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5월호

ONE STEP CLOSER #1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넘나들며 서로의 성장을 돕고,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다. 김종덕×조용진×최호종, 신지혜×강혜정, 전종환×오승훈이 그렇다. 특별함을 내세우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김제원

비언어의 예술로 이뤄낸 합일 예술감독, 김종덕×무용수 조용진·최호종



(왼쪽부터) 최호종이 입은 슬리브리스 톱, 데님 팬츠, 부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종덕이 입은 컷아웃 스트라이프 패턴 재킷은 지민리.

블랙 팬츠는 레이블리스. 부츠는 생 로랑. 조용진이 입은 블랙 팬츠는 레이블리스. 슈즈는 킨치.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무용은 언어적 표현 대신 몸짓과 표정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감정을 유발합니다. 무대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현장성과 일회성이 짙은 장르죠. 저와 함께한 두 무용수는 이러한 예술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합니다.

그렇게 무대에 선 그들을 절대 의심하지 않아요.” _ 김종덕


(왼쪽부터) 최호종이 입은 실크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종덕이 입은 자카르 실크 재킷은 엠포리오 아르마니.

조용진이 입은 블랙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난해 4월부터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김종덕 감독은 국립무용단을 재정비하며 단원들의 특징과 장점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24년 4월, 그는 무용수 조용진, 최호종을 주역으로 내세운 대형 창작 공연 <사자의 서>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그가 새로이 그리는 국립무용단의 1막이 된 작품 <사자의 서>는 티베트 승려 파드마삼바바의 불교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착안해 제작됐다. 총 3막으로 구성한 무용극 <사자의 서>는 사후 49일간의 여정을 무용이라는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유한한 인간의 삶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묵직한 변화구를 던진다. 국립무용단원 대다수가 참가하는 대형 작품인 만큼 김종덕 감독과 조용진, 최호종을 필두로 한 50여 명의 무용수는 서로를 오롯이 믿고 의지해야 했다. 몇 마디의 말 대신 손끝에서 피어나는 유려한 몸짓으로 함께하며, 이를 통해 하나라는 시너지를 맺을 수 있음을 전하는 세 사람 사이에는 굳건한 믿음의 끈이 자리했다.


<사자의 서>는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후 1년 동안 감독님을 비롯해 국립무용단이 쏟아부은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미지의 영역인 사후 세계를 총 3막 규모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작품의 밑그림을 위해 오랜 기간 고심했으리란 확신도 들고요.

(김종덕)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2020년, 피크닉에서 열린 전시 <명상, 순수한 의식의 바다를 만나는 방법>을 봤습니다. 석실 같은 공간에 들어서면 타다 남은 재가 직사각형 모양으로 쌓여 있고, 망자를 위로하는 <티베트 사자의 서>가 낭송되는 형식의 작품인 ‘바르도’가 전시되어 있더군요. <티베트 사자의 서>는 49일 동안 이승에 머무는 망자가 공포와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위로하는 불경이에요. 전시를 통해 저도 제 삶을 돌아봤습니다. 작품에서 말하는 죽음이 삶의 연장선이자 결과물이라 느껴졌거든요.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는 거죠. 이번 작품을 통해 죽음이라는 현상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죽음 직후, 의식의 바다를 표현한 1막부터, 49일의 여정이 담긴 2막, 그리고 망자의 마지막을 다룬 3장 모두 이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달려가는 셈이죠.


사후를 다루는 작품인 만큼 무대 위에서 몸으로 이야기를 표현해야 하는 무용수에게는 심적인 부담감이 컸을 듯합니다. 특히 두 분 다 극을 이끄는 망자 역을 맡은 만큼 어깨가 더 무거웠을 테고요.

(조용진) 감독님께서 그린 구성에 무용수의 해석을 얹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아무래도 살아 있는 동안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을 표현해야 하는 만큼 동작에 담아내는 정서에 대해서 고민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논의는 늘 감독님과 함께 상의했어요. 언제나 열려 있는 분이시거든요. (최호종) 무용수는 디테일한 터치를 입히는 역할을 하는 만큼, 어떻게 해야 우리의 몸짓과 감정이 작품에 녹아들 수 있을지가 중요했어요. 무용수가 세부적인 것을 통해 공연의 큰 몸집을 상상해본다면 감독님께서는 공연의 구성이나 흐름을 고려하는 넓은 시야로 자잘한 부분까지 바라보세요. 저희의 관점과 감독님의 시각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어서 저를 포함해 모든 무용수가 공연에 자연히 녹아들지 않았나 싶어요.


연기에 임하는 무용수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었다면요?

(김종덕) 큰 그림은 제가 그리지만, 각 무용수의 해석과 개성이 더해질 수 있도록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편입니다. 각자 개성이 다른데, 제가 동작에 대한 디렉팅을 전하면 전할수록 무용수가 보여줄 수 있는 표현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죠. 제가 늘 주장하는 건 하나의 동작을 구성하는 데 주제어를 쥐어줄 수는 있지만 이를 반복, 변화, 발전, 왜곡, 해체의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것으로 체화하는 건 무용수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제에 대해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표현하도록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고 매번 숙제를 내줬죠.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았나요?

(조용진) 계속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아직 공연 중이기도 하고, 동작의 디테일에도 계속 변화를 주면서요. 촬영장 도착하기 전까지도 계속 수정에 수정을 반복했습니다.(웃음) (최호종) 저도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안무 조율에 몰두해요. 작품이 지닌 주제의 깊이감 때문이라도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더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다만, 무용수라면 무릇 그래야 한다는 강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우선은 공연 자체를 즐기되 영감의 순간이 찾아오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기민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해요.


감독님이 보시기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공연 중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 사람의 합은 어땠나요?

(김종덕) 본격적인 공연 제작 작업 전부터 저는 주역으로 이 두 사람을 낙점해뒀습니다. 제가 이번 작품 작업 기간을 통틀어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무용은 신체를 재료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공간성의 총체와 같은 예술이에요. 그런데 많은 무용가가 춤이 아닌 표정을 통해 이를 전달하려 합니다. 그건 연기죠. 그래서 제가 이끄는 작품에서는 무용수들에게 과한 분장과 화려한 착장을 시도하는 건 경계합니다. 몸이라는 언어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해주고 싶거든요. 이미 두 사람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신체 언어에 최대한 집중하며, 이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절제하는 태도를 취할 줄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제 바람과 철학을 이해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너무 좋은 동료라 봅니다. 다만 종종 하는 잔소리가 있어요. 호종 씨에게는 늘 자기 자신을 과소비하면 안 된다고 말해요. 가진 재능이 너무 많은데, 이를 무분별하게 보여주다 보면 자기 한계에 봉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오기 마련이거든요. 용진 씨에게는 너무 반듯하다고 말합니다. 가끔은 내려놓을 필요도 있는데, 매번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내달리고, 항상 세련된 몸짓을 보여주는 무용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면 자칫 작품의 몰입도를 해칠 수도 있으니까요. 두 사람 모두 지금도 너무 훌륭한 무용수이지만, 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어마어마해서 매번 한 마디씩 얹습니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자리를 빌려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김종덕) 두 사람 다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아꼈으면 좋겠어요. 물론 매사에 열정적으로 자신을 갈고닦는 건 꼭 필요한 덕목이긴 합니다만, 단거리 선수가 아니잖아요. 짧은 시간 폭발적인 스퍼트를 내는 것보다 더 멀리 보고 힘이 닿는 데까지 꾸준히 달려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에너지를 축적해야 하거든요. 방전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두 사람 모두 더 좋은 무용수가 되리라 믿거든요. (조용진) 영원을 약속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감독님은 국립무용단에 선물처럼 찾아온 분이에요. 그리고 저희에게 좋은 작품을 주셨죠. 저희는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요. 힘이 닿는 데까지 서로를 믿으면서요. (최호종) 그러니까 저희 좋은 작품 함께 많이 해요, 감독님.



“무용이란 순수 예술에 몸담는 무용수로서 저희의 존재 가치를 더욱 탐미하고

탐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그 과정에서 좋은 선배이자 최고의 길라잡이가 되어주시는 분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요.” _ 조용진, 최호종


조용진이 입은 흰색 리넨 셔츠는 트랜짓. 스커트 레이어드 데님 팬츠는 준지.


STYLIST 현국선 HAIR 이영재 MAKEUP 김민지

목록으로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