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1월호

4인의 만화경-날개 안상수

11월 6일부터 10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세 번째 럭셔리위크 전시 <만화경Kaleidoskop>이 열린다. 무언가를 탐구하고, 재해석해 색다른 시각과 정제된 미학으로 소개하는 ‘만화경’ 같은 시간에 초대받은 작가 안상수, 유의정, 김성국, 수린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DITOR 박이현

안상수  <훈민정음해례본>에 담긴 제자 원리를 바탕으로 탈네모꼴의 ‘안상수체’(1985)를 ‘멋지은’(디자인한) 타이포그래퍼이자 디자이너. 그러나 디자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글자를 이용한 조형 실험을 통해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다시, 홀려라


대다수가 날개 안상수(이하 날개)를 타이포그래퍼·디자이너로 알지만, 기실 작가는 오랜 시간 미디어, 설치, 조각, 회화 등의 매체와 함께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형 실험을 진행해왔다. 그런 날개를 대표하는 작업은 ‘홀려라’(2017~)다. 일견 명징하다. 단 한 번만 보더라도 한글 닿자(자음) ‘ㅎ’을 두고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언어는 ‘어머니말’인 우리말이고, 우리말 글자는 자연스레 한글로 귀결됩니다. 제 작업은 여기 한글에 뿌리를 둬요. ㅎ은 우리 문화의 상징이자, 여러 가지 뜻을 담은 특별한 글자예요. ‘한국’, ‘한글’ 같은 말이 전부 ㅎ으로 시작하잖아요. ‘하하’ 같은 웃음소리, ‘흑흑’ 하는 울음소리도 표현하고요. 또 모양도 사람과 닮아 인간성을 상징하는 것 같죠. ‘홀려라’는 조선 시대 민화 ‘문자도’를 기반으로 합니다. 저는 문자도를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둬요. 옛 한자와 오늘날의 한글을 충돌시켜 새로운 시각적, 개념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작업의 핵심입니다. 각각의 문자 이미지들은 겹치고, 나뉘고, 뒤집히면서 결과물을 탄생시키는데, 이를 몸과 손으로 구현해 작품을 완성합니다.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한글 문자도의 탄생이지요.”

그런데 아니다. 날개의 작업은 난해하다. 고전적인 문자도보다 직관적이지 않아서다. 한글이 추상이 된 탓일 테다. 오롯이 글자와 글자의 조합이 주는 분위기와 글자마다 작가가 불어넣은 생명력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쉬이 알 수가 없다. “작업 제작 과정에서 제가 기획한 의도에서 벗어난 이미지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마치 다른 세계,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는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웃음) 글자는 ‘사용되는 것’이지만, 예술 작품으로 구현된 글자는 그 용도에서 벗어났기에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의 용법인 뜻을 전달하는 매개체의 지위가 없어진 것이죠. 하이데거가 고흐가 그린 낡은 구두 그림을 보며 신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상을 했던 것처럼, 글자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그 자체가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동안 날개가 흑백으로 완성한 작업만 공개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럭셔리위크 전시 <만화경Kaleidoskop>에선 처음으로 컬러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라 벌써 기대가 된다. 흑백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면, 컬러 작품은 날개라는 작가가 금세 떠오르지 않을 만큼 펑키 그 자체라 궁금증이 샘솟는다. 기존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에 다시 홀린다고 할까. “빛깔은 그저 보이는 것이 아닌, 작품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예요. 빛깔이 몸에 붙어 ‘제 것’이 되었다는 느낌이 와야 하는데, 아직은 완전히 체화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제가 만든 흑연 안료를 쓴 최근 무채색 작품들은 이제야 몸에 감긴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이는 재료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컬러 작품도 그 연장선에서 제작된 것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라요.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선 우주적 디자인입니다. 소리를 시각화한 한글의 조형성과 체계의 완벽함은 경이로워요. 이제 겨우 600년 역사를 가진 한글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당돌한 젊은 글자입니다. ‘시서화는 한 몸’이란 말이 있음에도, 한글은 오랜 시간 미술관에서 보기 힘들었지만, 점점 한글이라는 위대한 디자인의 확장성이 발견되고 있어요. 곧 인류의 보편적 자산으로서 세계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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