 ‘비음악적 소리’라 명명하며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작품의 형태로 현현해내는 소리 노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우경


전형산  의미 없는 잡다한 소리, 즉 노이즈를 탐구하고 이를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결부시켜 논의를 확장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5월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한편,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했다. 지난 9월에는 서울아트위크 기간에 맞춰 장충동 일대를 무대로 열린 <2024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장충> 전시에 참여했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5회 광주비엔날레의 핵심 화두는 단연 ‘소리’였다.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인지할 수 있으며 인간을 자극하는 ‘청각’을 다룬 작품 또한 연일 화두에 올랐다. 전형산 작가의 2018년작 ‘불신의 유예#3; Contact’ 역시 비엔날레 현장을 지켰다. 전시장에는 시시각각 반짝이며 인간이 차마 인지하지 못할 만큼 낮은 음역대의 주파수를 잡아내는 여러 개의 안테나가 자리했다. 중앙에는 원통형 기계장치가 회전을 거듭하며 무분별하게 캐치한 주파수를 해체하고 이를 무작위로 재편해 이를 전시장을 에워싼 스피커로 배출하듯 쏟아냈다. 관객은 일체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소리를 쉽사리 해석할 수 없을뿐더러 어쩌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전시장을 떠나지 않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기계장치가 내뿜는 진동 또한 속절없이 받아내야 한다.

자신을 ‘소리 노동자’라 표현하는 전형산 작가는 일정한 서사와 리듬이 있는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를 다루는 대신, 노이즈로 취급받는 잡음, 즉 비음악적 소리를 작업의 소재로 삼는다. “우리가 라디오를 들을 때면 91.9MHz나 102.7MHz 같은 특정 채널에만 주파수를 맞추잖아요. 두 채널 사이의 주파수가 제 존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아무리 시그널을 보내봐도 청취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시그널은 그저 지지직 소리를 내는 노이즈로 치부됩니다. 그 소음이 마치 저 자신처럼 느껴졌어요. 작가로 활동하며 세상에 끊임없이 작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던지지만 듣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그저 노이즈이며 존재론적 가치를 잃고 소멸할 테죠. 이건 비단 저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회라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상 사람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얘기예요.” 작가가 노이즈를 ‘비음악적 소리’라 명명하며 예술의 소재나 매체로서 기능하도록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한 다음 이를 재배치, 구조화하는 작업에 매진하는 이유다.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 역시 그 연장선에서 탄생했다. 전형산 작가가 굳이 노이즈를 비음악적 소리라는 대체적 표현으로 명명하는 이유는 감각에 대한 근원적인 의구심 때문이다. 우리가 귀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소음이라 판단하고 인식하는 일련의 체계 자체가 사실 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교육을 통해 학습된 것일 수 있음을 놓치지 않은 것. 소음과 노이즈라는 단어 자체가 지니는 부정의 뉘앙스가 있기에 관객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작품 속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소음으로 간주한 채 작품을 감상하는 걸 염두에 두고자 한 의도다.

최근 작가는 소리를 더 주체적인 매체로 바라보고 있다. 비음악적 소리가 설령 불완전할지라도 개인의 강렬한 의지를 담아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 안테나, 스피커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마이크’가 등장한 데에는 이러한 의도가 담겨 있다. 서울아트위크 기간에 맞춰 장충동 일대에서 열린 <2024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장충> 전시에 참여 작가로 선정된 그가 선보인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작품 ‘배타적 이접들#2; 바람의 속삭임(wish)’에서도 어김없이 마이크가 등장한다. 해당 작품은 삼국유사 속 설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모티프로 삼아 만들었는데, 16개의 움직이는 스피커와 안테나로 기계 대나무 숲을 구현한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작가가 창조해낸 기계 대나무 숲 안에서는 바람 소리나 타인의 목소리, 기묘하게 변조된 소리가 혼재되어 울려 퍼진다. 작품 앞에 선 관객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순간, 그 소리는 작품이 내는 소리와 모호하게 겹쳐지다 마침내 이전과는 또 다른 소리가 탄생한다. 기묘한 사운드를 내는 기계 숲에서 관객의 소리는 소음이 아니며 도리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주체로 거듭난 셈이다. 작가가 작품이라는 이름의 환경을 제시하고 관람자가 그 환경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그 환경 속에서 어떠한 것을 지각하고 느낄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궁극적인 목표를 묻는 질의에 전형산은 생각에 잠기다 이내 ‘정진’이라는 대답을 건넸다. “진짜 작가가 되고 싶어요. 안주하지 않는 그런 예술가요. ‘정진’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가 않네요.” 11월에는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그가 관객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를 전시장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는지.



INSPIRATION IN LIFE

비음악적 소리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모든 소리를 예술로 확장하는 전형산 작가의 일상을 이루는 것들.



아날로그 기계장치 등으로 거대한 소리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전형산 작가의 작업실에는 늘 작업용 공구가 즐비해 있다.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공구를 보면 작업을 향한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전형산 작가는 대학 시절 밴드 동아리에 가입해 일렉 기타를 연주한 적이 있다. 정확한 운지법이나 연주법이 필요한 악기인 만큼, 즉흥성 있는 사운드 퍼포먼스를 선호하는 그와는 다소 결이 다른 악기임을 느꼈다고.



손으로 무엇이든 창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는 여러 기물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조합해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사격 총을 활용해 만든 작품에서 그의 손재주가 어느 정도인지 쉬이 가늠해볼 수 있다 .



소리를 작품의 주 소재로 활용하는 만큼 각색의 음향 장비를 구비해두고 있다. 그의 작업실을 면밀히 살펴보면 “와, 이런 것도 가지고 있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장충동에서 열린 <2024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장충>에 출품한 작품 ‘배타적 이접들#2; 바람의 속삭임(wish)’. 묘하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전형산 작가 작업실 한편에 걸린 작품 도안. 현재는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작품을 구상한다.



인터뷰를 위해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당시 작업대 위에 올려져 있던 작품. 올해 11월 열리는 개인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손재주가 좋아서 직접 스피커 등의 음향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컬러풀한 스피커 역시 그가 직접 제작한 것이며, 간혹 스피커 제작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불신의 유예#3; Co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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