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에 폴 보퀴즈Paul Bocuse의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한 피에르 가니에르는 다방면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여 년 전 첫 미쉐린 스타를 얻은 이래 차근차근 그 수를 늘려나갔고, 현재는 프랑스 전역과 도쿄, 두바이, 상하이, 서울에 이르기까지 그가 지휘하고 있는 레스토랑이 16개에 이른다. 무엇보다 정통을 고수하는 ‘프렌치 다이닝’에 창의적인 모험을 감행해 만들어내는 메뉴들, 각 나라의 제철 식재료를 능숙하게 엮어내는 솜씨야말로 전 세계 미식계가 인정하는 피에르 가니에르의 저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서울의 주방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자신의 레스토랑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그 계절에 맞는 ‘정찬’을 선보이는 것은 피에르 가니에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핵심. 오랜만에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을 찾은 그는 3월 28일부터 약 나흘간 각종 해산물과 봄나물을 조화롭게 활용한 스페셜 디너 코스를 선보이며, 고객들을 만나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미쉐린을 위한 살벌한 경쟁,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 레스토랑 경영이라는 경제적 압박까지. 치열한 ‘미식계’의 한복판에서 그가 수십 년간 이토록 우아한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요리사로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 재료에 대한 견해 그리고 후배 셰프들을 위한 속 깊은 조언까지, 오늘의 그가 있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들.
오랜만에 서울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번에 방문한 목적은 무엇인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피에르 가니에르 팀원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지금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프레데릭 에리에Frédéric Eyrier 셰프와 굉장히 친밀한 관계로, 그는 언제나 내게 메뉴를 상담하고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의 콘셉트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번 방한 스페셜 디너처럼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할 때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 자신감이 꼭 필요하다. 레스토랑을 찾아주시는 고객들을 직접 만나 인사하는 것도 방한의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방한 스페셜 메뉴에서 한국의 봄나물을 많이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봄나물이나 채소, 식재료 중 선호하는 것이 있다면? 봄은 요리에서도 ‘신선함’과 ‘자연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한국에는 특히 이번 메뉴에 사용된 곰취, 미나리, 세발나물, 두릅처럼 독특한 풍미를 지닌 여러 가지 봄 채소가 있다. 그중 한 가지를 꼽긴 어렵다. 셰프에겐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늘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입견과 한계를 두지 않기 위해 특정 식재료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이번 메뉴에도 포함된 ‘쟈흐당마항Le jardin marin en cinq’을 예로 들자면, 육류와 생선의 조화가 가장 큰 특징인데, 계속해서 재료를 바꿔가며 변화를 주고 있다. 현지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것도 이 메뉴의 큰 특징이다. 그래서 파리와 서울의 ‘쟈흐당마항’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본인 요리의 정체성을 정의한다면? 열정과 사랑이 담긴 솔직한 마음. 나뿐 아니라 이곳 직원들 역시 진심을 담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제일 좋은 것을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진심, 자유분방함,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피에르 가니에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요리사’로서 요즘 당신이 꽂혀 있는 것이 있다면? 인생은 긴 여정이다. 나는 단기적으로 무엇인가에 집중하기보다 주변을 먼저 살피는 편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때로는 어떠한 것을 새롭게 검색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며, 나의 일과 관계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한다. 특히 요리는 ‘공예’와 연결되는 절제된 예술이다. 이것은 우리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처음 문을 열었던 16년 전과 달리 한국의 미식 신도 발전을 거듭했다. 당시엔 없었던 ‘미쉐린’도 서울에 상륙했고, 수준급 프렌치 레스토랑도 많아졌다. ‘미식 도시’로서의 서울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식 도시로서 서울의 잠재력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여러 셰프를 알고 있는데, 그들은 매우 스마트하며 고객에게 좋은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에너지를 다해 열정적으로 일한다. 그들이야 말로 서울, 한국의 ‘미식 문화’을 이끌어나가는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프랑스에서 일하는 젊은 한국인 셰프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을 지켜보면, 그들의 일에 대한 집중력과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곳에 거주하며, 좋아하는 지역은 어디인가? 운이 좋게도 파리 교외에 두 채의 집을 보유하고 있다. 한곳은 ‘페르체Perche’라는 지역인데, 이곳에는 내가 가꾸는 밭이 있고, 말을 키우기에도 좋은 장소다. 다른 한 집은 ‘벨르일르Belle-île’섬의 바다 옆에 있다. 이렇게 자연 속에 있는 프랑스의 두 집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고, 산에 가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별실 ‘모파상’. 유명한 프랑스 문인들의 이름을 따온 예술적인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당신을 보며 꿈을 키워나가는 셰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피드백이다. 미쉐린 스타나 명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100% 집중해 요리하고 서비스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30대 때 일에만 너무 집중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될 때가 많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길 당부하고 싶다. 더불어 스트레스가 많은 만큼, 자기 내면을 돌볼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이 꼭 필요하다.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심리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의 경험을 쌓아나가길 바란다.
COOPERATION 롯데호텔 서울(77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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