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6월호

베네치아 중심에 선 이방인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막이 올랐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주제로 진행 중인 본 전시와 국가관 전시를 압축해서 소개한다.

EDITOR 박이현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주제로 진행 중인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계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막이 올랐다. 최초의 남미 출신 예술감독 아드리아누 페드로사가 이끄는 비엔날레는 현재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주제 아래 순항하고 있다.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이하 자르디니)과 아르세날레Arsenale에서 열리는 본 전시에서 페드로사는 ‘당신이 어디를 가든 언제나 이방인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마음 깊은 곳에선 당신도 이방인’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332팀의 작가를 초청해 그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난민, 외국인, 이민자 등을 이야기하는 이번 비엔날레는 개막 전부터 국내 미술계의 기대를 모았다. 한국 작가 4명이 본 전시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 아르헨티나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주류에서 배제된 퀴어 역사의 유산을 탐구하는 이강승, 푸른색 두루마기를 입고 붓과 팔레트를 든 자신을 묘사한 이쾌대, 한복 차림의 여성 옆에서 창작의 고통을 몸소 표현하고 있는 서구식 복장의 남자를 그린 장우성이 그 주인공. 현장에서 김윤신과 이강승의 작업은 본 전시장 중앙에, 이쾌대와 장우성의 그림은 디에고 리베라·프리다 칼로 등 식민 통치를 겪은 남미·아시아·아프리카 작가들의 초상화를 모은 섹션에 자리 잡아 눈길을 끌었다.

아드리아누 페드로사의 시각은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초입부터 명확히 드러났다. 자르디니 본 전시장 외벽을 브라질 작가 그룹 마쿠가 브라질과 페루 국경 지역의 신화(대륙과 민족이 분리된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를 화려한 색으로 물들였고, 뉴질랜드 여성 원주민 작가 그룹 마타호 컬렉티브가 마오리족 의식에 활용되는 전통 직조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아르세날레 입구를 장식한 것. 흥미롭게도 마타호 컬렉티브는 “모계 전통을 참고한 그들의 작업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며, 벽과 바닥 위에 새겨진 그림자 패턴은 조상들의 기술과 몸짓이 떠오르게 한다”라는 심사평과 함께 황금사자상(최고 작가상)을 거머쥐어 작품 앞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전체 작가 중 3분의 1 이상이 라틴아메리카 출신으로 채워진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좌) 초국가적인 퀴어 역사와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을 담아낸 이강승(갤러리현대)의 작업

(우)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됨’을 뜻하는 김윤신(국제갤러리, 리만머핀)의 조각 작업.



황금사자상(최고 작가상)을 받은 뉴질랜드 여성 원주민 작가 그룹 마타호 컬렉티브Mataaho Collective.


본 전시는 그야말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향연이었다. 전체 작가 중 3분의 1 이상이 라틴아메리카 출신으로 채워졌고,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도 2022년 5%에서 2024년 17%로 늘어났지만, 유럽과 북미 작가는 22%를 기록, 2022년의 73%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 작가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단연 화제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전성기를 맞은 김윤신 작가. 현재 국내외에서 주가가 상승 중인 그는 본 전시에서 나무 조각 4점과 돌 조각 4점을 공개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을 내세우는 김윤신의 작업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됨’을 뜻한다. 비엔날레 담론처럼 이방인과 토착민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님을 설명하는 데 안성맞춤. 초국가적인 퀴어 역사와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을 담아낸 이강승의 작업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상적인 작업은 미국계 사진작가 피터 휴아르, 영국 영화감독 데릭 저먼, 홍콩계 사진가이자 개념 미술가 쩡광즈 같은 인물을 기억하는 오브제들과 흑연 드로잉·각종 식물과 씨앗·화석 등을 모은 ‘Untitled(Constellation)’. 길이 7.6m에 달하는 작업을 보노라면, 국경·성별·세대·인종을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자연스레 찾게 된다.


호주관은 그동안 주류에 가려진 원주민의 가계도를 그린 아치 무어Archie Moore의 작업으로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본 전시를 관람한 관객을 기다리는 건 국가관 전시다. 국가관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절 만들어진 체제로, 해마다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미술계 올림픽이란 수식어가 탄생한 이유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첫날, 국가관이 있는 자르디니 곳곳에선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화두는 다름 아닌 전쟁.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전시장 공원을 돌아다니며 평화를 촉구했고, 이스라엘관 작가들은 하마스와의 휴전 및 이스라엘 인질 석방이 완료되는 날까지 전시 참여를 무기한 연기했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역시 지난 비엔날레에 이어 전시장 문을 굳게 닫았다(대신 볼리비아가 러시아관에서 전시). 한편, 폴란드관은 문전성시였다. 우크라이나 예술가 컬렉티브 오픈 그룹Open Group의 영상 작품 ‘Repeat after Me(나를 따라 해보세요)Ⅱ’가 관객을 사로잡은 것. 이곳에선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공격했던 무기의 굉음을 입으로 흉내 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입장을 위한 대기 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인기가 많았던 국가관을 꼽자면 독일관, 스위스관, 이집트관, 일본관, 호주관을 들 수 있다. 그중 호주관은 국가관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방이 검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장은 호주 원주민 예술가 아치 무어가 분필로 쓴 원주민 가계도로 가득했다. 그동안 주류에 가려진 역사를 끄집어내는 행위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독일관은 오픈런 경쟁이 붙은 국가관이었다. 모든 언론에서 ‘꼭 봐야 하는 국가관’으로 선정한 까닭에 대기 행렬의 끝을 가늠할 수 없었을 정도. 석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튀르키예 이주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업에는 실제 퍼포머들이 등장해 사실감을 더했다. 독특한 체험은 스위스관에서도 가능했다. 도시 공간과 집단적 상상력, 건축과 이데올로기, 정치적 선전과 국가 정체성 사이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헤이루 두 디비누 아모르가 전시장을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 채운 덕분. 작가는 자연과 기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등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고 알려진 스위스를 비틀었는데, 중립국의 우월주의를 꼬집는 듯해 통쾌한 기분이 들었을 정도다.



중립국의 우월주의를 꼬집는 듯했던 스위스관 게헤이루 두 디비누 아모르Guerreiro do Divino Amor의 작업.



일본관의 모리 유코Mohri Yuko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질문한다.



이스마일 내각과 유럽 통치에 저항했던 우라비 혁명을 그린 이집트관의 와엘 샤키Wael Shawky.


이집트관과 일본관은 우리나라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국가관이다. 먼저, 이집트관은 이스마일 내각과 유럽 통치에 저항했던 우라비 혁명(1879~1882)을 그린 와엘 샤키의 영상 작품 ‘Drama 1882’를 상영하고 있다. 전쟁의 무익함을 비판하는 그의 작업은 오늘날 사회에 경종을 울려 관객의 찬사를 끌어냈다. 이러한 와엘 샤키의 작업은 오는 9월 대구미술관에서도 선보일 예정. 일본관은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 이숙경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예술감독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시장은 베네치아에서 구한 일상의 사물과 썩어가는 과일, 물이 떨어지는 호스 등을 엮은 모리 유코의 작업으로 꾸며졌다. 일견 전시는 난해한 개념이 혼재한 모양새지만, 톺아보면 분열과 갈등을 겪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질문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외에도 올해 비엔날레는 국가관 다수가 본 전시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옴니버스를 몸소 체험하는 것 같았다. 이처럼 전시장 어느 곳에 가더라도 우리 주변의 외국인·이방인에 관해 고민할 수 있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1월 24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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