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1월호

아트 자카르타, 함께한다는 것

작품 구매를 넘어 미술을 즐기고, ‘같이’의 가치를 강조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2024 아트 자카르타’에 다녀왔다.

EDITOR 박이현


‘2024 아트 자카르타’가 열린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JIEXPO) 출입구 중 한 곳.


지난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에서 동남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 자카르타’가 열렸다. 매년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전시 공간을 기존 2개 홀에서 3개로 늘린 이번 아트페어에는 총 73개의 갤러리(인도네시아 갤러리 39개, 한·중·일 등 해외 갤러리 34개)가 참가했으며, 싱가포르 은행 UOB 인도네시아 법인·가전 브랜드 스메그Smeg·자동차 브랜드 미니MINI 등 14개 파트너사의 아트 프로젝트가 소개되었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올해 방문객 수는 3만8000명이 넘는다고 전해진다(*2023년 아트 자카르타는 참가 갤러리 68개, 방문객 3만5578명, 작품 판매 867점 기록).


유디 술리스툐와 물야나의 협업을 선보인 ‘갈레리 젠1’ 부스.


1998년 수하르토 32년 독재 정권의 몰락과 더불어 급부상한 인도네시아 현대미술. 2000년대 초중반 프로파간다로만 여겨지던 미학적 한계에 봉착해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으나, 2008년 인도네시아 작가 료만 마스리아디Nyoman Masriadi의 작품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20만 홍콩 달러(약 7억 원)에 낙찰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동시에 미술 시장도 탄력을 받았다. 여기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의 공이 크다.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컬렉팅한 덕분에 인도네시아 미술이 자연스럽게 해외에 소개됐고, 동시에 해외 유명 갤러리와 미술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하지만 다시 발목을 잡혔다. 하드웨어를 뒷받침할 소프트웨어가 미흡했던 탓이다. 이때 등장한 난세의 구세주가 있었으니, 바로 톰 탄디오Tom Tandio다. 자동차 사업을 하던 그는 2007년 우연히 마주한 현대미술에 매료돼 컬렉팅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탄디오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을 알리려 ‘인도 아트 나우’를 창립해 활동했으며, 해외 갤러리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던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의 디렉터를 역임한 뒤 2019년부터 소더비 출신 질 슈나이더Gil Schneider, 예술감독 에닌 수프리안토Enin Supriyanto 등과 한 팀으로 아트 자카르타를 이끌고 있다.


수안자야 켄컷Suanjaya Kencut의 작품이 설치된 백아트 부스.


아트 자카르타에서 만난 콜렉티브오피스 이은하 대표, 예술공간집 문희영 대표, THEO 조인순 대표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눈에 보일 정도로 방문객이 증가해서 그런지 작년보다 분위기가 활기찼어요. 부스뿐 아니라 브랜드와 미술 작가의 협업 프로그램도 늘어났고요. 작가를 알고자 하는 컬렉터들의 진지한 마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매하는 것을 넘어, 예술을 즐긴다고 할까요?”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아트 자카르타는 ‘유쾌, 상쾌, 통쾌’였다. 먼저, 전시 홀 중간중간에 자리 잡은, 선전 목적의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목가적 풍경으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를 상기시키는 티모테우스 앙가완 쿠스노Timoteus Anggawan Kusno의 ‘Dismantling Nostalgia’(2024), 미술학교 내 아카이빙 자료를 통해 국가의 공포정치를 비판한 티스나 산자야Tisna Sanjaya의 설치 작품 ‘Ganjel’(2024) 등으로 구성된 ‘스폿Spot’ 섹션은 작품 요소요소를 톺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유진 칸가와Eugene Kangawa의 퍼포먼스도 흥미로웠다. 작가는 하얀 캔버스에 키스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작업은 연대의 의미를 돌아보는 데 의의가 있었다.


인도네시아 갤러리 부스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대다수가 공동체, 디아스포라, 비폭력 등을 내세운 것처럼 보였다.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싱가포르 파빌리온 작가 로버트 자오렌 후이Robert Zhao Renhui가 환경문제를 다룬 신문을 배포한 ‘샹아트ShangART’와 전시 공간을 감옥으로 꾸민 ‘A+ 워크 오브 아트’가 나란히 있었던 까닭에 언론의 자유를 논하는 것 같았고, 판잣집을 실은 거대한 배를 모노톤으로 제작한 유디 술리스툐Yudi Sulistyo의 작품과 산호초를 형형색색으로 표현한 물야나Mulyana의 뜨개질 작업으로 이뤄진 ‘갈레리 젠Galeri Zen1’ 부스에선 다양한 상상에 빠져드는 시간을 보냈다. 자카르타를 대표하는 ‘로ROH’는 여러 부스를 빌려 화려함 속 단순함의 미학을 피력하기도. 한국 갤러리도 인기 만점이었다. 백아트, 비트리, 예술공간집, 이젤리, THEO 등이 인도네시아의 후텁지근한 공기를 상쾌하게 상쇄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출품했기 때문. 그중 김재용의 도넛 조각(백아트), 이여름의 아이스크림 조각(비트리), 신호윤의 종이 조각(예술공간집), 황세진의 꽃무늬 천 콜라주(THEO) 등은 한국 아트페어의 열기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THEO 조인순 대표는 “인도네시아 시선에선 신선하게 다가왔을 거예요. 색상이 세련됐으니까요. 작년엔 신기하게 바라보았는데, 올해는 적응이 됐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예술공간집 문희영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엔 반응이 어떨지 걱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더라고요. 아트부산, 키아프에서 이 작품을 봤다며 친근함을 드러낸 분도 있었습니다.”


국가의 공포정치를 비판하는 티스나 산자야의 설치 작품 ‘Ganjel’(2024)


그야말로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미술 작품 앞에서 웃음꽃이 만발한 것은 기본이요, 토크 프로그램을 경청하는 장면, VIP 라운지 옆에 펼쳐진 굿즈 플리마켓, 족자카르타 주민이 모여 짠 태피스트리 등에선 ‘같이의 가치’를 넌지시 강조하는 느낌을 받았다. 놀라운 점은 아트 자카르타가 진행되는 동안 톰 탄디오가 매일 갤러리 부스를 찾아 안부와 현황을 물었다는 것. 흡사 공공기관의 일을 아트페어가 대신 하는 듯했다. 이에 대해 콜렉티브오피스 이은하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트 자카르타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로컬의 힘을 체감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에요. 인도네시아라는 나라 자체가 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트페어 기간에 ‘SAM 예술 및 생태 기금’ 커미셔너인 나타샤 싯다르타Natasha Sidharta가 초대한 행사에 갔는데, 유명 갤러리, 미술관 관계자와 지역의 작은 예술 공간 운영자, 컬렉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국공립 기관, 민간 기관, 아트페어 등이 손을 맞잡아야 아트 신이 발전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것일 테지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이란 어젠더를 가운데 놓고, 규모와 퀄리티를 확장하는 모습이 영리하지 않나요? 이는 분명 훗날 대형 아트페어와 견줄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자양분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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