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파티 스위스 로잔 출생.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아우르며 미술사를 폭넓게 연구하고, 다양한 작가, 모티프, 양식, 재료와 테크닉 등을 샘플링해 독자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이후 잊힌 파스텔화의 전통을 소환하여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건축적 스케일의 파스텔 벽화를 제작하며 회화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구름’(2024)과 ‘부엉이가 있는 초상’(2021) 앞에 선 니콜라스 파티
니콜라스 파티의 작업은 미술사의 보고다.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이후 잊힌 파스텔화를 소환했고, 수많은 거장의 작품을 참고했기 때문. 그동안 그의 행보를 추적하다 보면, 르네 마그리트, 앙리 루소, 조르조 모란디, 펠릭스 발로통 등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어떤 때는 선배들의 소재를 가져오기도, 어떤 때는 화풍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은 익숙하면서 낯선 매력을 발산해 자꾸만 시선이 간다. 현재 호암미술관은 그의 트레이트마크라 할 수 있는 파스텔화로 물들어 있다. <더스트>에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점은 작가의 작품과 한국의 고미술품이 만났다는 것. 이로 인해 동서고금을 융합한 전시장 안에선 자연스레 자신만의 극본을 써 내려가게 된다.
전시장에 직접 그린 파스텔 벽화가 개인전 종료 후 지워진다고 해서 그런지 전시 제목 ‘더스트Dust’에 눈길이 갑니다. 회화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순간의 감정과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것인데,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먼지처럼 사라진다는 사실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벽화가 갖고 있는 ‘일시성’이라는 개념 덕분에 그동안 진진한 미술 실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작품을 복사한 적도 있어요. 어쩌면 심오하다고 할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이 일시적일 수 있음을 설명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뉴욕 플래그 아트 재단에서 진행한 <Pastel>
내년 1월 19일이 지나면, 벽화는 디지털 이미지로 가상 세계에만 존재하게 될까요?
연주회, 퍼포먼스 등을 담아낸 아카이브 형태로 남게 될 거예요. 각자 미술을 향유하는 스타일은 차이가 있겠지만, 작가로서는 관람객이 미술관에 와서 몸소 체험해보기를 바랍니다. 이를테면, 호암미술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폭포’ 벽화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바라보는 것이죠. 손바닥 위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보는 것과는 분명 다른 감동을 선사하리라 확신해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을 참고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디지털 파일로 고미술품을 처음 접했습니다. 2년 넘게 한국 미술을 연구했는데, 미지의 영역인지라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잦았어요. 그때마다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이 저를 늪에서 구해줬죠.(웃음) 이후 한국에 왔을 때 실물을 보았고요. 그 결과가 전시장에 있는 고려 시대의 ‘금동 용두보당’, 김홍도의 ‘군선도’ 등입니다. 저는 한국의 고미술품이 새로운 맥락에서 읽히길 바랐어요. 예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적 표현이 기록된 공간이자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는 ‘동굴’을 소재로 한 벽화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조선 시대 ‘백자 태호’를 병치해 인류의 근원과 한 국가의 시간을 교차했고요. ‘십장생도 십곡병’ 속 장수 동물을 차용해 초상화도 제작했어요. 한국 미술을 공부하면서 인류의 문화가 항상 어딘가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또 이어진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색조로 동굴을 묘사한 윌리암 드구브 드 뉭크의 ‘La Grotte Du Drac, Manacor’(1901)를 참고했다고 들었습니다. 동굴 작품은 앞에 어떤 대상을 놓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혀 호기심을 자극해요. 녹색 벽화 앞에 두 남자와 고양이 그림을 설치했을 땐 플라톤의 벽화를 꼬집는 것 같았죠. “당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할까요? 이번에는 조선 시대 백자 태호와 함께하는데, 관련 내용이 궁금합니다.
신화와 예술에서 동굴은 다양한 상징으로 작동해왔어요. 보이는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플라톤의 개념도 중요하지만, 동굴은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뜻하는 미지의 공간이기도 해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동굴과 유사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돌아가신 후에는 동굴에서 부활했죠. 또 부처님은 동굴 안에서 수행을 했고요. 동굴 안에서 종유석이 자란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한편, 조선 시대에는 아기의 태반과 탯줄을 항아리에 넣어 보관했어요. 특히, 왕손의 태胎는 백자 항아리에 넣어 풍수지리가 좋은 땅에 묻고,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빌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생명체를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일도 놀라운데, 태아를 둘러싼 조직을 간직하다니, 신비롭지 않나요? 이처럼 생과 사, 불멸의 연관성을 찾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다만, 저의 아이디어와 해석이 여러분의 감상을 좌지우지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의 작품 ‘청자가 있는 초상’(2024)과 마주한 니콜라스 파티.
마치 각기 다른 타임라인을 연결하는 느낌입니다.
미술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예술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와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독특한 능력이 있어요. 일례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가슴에 스미는 감정과 300년 전 사람들의 감정은 동일할 거예요. 당시 음악가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긴장감, 두려움, 불안함, 사랑 등을 떠올리며 작곡했을 테니까요. 이렇듯 예술은 우리를 다독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주 진실한 마음으로.
파스텔을 주재료로 선택한 이유도 비슷할 듯합니다. ‘연약하고 일시적인 재료’를 활용해 특정 시기나 이즘ism에 종속되지 않음을 보여주겠다는?
방금 전까지 한 답변이 생로병사와 순환으로 귀결되는데, 일부러 그런 면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웃음) 파스텔을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거든요. 2013년 어느 날, 피카소가 파스텔로 그린 초상화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어요. 다음 날 바로 파스텔을 구매했을 정도죠. 파스텔이 대중적인 매체가 아닌데, 제 삶의 일부가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가끔은 외롭기도 해요. 물감을 사용했다면, 더 많은 사람과 재료나 회화 기법에 대해 의논할 수 있었을 텐데···.
벽화 위에 캔버스를 설치한다든지 기둥을 활용하는 것을 보면, 네모난 캔버스를 확장하는 것으로 다가와요. 화이트 큐브의 정형성을 깨는 의도일까요?
20세기 초, 작품 본질에 집중한다는 테제 아래 흰 벽으로만 구성된 전시 공간이 등장했어요. 이후 일반 가정의 벽도 기본적으로 흰색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고요. 대다수가 하얀색이 중성적이라고 말하지만, 오해입니다. 하얀색도 문화·역사적 맥락을 가진 하나의 색이거든요. 기실 하얀색은 회화 작품에 적합한 색이 아니에요. 그림을 그리든 감상하든, 빛을 반사하는 성질 탓에 다른 색을 잠식하죠. 사진 찍을 때 역광처럼요. 그래서 저는 화이트 큐브와 대비되는 색이 칠해진 벽면을 선호합니다. 서로 다른 분위기가 역동적인 에너지를 생성한다고 믿어요. 여담으로, 20세기 전 개최된 전시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세요. 하얀색 벽이 흔치 않다는 걸 발견할 거예요.
온전히 하얀색 벽을 이용한 경우도 있었나요?
독일 프리더 부르다 미술관Museum Frieder Burda에서 열린 전시 <When Tomorrow Comes>

니콜라스 파티의 벽화 ‘산’(2024)과 리움미술관 소장품 ‘금동 용두보당’(고려 10~11세기), ⓒ 니콜라스 파티, 사진: 김상태, 호암미술관
하얀색을 계속 언급하다 보니, 2년 전 홍콩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에서 만난 ‘Water Reflection’(2022)이 생각나네요. 흘러가는 시간과 영원을 표현한 중국 산수화와 닮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죠. 신기하게도 이 작품은 하얀색 비중이 높음에도, 한국의 화려한 ‘일월오봉도’가 떠오릅니다. 이번에 선보인 ‘산’ 작품 역시 한국과 중국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양새예요.
오래전 클로드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화가들은 우키요에(목판화)를 비롯한 자포니슴Japonisme에 푹 빠졌어요. 일본이 유럽에 아시아 미술을 처음 수출한 나라라면, 중국은 그다음입니다. 중국은 여러 문명이 혼재하는 나라죠. 홍콩 전시 때 한국과 일본, 중국 미술을 많이 봤습니다. 서양인의 시선에서 구름과 물, 산이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굉장히 세련되게 합쳐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더욱이 암석, 바람 또한 문화적 특성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요. 이는 종교적 요소, 자연을 향한 존중 등이 공통으로 작용해서겠지요.
로코코 시대에 유행한 파스텔 초상화는 섬세한 배경, 세련미, 우아한 색채 등을 통해 귀족 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파스텔 초상화는 배경과 색채는 변하지만, 인물의 표정과 포즈는 일관적이라 한 사람의 인스타그램 포토 덤프photo dump를 넘겨보는 듯해요. 흡사 복잡한 사회 속 천편일률을 꼬집는?
그리스 시대에는 이상적인 미학을 조각으로 구현했어요. 몸은 남녀노소가 구분되는데, 얼굴은 대동소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반면, 로마 시대엔 실제 얼굴을 조금씩 반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에는 이상적인 미美라고 신봉하는 얼굴의 디지털 버전이 만연해요. 그리스 시대로의 회귀랄까요? 저는 이러한 미학의 초상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실존하지 않는 대상과 대화하는 상상을 바탕으로 초상화를 제작했죠. 첫인상은 감정이 소멸한 유령으로 다가올지도 몰라요. 그러나 점점 이질감이 사라질 겁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광경이 중첩되지 않나요?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질문은 모두 드린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복기하다 보니, 당신이 다방면에서 엄청난 재능을 소유한 작가라는 사실이 다시금 와닿았어요. 동시대 미술에서 본인을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나요?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저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정해진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다양한 주제를 보여주죠. 이를 관람객이 개인적 방식으로 해석하길 바라요. <더스트>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제 작품과 고미술품이 무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에요. ‘금동 용두보당’을 예로 들면, 사찰에 있었다가, 어두운 수장고에 있었다가, 2024년 가을에는 제 벽화와 함께 밝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아마 몇 달 뒤엔, 몇천 년 뒤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종합하면, 미술사 속 어떤 존재를 고정된 타임라인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를 이으며 시공간을 유영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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