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0월호

‘향香’의 문화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향香’을 주제로 한 의미 있는 전시가 열린다. 
기원 전후 시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땅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향 문화의 다중적 의미를 톺아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GUEST EDITOR 박지혜


<완향玩香, 애호愛好의 향기香氣>라는 주제로 꾸민 3 전시실의 일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열리는 전시 <향香, 푸른 연기靑煙 피어오르니>는 2024년 호림박물관의 두 번째 특별전으로, 우리나라에서 꽃피었던 향 문화를 다각도로 조망하는 자리다. 분향 문화에서 비롯된 가장 중요한 유물인 향로를 비롯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해온 각종 향 도구는 물론 향의 실물, 각종 문헌과 회화 작품에 이르기까지 향이라는 키워드로 꿰어낼 수 있는 다종다양한 유물들을 함께 전시한다. 작품은 약 170여 점으로, 멀리는 기원 전후 시기부터 가깝게는 19세기의 유물들까지 아우르며, 이 가운데는 호림박물관 포함 18개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 1건과 보물 11점도 포함되어 있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유구히 계속되어온 향 문화가 과거 우리 땅에서는 어떤 형식과 의미를 지녔는지, 일종의 고급 문화로 민간에서 향유했던 향의 실체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여러 문헌과 회화, 유물을 통해 더듬어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총 3부로 구성된다. 우선 1 전시실은 ‘여향與香, 함께한 향기香氣’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중국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이 땅에 향 문화가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 이 섹션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작품은 ‘香’ 자가 표면에 새겨진 조선 시대의 ‘백자 청채 투각 향자 모양 향꽂이’(국립중앙박물관)다. 어두운 조도에서 볏짚이 작품 아래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한자 ‘香’ 자가 수확한 곡식이 그릇에 담긴 모양새에서 따온 것임을 직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밖에도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향로’(보물, 국립익산박물관), 과거 사람들이 사용했던 향의 실체를 체험해볼 수 있는 향 반죽 등을 만날 수 있다. 2 전시실은 ‘공향供香, 천상天上의 향기香氣’라는 주제로, 불교와 유교의 분향 의례에서 사용됐던 향 관련 도구들을 전시한다. 시공간을 막론하고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던 분향 문화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제된 형태로 수준 높게 발전해온 향 문화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 이 섹션에서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봉은사)을 비롯해 종묘의 제사 때 사용된 조선 시대의 ‘유기 향로와 향합’(국립고궁박물관) 등 뛰어난 조형성을 지닌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완향玩香, 애호愛好의 향기香氣’라는 주제로 꾸민 3 전시실에 이르면, 비로소 민간에서 순수하게 즐겼던 향 문화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다. 공간을 정화하고 청결하게 만드는 실용적인 기능으로서의 향 그리고 순수한 취향의 도구로서의 향이 이미 과거 이 땅에서 수준 높게 꽃피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로 가득하다. 특히 정조대왕에게 하사받은 부채와 향낭을 차고 앉은 영의정 채제공을 묘사한 ‘채제공 초상화(시복본)’(보물, 수원화성박물관)는 조선 시대의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향유되었던 향 문화의 실체를 또렷이 보여준다. 이 외에도 규방의 여인들이 사용했던 향갑 노리개, 섬세한 자수로 꾸민 향낭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향이라는 주제 자체도 흥미롭지만, 다양한 장치로 주제를 공감각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높은 몰입을 선사한다. 전시실 전체에서 은은하게 감도는 백단향은 물론이거니와 입구에 설치된 ‘사륜정’이라는 작품 역시 전시 감상의 마중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는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구상했던 움직이는 정자를 재현한 것으로, 풍류에 대한 그의 지고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태오양 스튜디오가 맡은 전시 디자인 역시 흥미롭다. 최대한 어두운 조도였다가 조선 시대의 유교와 관련된 향 도구를 전시하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드라마틱하게 환해지는 연출, 향 애호가의 취향을 상상해 꾸민 공간 세팅 등이 전시의 주제를 한층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더구나 향이라는 것은 인간의 예민한 감각을 담보로 즐기는 것 아니던가. 선선한 가을날, 차분한 마음으로 향 문화의 유구한 변천사를 음미해보길 바란다.


(좌) 이명기, ‘채제공 초상화(시복본)’, 1792년, 보물, 수원화성박물관  (우) 익산 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 통일신라 8~9세기, 보물, 국립익산박물관



호림박물관 학예연구부장 유진현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도자사를 공부한 입장에서 향로는 빼놓을 수 없는 연구 영역입니다. 그런데 주로 고대나 고려 시대의 향로에 관심이 집중된 경향이 있어서 그 후 이어진 조선 시대의 향 문화, 향의 실용성 등에 대해 포괄해서 보여줘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향로에 집중하기보단 향의 실용적인 의미와 기능을 알 수 있도록 여러 자료와 유물, 문헌 등을 통해 함께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일례로 3층 전시실에서 보면, 각종 왕실 의례에서도 향이 다양하게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적 제례의 의미를 넘어 향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관람객들이 가장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익산 미륵사지 출토품인 청동 합과 거기서 함께 나온 향을 꼽을 수 있겠네요. 현재 국보로 지정된 유물로, 출토 당시 사리장엄구들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그중 향합과 향을 가져와 전시하고 있습니다. 청동 합에 담긴 향은 ‘유향’인데 산출 지역이 아랍과 북아프리카 지역이에요. 이역만리에서 뱃길이나 육로를 통해 이런 향이 백제로 전래되었고, 부처님을 기리는 사리장엄구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밖에 조선 시대 문인들이 향낭을 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채제공 초상화’도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그림 속 부채는 전해오지 않지만, 그 부채 끝에 달려 있던 선추가 남아 있어서 그림과 함께 전시 중입니다. 우리나라의 향 문화와 관련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향이라 하면, 불교에서는 신자와 부처님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유교에서는 제사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고대부터 향이라는 것이 특정 의식을 위해서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고급 문화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의미를 가지고 향을 향유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전시를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팁을 알려주세요.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향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회화나 문헌 등까지 함께 전시했는데,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국이상국집>을 배치한 것도 그 안에 이규보가 남긴 향에 관한 기록 때문이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세세한 내용을 텍스트로 배치하는 대신 앱 오디오 가이드에 공을 들였습니다.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 전시 디자인에 대한 설명 역시 담겨 있으니 꼭 오디오가이드를 실행해서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다.



COOPERATION  호림박물관(horim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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