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0월호

미궁의 설계자, 데릭 애덤스

데릭 애덤스의 신작들을 만날 수 있는 가고시안 갤러리의 국내 첫 전시가 개최된다. 단편적인 첫인상과 달리, 보면 볼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그의 작업 이모저모.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기태

데릭 애덤스  미국 볼티모어 출생. 대중문화와 일상생활 등을 주제로 조각, 콜라주, 회화 등을 넘나들며 복잡한 흑인의 삶과 문화를 탐구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지만은 않다.’ 데릭 애덤스의 작업 전반을 정리하는 문장이다. 거친 마티에르도, 번짐과 흘림의 미학도 없어 단숨에 작가의 의도를 간파한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져든다. 분명 일상의 풍경을 포착한 것 같은데, 이쪽은 자본주의를, 저쪽은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날이 서지도 않았다. 어떤 장면에선 평온한 하루를 염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장면에선 누군가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본디 자신의 작업은 단편적인 첫인상과 달리,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 있어 난해함의 끝이라 고백하는 데릭 애덤스에게 작품 감상 길라잡이를 부탁했다.


한국 첫 개인전에서 신작을 공개한다는 소식에 미술 애호가들이 9월 3일만을 기다렸다고 해요. <더 스트립The Strip>은 어떻게 기획된 전시인가요?

아모레퍼시픽 ‘APMA 캐비닛’에서 가고시안 갤러리의 한국 첫 전시를 저의 작품과 함께한다고 들었을 때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저는 공간과 작품의 관계를 매우 긴요하게 여기기에,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기업 성격에 맞춰 뷰티 산업과 연관되는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기로 했죠. 그러던 와중에 제가 사는 뉴욕 브루클린 거리에서 왕왕 마주하는 뷰티 숍의 쇼윈도가 떠올랐어요. 마침, 지난 10여 년간 뷰티 숍 주변을 찍은 사진이 있어 이를 참고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APMA 캐비닛에 오시면 알겠지만, 삼면이 투명한지라 전시장에 들어오지 않아도 작품을 볼 수 있는데요. ‘본다’라는 행위의 관점에서 뷰티 숍 쇼윈도 너머의 가발과 마네킹 두상, 전시장 유리창 건너편에 설치된 작품의 연결 고리를 탐구해보길 바라요.


<더 스트립>이라는 전시명을 짚고 넘어가보죠. 일차원적으로 ‘거리’와 ‘상점’만을 가리키나요?

미국에서 ‘더 스트립’은 바깥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쇼핑몰을 지칭해요. 앞에서 언급했듯 이곳은 아모레퍼시픽에 근무하는 사람, 길을 걷는 사람, 전시장에 오는 사람 모두 작품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APMA 캐비닛의 문턱이 거의 없다는 개념 아래 전시 제목을 ‘더 스트립’으로 지었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질문으로 준비했던 것을 미리 물어보는 편이 낫겠어요. <더 스트립>에 담긴 메시지가 있다면요?

‘표현의 자유’예요.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는 내면의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원동력입니다. 오늘날 거리 위의 소비자와 작품 속 뮤즈를 동시에 수행하는 흑인 여성은 다양한 복장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과 개성을 드러내고 있어요. 자유라는 맥락에서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무조건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아이스 브레이킹과 상호 교류를 가능하게 했던 건 의복과 화장이기 때문이죠.


오래전부터 작품에 등장하는 벽돌이 궁금했어요. 초기작에도, 이번 신작에도 벽돌이 존재해요.

제 작업은 개념적인 면모가 강하기에, 한때 활용했던 주제나 기법이 훗날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죠. 그렇기에 제 작업을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로 인식했으면 해요. 과거 작업과 현재 작업을 확실히 구분할 수 없고, 언제든지 재사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중 벽돌은 저의 작업 세계에서 흑인 공동체의 강인함, 흑인의 개인적·사회적 경험이 모여 문화 구조를 구축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Derrick Adams, ‘Luv Bad B**ches(Brownstone)’, 2024, © Derrick Adams Studio,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2015년을 기점으로 작품이 간결해지는 느낌입니다. 이때 결과물을 보노라면, 카녜이 웨스트의 앨범 (2013)가 연상돼요. 맥시멀리스트의 정점을 보여주던 그가 르 코르뷔지에의 심플한 램프에 매료돼 미니멀한 음악을 발표한 것처럼, 작가님에게도 변화의 모멘텀이 있었나요?

앞서 말했듯 제 작업은 복잡한 개념들로 이뤄집니다. 일견 간결할지라도, 작품 요소요소에 어떤 개념 혹은 담론이 내포됐는지 구체적으로 간파하는 건 불가능해요. 레시피에 비유하면, 특정 재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고 할 수 있죠. 변화의 모멘텀은 관람객과 공감대 형성을 원했던 것이에요. 당시 저와 같은 환경에 살지 않더라도, 다른 교육을 받았을지라도 작품과 소통하길 원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거든요. 하지만 작품 표면이 평평해졌다고 해서 주제까지 단조로워진 건 아니랍니다.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 콘도의 큐비즘적 형식과 궤를 같이한다는 평을 자주 들으셨을 겁니다. 가끔은 미칼린 토머스, 은지데카 아쿠닐리 크로스비의 콜라주도 중첩되고요. 얼굴을 다면적으로 구성하는 건 융합, 화해 등과 일맥상통하는 것일까요?

질문과 답변을 한 번에 하셨네요.(웃음) 어린 시절 친척 집에서 아프리카 전통 조각을 보며 자랐습니다. 큐비즘적 형태가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어요. 저는 과거의 이야기를 기존의 창작물이 떠오르지 않게 재해석하는, 즉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변형하는 일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흘러간 시간과 단절하지 않고, 되레 진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죠.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을 향상해서요. 이를 실현하려 아프리카 문화와 흑인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 그리고 큐비즘 작가의 이미지와 동시대 문화 예술 속 형태가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는데요. 제 작품을 본 젊은 세대가 과거와 공감하고, 이를 신선하게 풀어내는 시각을 선보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어요.


에이미 셰럴드, 헨리 테일러, 케리 제임스 마셜 등의 색과도 묘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흑인을 둘러싼 전형적인 색채에서 벗어나려는 듯해요. 일례로, 흑인의 생활을 구상에 가깝게 묘사한 ‘Family Portrait’ 시리즈는 얼굴색이 각양각색이죠. 마치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것 같은?

거부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심도 있게 고려하는 건 원론적인 ‘색감’이에요. 색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가장 먼저 논의될 수 있지만, 인물의 감정 혹은 공간의 분위기도 잘 전달하죠. 저의 경우엔 후자에 가깝고요. 당연히 색감만이 제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닙니다. 색에서 시작해 작품 전반을 파악한 다음 큐비즘, 콜라주적인 부분도 관찰하면서 어떤 문화를 대변하는지 살펴본다면, 작품 감상이 마뜩해질 거예요.


<더 스트립>의 출발점으로 보이는 ‘Beauty World’ 시리즈의 헤어스타일 역시 인상적입니다. 가발 모델의 초상화를 모아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흑인 문화와 관련됐다든지···.

자칫 마네킹 두상이 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기에 여러 가지 가발로 작품에 리듬감을 부여했어요. 특히, 추상적 형태를 입힘으로써 마네킹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낼 수 있게 했죠.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미국에 사는 여러 독특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같지 않나요? 흑인 문화와의 상관성은 복장의 변천사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가발은 머리카락을 보호하고 자아를 표현한다는 명목 아래 제작한 결과물이 대량생산되면서 대중에게 널리 퍼졌어요. 머리카락을 관리하는 용도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도구로, 그리고 상업화된 상품으로 갈수록 탈바꿈한 것이죠. 마치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온? 이렇게 문화적 요소의 결이 달라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일은 꽤 흥미롭습니다.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어쩌면 예민할 수도 있는 주제를 은유적으로 풀어내는 데서 기인한 개인적인 호기심이에요. 휴가 중인 흑인을 내세운 ‘Floater’ 시리즈를 예로 들면, 이면엔 휴식을 부정하는 사회적 관념이 자리 잡고 있잖아요?

주로 흑인 문화와 역사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에서 얻습니다. 이때 핵심은 서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거죠. 이는 심오한 내용의 제 작업이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근원이기도 해요. 아무리 액티비스트일지라도 친구와 수다 떨며 저녁을 먹고, 가족과 즐겁게 수영하는 가벼운 날을 보낼 거예요. 작가로서 미디어가 강조하는 폭력과 억압, 트라우마가 아닌, 이러한 평범한 흑인의 순간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사는 현실이니까요.


“당신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의자를 들고 가라If they don’t give you a seat at the table, bring a folding chair”라고 말한 셜리 치점Shirley Chisholm에게 경의를 표한 ‘Be the Table’(2023)도 작품 배경을 모른다면, 그저 유머로 여겨질 거예요.

조금 더 심오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을 타깃으로 한 작업이에요. 그들은 테이블이 암시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거든요.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입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라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도 되는지 묻는 것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지만, 내가 테이블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들잖아요. 여담으로, ‘Be the Table’은 가족사진에서 비롯됐습니다. 언젠가 제 고모가 테이블로 변신(복장)해 파티에 참석했더라고요.(웃음)


Derrick Adams, ‘Use Your Heart(SWV)’, 2024, © Derrick Adams Studio,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그렇다면, 흑인을 트라우마와 억압에 고통받는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 작업이 ‘있는 그대로Come as You Are’(2023년 개인전 제목)로 귀결된다고 정의해도 될까요? 제가 그 아픔에 100% 공감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흡사 작품은 “급진적으로 싸우지 말고,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여.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해!”라고 다독이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가 ‘있는 그대로’라는 말을 당신이 걸치고 있는 것들을 전부 벗어던지고 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꾸미고 싶은 만큼 꾸며도 된다는 해석도 맞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나로 성장하게 한 모든 일이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습니다. 혹자는 자신이 겪은 일을 자양분 삼아 한 발자국 내딛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저는 사회에서 받았던 도움이 제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정녕 운이 좋아서 그랬던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최근 흑인 미술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인기를 분석한다면요?

NBA 선수, 래퍼가 그랬던 것처럼, 흑인 작가들의 창의성이 인정받는 놀라운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색다른 문화적·인종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의 탄생도 목격하고 있어요. 덕분에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서 무척 고무적이에요. 우리는 단순 예술 소비를 넘어, 각자의 문화와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시기를 관통하는 중입니다. 새로운 시각과 내러티브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은 물론, 서양 중심의 전통적 예술관에서 벗어나 소수의 목소리까지 경청하는 환경도 조성하고 있죠. 앞으로 더 많은 문화적 다양성이 예술로 표출되리라, 나아가 여기에서 기발한 자극을 받으리라 예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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