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1월호

140년의 상생, 문화적 화합으로 꿈꾸는 미래 에밀리아 가토

“이건 ‘운명’ 같아요.” 140주년을 맞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를 두고 주한 이탈리아 대사 에밀리아 가토는 양국 간의 문화적 이끌림이 이룩해낸 쾌거라 표현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우경(인물)


에밀리아 가토  1990년 이탈리아 외교협력부에 입사하며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3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는 경제 참사관으로, 2005년부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파리 본부에서 이탈리아 대표부 참사관으로 근무했다. 4년 뒤인 2009년에는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제7사무국 (NGO) 개발협력국장으로 로마에 복귀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임명되기 전까지 공관장직을 역임했고, 2023년 9월 11일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취임했다.


“한국인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심미안)’이 있어요. 이탈리아 사람도 마찬가지죠.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듯, 양국 국민은 문화적으로 강하게 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2023년 9월 최우선 근무 희망지였던 한국에 신임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부임한 지 1년 여가 지난 지금, 에밀리아 가토는 지극한 한국 사랑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한식 러버를 자처하고, 한국어 공부에도 진심이다.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을 알아갈수록, 이탈리아와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특히 올해는 한국 문화를 아끼는 에밀리아 가토 대사가 더없이 적임자인 때다. 2024년은 한국과 이탈리아가 수교 140주년을 맞이하는 때이거니와 이를 기념하고자 양국이 올해와 내년을 ‘상호 문화 교류의 해’로 선포했기 때문. 통상적으로는 1년을 주기로 한 해의 테마를 정하나,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감안해 이례적으로 2년의 시간 동안 하나의 테마를 목표로 삼은 것이다.

에밀리아 가토를 주축으로 현재 주한 이탈리아대사관은 특히 문화 부문에서 그야말로 종횡무진한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 직접 유물을 가져와 국내에 전시했고, 양국 140년 교류의 역사가 담긴 사진전도 개최했다. 특히 10월에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오페라하우스 ‘아레나 디 베로나’의 <투란도트> 초연이 성사되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야말로 현지 무대를 그대로 한국에 옮겨온 듯한 스케일을 자랑한 아레나 디 베로나의 해외 공연은 10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이는 문화 수교를 바탕으로 한 세기 넘게 이어져온 양국의 끈끈한 우정 덕분에 가능했다. 다가오는 11월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부흥을 이끈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라바조와 바로크 미술 작가들의 전시 또한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마치 21세기의 르네상스를 보는 듯 고품격의 문화 교류 행사가 한국 곳곳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지금, 에밀리아 가토를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저에서 만나 양국의 문화적 이끌림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가 어느덧 1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탈리아를 대변하는 리더로서 소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작년, 이탈리아 대사로 한국에 발을 디뎠습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방한한 해이기도 하지요. 부임하자마자 많은 업무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24년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이자 양국 간 상호 문화 교류의 해였기에 많은 업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오히려 제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죠. 중요했던 건 주한 이탈리아대사관에서 주최하는 모든 행사가 산발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양국 간 수교 140주년이라는 하나의 맥락 안에서 각 행사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명확히 짚고 싶었다는 뜻이에요.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사진전 <모든 길은 역사로 통한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은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사진전 <모든 길은 역사로 통한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 전경. 전시는 이탈리아와 조선의 수교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여정을 조망한다. 1902년 한국에 온 이탈리아 영사 카를로 로세티의 사진으로 본 대한제국 시기의 모습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 이탈리아 적십자군이 포착한 당시 한국의 모습 등을 통해 양 국가가 오랜 세월 다져온 교류의 발자취를 되짚을 수 있다. 이탈리아와 한국, 두 반도 국가의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을 주제로 한 파노라마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저도 전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1900년대 초반, 대한제국 주재 이탈리아 영사였던 카를로 로세티가 당시의 한국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그가 찍은 사진은 한국과 이탈리아 두 국가 모두에게 귀중한 사료입니다. 1884년 조이수호통상조약 체결을 기점으로 한국과 이탈리아가 공식적인 교류를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당시 이탈리아인이 어떠한 시선으로 한국 그리고 한국인들을 바라보는지를 반추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죠. 근대로 접어든 조선의 시대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적십자군이 제공한 사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이탈리아에서 60여 명의 의무 장교와 간호사로 구성한 이른바 ‘제68 적십자 병원’이라 부르던 의료 지원 부대를 파견해 피해를 입은 한국 국민들을 위한 구호 활동을 펼치던 모습을 담은 자료들이에요. 이탈리아 역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었지만 선뜻 구호군을 파견했다는 건 긴 시간 이어온 양국 간 교류가 단순히 표면적, 의무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대변합니다. 장황한 설명 대신 시각적으로 양국의 140년 수교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전의 성공적인 개최가 중요했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과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문화 이벤트가 다수 개최됐습니다. 올해 4월,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맞춰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주최로 공예전 <사유의 두께>가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는 10월 12일부터 일주일간 <2024 오페라 투란도트-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이 진행됐지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사가 있었다면요?

중요한 건 140년이라는 시간이 있기에 이 모든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는 점 같습니다. 밀라노에서 열린 디자인 축제에 한국 고유의 예술성을 총망라한 공예전이 개최된 것 역시 서로의 문화에 대한 양국의 기대와 애정이 빚어낸 결과니까요.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투란도트>는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의 성대한 초연을 위해 이탈리아의 여름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당시 사용한 너비 50m 상당의 초대형 세트를 화물선에 싣고 왔고요. 공연에 오른 인원만 500명에 달하죠. 이탈리아 현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온 심혈을 기울였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너오페라합창단 등 한국 뮤지션들과 함께했다는 점도 뜻깊습니다.



10월 12일부터 약 일주일간 진행된 <2024 오페라 투란도트-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한국 초연 현장. 올해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성사된 베로나 축제의 첫 전막 오페라 내한이다.


이탈리아는 한국이 네 번째로 공식적인 수교를 맺은 국가이자, 유럽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교역량을 자랑할 만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패션Fashion, 음식Food, 가구Furniture 등 이른바 3F라 불리는 분야가 강세를 보이는데, 해당 분야는 곧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카테고리이기도 하죠. 다음으로 주목할 카테고리가 있을까요?

‘럭셔리’라는 수식어는 결국 취향이나 감각 등 라이프스타일을 표출하는 방식의 일환이 될 수 있을지를 고려했을 때 부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드시 화려해야 할 필요도 없고 비쌀 필요도 없죠. 다만, “고유하다”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완성도와 디테일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와인업계를 들 수 있겠네요. 이탈리아는 특히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종주국입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죠. 소규모로 고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가족형 기업이 많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체제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와인은 이탈리아만의 원산지 통제 보증 명칭이자, 표준 와인 인증 등급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집니다. 최상위 등급인 DOCG 와인은 국가가 공인하는 품질을 갖춘 만큼, 더욱 알려질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해당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탈리아 와인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한국에서 9월 중순부터 10월 13일까지 100여 가지의 이탈리아 와인을 이탤리언 다이닝, 한식과 함께 맛볼 수 있는 ‘비바 일 비노Viva Il Vino’ 행사를 진행한 것도 노력의 연장선상이죠.


그렇다면 ‘코리안 럭셔리’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한복과 한글 등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전승해온 전통문화는 이루 말할 것 없이 고유합니다. 특히 한글의 창제 과정에서 비추어볼 수 있는 독창성이나 한복의 고아한 매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녔어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콘텐츠가 좀 더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것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한국은 K-컬처라 불리는, 고유의 소프트 파워를 보유했습니다. 기존 K-컬처로 여겨지던 영역을 보다 확장된 개념의 ‘코리안 헤리티지’로 전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비단 문화적인 분야뿐 아니라 하이테크나 한국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우주항공 등의 과학기술 분야도 국가적 차원의 유산으로 키워나가면서요.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우주항공 강국입니다. 마타렐라 대통령 방한 당시 주요 일정 중 하나가 바로 과학 분야의 전략적 교류였습니다. 상호 국가 간 교류를 통해 개발이 필요한 분야를 발전, 보완해나가는 노력의 일환이었죠. 다방면의 분야에서 피어나는 코리안 헤리티지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럭셔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 ‘도마뱀에게 물린 소녀Boy Bitten by a Lizard’.

11월 9일부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부흥을 이끈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과 동시대 바로크 미술 사조를 대표하는 작품이 한자리에 모일 예정.


이탈리아 대사로서 추구하는 목표점이 있나요?

저는 한국과 이탈리아를 보다 가깝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탈리아를 한국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는 동시에 한국의 강점을 이탈리아에 전할 의무도 있죠. 양 국가 간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구조적 인프라를 확보하려 합니다. 이를 위한 좋은 수단이 바로 ‘도시 외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은 대도시 서울을 위주로 발전해온 반면, 이탈리아는 각 도시의 개성과 강점이 확연히 다릅니다. 한국 내 비수도권 도시의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상호 관심 분야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도시와 이탈리아의 도시 간의 자매 결연이 그 시작점이 되어줄 겁니다. 치즈를 매개로 한 춘천과 파르마의 결연이나 광주광역시와 토리노 간의 우호 협력 등이 좋은 선례일 테고요.


향후 예정된 문화 행사도 기대가 됩니다. 

11월 9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이 열립니다. 카라바조는 17세기 이탈리아를 강타한 바로크 미술 사조의 창시자이자 정수라 평가받는 아티스트죠. 이번 전시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포함해 바로크 예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걸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장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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