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1년 중 가장 활기찬 에너지가 넘치는 때가 아닐까 싶어요. 자연의 생기와 더불어 각종 축제와 뮤직 페스티벌도 한창이죠. 무대에 오를 일이 많겠어요.
지난해 가을 싱글 앨범을 발매한 이후 음악적으로 업데이트된 게 없는데도 불러주는 곳들이 있어 감사하게 생각해요. 무대는 언제나 설레고 흥분되죠. 관객분들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한발 벗어나 이 순간을 최대로 즐기고 음악이 주는 시원한 쾌감을 실컷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비와이의 음악은 확실히 라이브로 직접 접할 때가 제대로죠. 장악력이 대단하더라고요.
알려진 제 곡의 대부분이 가사 음절 수도 많고 래핑에 속도감이 있어서 라이브로 듣는 만족감이 훨씬 클 거예요. 저 스스로도 나름 공연에 최적화된 아티스트라고 자부합니다.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각오와 자신감도 크고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여기서 나를 처음 본 사람이 한 번 더 내 음악을 듣고 싶게’ 그리고 ‘나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내 팬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있어요.
군대로 인한 공백기가 있었는데도 기세는 여전하군요.
사실 무대에 서는 마음가짐은 많이 달라졌어요. 전엔 그냥 익숙하게 무대에 올랐다면 요즘은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제게 주어진 자리, 그리고 제가 누리는 것들 모두 귀하고, 또 그에 맞는 이유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한때는 ‘나는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란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격’이란 단어가 무겁게 다가와요. 어리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오만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들고요.
멈춰 있던 시간이 가져다준 변화인가요?
새로운 환경과 경험,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겠죠. 또 저는 신앙인이니까 성경을 통해서 깨달은 바도 컸어요.
입대, 전역, 결혼, 육아까지 지난 몇 년간 인생의 큰 ‘사건’을 차례로 겪었죠. 늘 자신과 현재를 노래하는 래퍼에게 이러한 삶의 변화가 어떤 반향을 일으켰을지 궁금하네요.
굉장한 영향을 미쳤죠. 일단 군대 생활은 래퍼 비와이가 아닌 사람 이병윤으로 살 수 있게 해줬어요. 동네 형처럼, 친한 동생처럼 대해준 좋은 선·후임들 덕에 사람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돌아볼 수 있었죠. 한동안 제가 참 어리석고 불편하게 살았더라고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잘난 인생인 줄 착각하며 지냈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게 되면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역설적이게도 자유롭지 않은 곳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진 거죠.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골드 & 실버 체인 목걸이는 포트레이트 리포트. 글러브는 돌체앤가바나.
미성숙함을 인정하며 한결 성숙해졌고요.
그렇죠. 기회가 없어서 말을 못 했는데, 인터뷰를 빌려 감사를 전할게요. 늘 제 편에서 제 얘기를 들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신 군악대 악단장님을 비롯한 선임, 후임들에게요. 은인 같은 이들이에요. 그리고 진짜 제게 은혜와 같은 사람, 아내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워요. 결혼을 하고 누군가를 보듬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고 겁나기도 했는데, 저보다 더 크고 넓은 품을 지닌 아내 덕에 금방 바로 설 수 있었어요. 귀한 생명도 만났고요.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좀 더 넓게 생각하고 멀리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죠. 그런 음악을 고민해야 하고요.
래퍼의 육아는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아버지로 살아가는 삶은 어떻습니까?
앞서 말했듯 저는 생각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사실 처음에는 막연히 무서웠어요.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막상 아이를 만나고 함께 하면서 점점 이 삶이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그간 제가 세상에 내놓은 그 어떤 것보다 대단하고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집에서 아이와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나 싶게 정신없고 힘들긴 해요. 그렇지만 순간순간 벅차고 뿌듯한 감정이 차올라요. 그리고 혼잣말을 하죠. “나 좀 멋있는데?”라고요.

골드 컬러 스팽글 셔츠는 드리스 반 노튼.
예전엔 쉬는 날에도 음악을 만들고 생활의 모든 촉수를 작업에 맞춰두는 편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상이 어렵지 않나요?
요즘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가족에게 소홀한 부분이 생기죠. 다만 그런 맥락에서 이병윤의 삶이 비와이의 음악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에서, 오늘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길 하게 될 테니까요. 지금은 그래요. ‘뭔가를 더 보여주려고도, 숨기려고도 하지 말자’라고요. 대단한 척, 멋있는 척, 뭔가 다른 척하는 게 우습고 부끄러워졌어요.
지난해 발매한 ‘Holy Toast’에서부터 그런 변화가 감지되긴 했어요. 사운드도, 메시지도 뭔가 많이 덜어낸 느낌이랄까?
힘을 많이 빼고 싶었어요. 이전의 클래식하고 웅장한 사운드가 이제 좀 버겁게 들리더라고요. 가사도 그래요. 돌이켜보니 누군가를 위로한답시고, 내가 아는 걸 가르쳐주겠다고 거창한 단어를 앞세워 멋들어진 말들을 늘어놓고 있더군요. 심지어 스스로 잘나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과시하면서요. 그렇게 떠드는 것 자체가 실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는 꼴인데 말이에요.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부족한 점들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그 방어기제로 더 화려하게 포장하고 요란하게 내세웠던 것 같아요.
사실 힙합 문화의 근간은 솔직함과 자기 인정에 있다고도 생각해요. ‘Keep it real(진실하게 살아라)’이라는 정신도 있잖아요.
맞아요. 제가 힙합 음악을 하고 힙합 문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과 사회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인정하는 데서 오는 후련함과 공감이 크기 때문이거든요. 저는 이제 제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요. 저는 쓰임을 기다리는 돌덩이, 혹은 태양으로 인해 빛나는 달과 같은 존재예요. 그 사실을 깨닫고 인정한 순간부터 제 삶이 더 단단하고 자유로워졌어요. 불완전한 존재인 만큼, 완전함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랄까 본능적인 바람도 더 커지고 있고요. 앞으로는 여기에 집중해 노래하고 이야기하려 해요.
아마도 다음 앨범은 비와이의 음악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겠군요.
아마도 깜짝 놀라실 거예요. 좋은 쪽으로요. 사실 쉽진 않아요. 곡을 만들 때 여러 기준을 세워놓고 그 틀 안에서 작업을 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모든 것을 충족하는 결과물을 내기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러나 어쨌든 저는 해낼 거고, 무엇보다 ‘멋지게’ 해낼 거예요.
태도만큼은 변함없이 ‘비와이’답네요.
‘비와이’라는 제 이름처럼 언제나 ‘왜’를 고민하고, 존재의 이유를 구하며 살아가고자 해요. 지금의 저는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힙합 음악을 하는 래퍼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창작자이고, 믿음을 따르는 신앙인이에요. 이 모든 이유와 역할을 하나로 ‘멋지게’ 묶어내는 것이 제 앞에 놓인 숙제고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요즘이 가장 충만하고 재미있어요. 사람이 뭔가를 꿈꿀 때 가장 설렌다고 하잖아요? 지금이 딱 그래요. 분명 큰 발전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확실한 지금, 저의 다음이 너무 기대되고 기다려져요.

실루엣이 독특한 숄더 재킷, 이너 슬리브리스 톱, 팬츠, 부츠 모두 릭 오웬스.
STYLIST 전진오 HAIR 정지은 MAKEUP 정윤아
COOPERATION 돌체앤가바나(3442-6888), 드리스 반 노튼(3446-2732), 릭 오웬스(3479-1353), 보테가 베네타(6402-1824),
포트레이트 리포트(070-4062-4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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