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1월호

4인의 만화경-수린

11월 6일부터 10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세 번째 럭셔리위크 전시 <만화경Kaleidoskop>이 열린다. 무언가를 탐구하고, 재해석해 색다른 시각과 정제된 미학으로 소개하는 ‘만화경’ 같은 시간에 초대받은 작가 안상수, 유의정, 김성국, 수린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경옥(인물)


수린  3D 프린팅을 활용해 조각을 만드는 작가. 전통과 현대라는 경계를 허물며, 한국의 문화를 현대적 미디어 환경과 글로벌한 감각으로 풀어낸다.



잊히는 것들에 대하여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백자처럼 깔끔한 모노톤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추측건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업이 차분해서 그런가 봐요. 하지만 저에겐 화려한 탱화도 멋지게 보입니다. 강렬한 색감이 한국인의 열정을 대변한다고 할까요?”

수린의 작업은 ‘한국적’이란 단어를 제외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3D 프린팅으로 만든 조각 작품 ‘석탑’이 특히 그렇다. 첫인상만 보면 금방이라도 나, 너, 우리의 행복을 빌어야만 할 것 같다. 전시장에서 석탑 주변에 배치한 신물神物을 닮은 오브제도 마찬가지다. “행복하시고, 부자 되세요” 등의 문구를 표면에 새긴 까닭에 ‘내가 이만큼 당신에게 애정을 쏟고 있다’라는 마음을 전하는 느낌도 든다. “어릴 때 가족과 여행하면서 절에 가는 일이 잦았어요. 석탑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기도하는 풍경이 저에게 큰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거기에 자리한다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형태가 있다는 믿음도 생겼고요. 시간을 돌이켜보니, ‘복을 비는 행위 중심에 있는 석탑, 동상에 어떤 메커니즘이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작업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너무 종교적으로 해석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질문을 던져볼게요. 여러분에게 경건, 소망, 바람 같은 단어의 뉘앙스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수린의 작품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노라면, 흥미롭게도 만다라가 연상된다. 이러한 묘한 기시감은 좌우대칭, 양옆으로 뻗어 나가는 형상에서 기인한다. 과거 수행자들은 만다라를 그리면서 본질을 찾고자 했는데, 작가 역시 작업하는 동안 내려놓은 고뇌, 관념, 미련 등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오브제를 제작할 때 무작정 100개 정도 스케치합니다. ‘반복’을 무언가 내세워야만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불교적인 개념을 좋아해서 무념 또는 욕망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를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작업하는 공간엔 물건을 거의 두지 않죠. 저는 기본적으로 형형색색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자칫 잘못하면,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아 이미 정해진 길에서 이탈할 수도 있어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디톡스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럭셔리위크 전시 <만화경Kaleidoskop> 바로 직전 수린은 PBG 한남에서 개인전 를 개최했다. 당시 작가는 ‘전통과 현대, 디지털 시대 예술의 융합’이라는 주제 아래 16:9의 고정된 화면 속에서 ‘엔딩 요정’을 연기하는 4세대 K-팝 아이돌, 어느 순간 아류로 취급되고 있는 지자체 마스코트 등 한국의 문화적 상징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석탑 신작과 함께 시류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이미지를 생산해야 하는 걸 그룹의 모순, 아류로 인식되는 마스코트가 홍보 도구를 넘어 복을 가져다주는 대상으로 재탄생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의 작업이 ‘잊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듯하다.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는 기복祈福을 둘러싼 전통의 가치, 순식간에 희미해질 수 있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젠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겠는가.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더 정확히는 기존의 것을 새롭게 탈바꿈하는 수린의 작업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는지. 동시에 작가의 작업이 만화경 세상과 부합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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