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4월호

그의 손끝을 주목하라, 지휘자 윤한결

젊은 지휘자를 위한 최고의 등용문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의 2023년 우승자 윤한결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무대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EDITOR 이연우 GUEST EDITOR 박지혜(인터뷰) PHOTOGRAPHER 송근도

윤한결  1994년 대구 출생. 예원학교를 작곡 전공으로 졸업하고 독일 뮌헨 음대에서 작곡과 피아노, 지휘를 전공했다. 2015년 제네바 콩쿠르, 2016년 바젤 작곡 콩쿠르 등에 출전하며 작곡가로서 다수의 콩쿠르에 입상했으며, 2021년에는 최신작인 ‘그랑드 히팝’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됐다. 2019년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 및 아카데미에서 역대 최연소로 네메 예르비 지휘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에는 제1회 KNSO 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와 관객상을 수상했다. 2023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상을 수상했고,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지휘자로서 다양한 악단과 함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는 평소보다 더 긴 줄이 이어졌다. 일부는 라벨 스페셜리스트로 손꼽히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 에프랑 바부제가 연주하는 2개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려는 관객, 또 다른 일부는 지난 2023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이하 카라얀상)에서 우승을 차지한 젊은 지휘자 윤한결의 지휘를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관객이었을 거다. 물론 둘 다일 수도 있다. 이날 공연에서는 두 곡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전후로 윤한결이 고심해서 선택한 스트라빈스키의 두 작품, ‘풀치넬라 모음곡’과 ‘불새 모음곡’(1919년 버전)이 각각 배치되었다. 긴 프로그램의 마지막, 여느 교향악곡 중에서도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엔딩으로 손꼽히는 ‘불새 모음곡’이 마침내 윤한결의 손끝에서 단숨에 정지하자, 잠깐의 정적과 함께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여기엔 음악에 대한 감동은 물론, 이제 긴 여정을 시작하는 젊은 지휘자에게 보내는 따듯한 응원이 담겨 있었다.

젊은 지휘자를 발굴하는 세계적 권위의 지휘상으로 손꼽히는 카라얀상을 수상한 윤한결은 이제 지휘자로서 본격적인 출발점에 서 있다. 특히 그는 올가을, 카라얀상의 가장 큰 부상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데뷔 무대를 앞두고 있다. 주목할 점이 있다면, 윤한결이 지휘자이기에 앞서 작곡가로서 DNA를 지닌 인물이라는 점이다. “대회 때도 규모와 테마에 맞는 현대곡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도 새로운 곡을 찾다가 ‘차라리 하나 쓸까’ 하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그게 컨펌이 떨어졌어요. 지금은 지휘보다 곡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생각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이렇듯 그를 직접 만나고 받은 인상은 그가 신인이라기엔 능청스러울 정도로 대범한 음악가라는 사실이다. 망설임 없이 단호한 지휘, 그리고 작곡가로서 십수 년간 악보와 음표를 연구해온 축적된 시간이 앞으로 그의 앞에 어떻게 펼쳐질까. 음악에 대해 두려움이나 엄숙함을 갖기보다는 지금 현재 자신의 음악과 시간에 충실하겠다는 윤한결, 그와 나눈 이야기.




서울예고 1학년 때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났다. 왜 뮌헨이었나?

대구 외곽 지역에서 자랐는데, 작곡 전공으로 예원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학교 생활도 만족스러웠지만 한 가지, 작곡 수업이 입시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당장 떠오르는 곡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는데, 당시 교육은 음악 이론에 집중했다. 좀 더 창작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원학교 졸업 후 서울예고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3개월간 독일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독일의 몇 개 음대에 붙었는데 그중 뮌헨 음대를 선택했다. 당시에 이자벨 문드리Isabel Mundry라는 유명한 작곡가가 교수로 부임했는데, 내가 마침 그 타이밍에 지원하고 선생님 눈에 들어서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본인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걸 언제 알게 됐나.

부모님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당시 유행하던 카라얀의 베토벤 LP 같은 것들이 집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서너 살 때였나, 평소엔 주로 부모님께서 ‘호두까기 인형’ 같은 걸 틀어주셨는데 실수로 브람스 1번 교향곡을 틀고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1악장 테마가 ‘꽝꽝’ 하는 큰 소리로 시작해서 아이에게는 무서울 수 있는 곡인데, 4악장에서 유명한 ‘알프스 테마’의 멜로디가 나오자마자 피아노로 가서 ‘미레도솔’ 멜로디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 이야기를 아버지께 했더니 제가 절대음감이라는 걸 눈치채시고 피아노 학원에 보내셨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는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곡을 마음대로 변주하며 놀았던 것 같다. 운 좋게도 당시 계명대 작곡과에 다니셨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 한 분이 내 모습을 보시고 부모님께 “얘는 작곡을 가르쳐야 된다”라고 하셨다더라.


뮌헨 음대에서 작곡과 피아노, 지휘를 동시에 전공했다. 어떻게 3가지 전공을 다 하게 된 건가?

독일로 가면 창작의 길이 열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갔는데, 막상 가니까 힘들더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현지에서 이미 발전되어 있는 음악의 갭이 너무 커서 그걸 따라가기도 벅차고, 그곳에서의 작곡이라는 것이 훨씬 더 철학적이고, 정확하고, 아이디어 중심적이다 보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곡을 쓰는 스타일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기숙사에서 만난 한 친구가 피아노나 지휘를 전공해보라고 추천을 하더라. 결국 피아노과와 지휘과의 입시를 또 봐서, 결과적으로 시차를 두고 3개의 전공을 하게 됐다. 그 친구 역시 작곡과 바이올린, 지휘 3가지를 전공했는데, 그 친구도 지금은 유럽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서로가 쓴 곡을 연주해주기도 하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작곡도 하고 있지만, 결국은 지휘자를 택했다. 3가지 중에서 지휘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과거 브람스나 말러, 스트라빈스키가 살던 시대만 해도 지휘자라는 직업이 워낙 새로웠고, 작곡 분야도 혁신의 정점까지 오르진 못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작곡이나 지휘를 병행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다면, 요즘은 너무 세분화돼서 동시에 최고의 경지로 가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은 것 같다. 2017년까지는 사실 작곡 대회를 굉장히 많이 나갔다. 그런데 계속 2~3등에 머물렀고, 유명한 콩쿠르에는 거의 다 참가해 더 이상 나갈 대회가 없을 정도였다. 고민하다가 지휘는 워낙 재밌어하고 좋아했으니 2018년부터는 지휘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했다. 작품은 계속 쓰지만, 오디션이나 콩쿠르에 참가하는 부담은 지휘로 넘긴 거다.


그렇다면 지휘자, 혹은 음악가로서 실질적인 배움을 받게 된 스승은 누구인가?

너무 많다. 특히 네 분이 생각난다. 우선은 지휘과 교수님이었던 두 분인데, 한 분은 카를스루에 국립극장 음악감독이신 게오르크 프리치Georg Fritzsch, 한 분은 전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음악감독이신 마르쿠스 보슈Marcus Bosch다. 프리치 선생님은 굉장히 섬세하고 인자한 스타일이시고, 보슈 선생님은 키가 크고 풍채가 있으셔서 오라 그 자체로 지휘를 하시는 분이다. 이렇게 극과 극인 선생님들께 배우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또 한 분을 꼽자면, 취리히 음대 지휘과에 계셨던 요하네스 슐레플리Johannes Schlaefli 선생님이다.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 참가 당시 나의 멘토이셨는데, 그 일주일간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개인의 장점을 깊게 들여다보고 사려 깊은 조언을 해주셔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마지막으로 지휘자 만프레트 호네크Manfred Honeck를 꼽고 싶다. 직접적으로 나를 가르쳐주신 적은 없지만, 콩쿠르 등을 통해 만날 때마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2022년에는 세계적인 클래식 매니지먼트 회사 아스코나스 홀트Askonas Holt와 계약을 맺었다. 카라얀상 수상 이전인데,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에이전트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콩쿠르 우승 같은 방법도 있지만, 무엇보다 연주 경험이 많아야 하는 것 같다. “아, 저 사람 재능 있다”라고 생각해서 신인을 발굴하기보단, 경험이 많은 사람을 더 큰 무대로 키워주는 게 그들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2019년 네메 예르비 지휘상과 제1회 KNSO 국제지휘콩쿠르 수상 이후 연주 요청이 정말 많이 들어왔다. KNSO 콩쿠르 수상으로 했던 첫 연주가 KBS교향악단과 통영음악제에서 했던 연주였는데, 그때 많은 관계자가 저를 눈여겨본 것 같다. 몇 달 뒤에 아스코나스 홀트에서 연락이 왔고, 2022년 예술의 전당에서 주최한 교향악축제 때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페트르슈카’, 한경필아르떼필하모닉과 함께한 브람스 4번 교향곡 연주 영상을 보냈다. 그러곤 곧바로 미팅하고 계약까지 이어졌다. ‘와, 신기하다’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카라얀상에 도전했고, 결국 우승했다.

사전에 아스코나스 홀트와 상의했는데, 카라얀상이라면 나가도 좋겠다는 답을 받았다. 이 대회가 콩쿠르라기보단 ‘프라이즈’의 형식이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지휘 콩쿠르가 지정곡이나 선택곡을 짧게 연주하고 우승자를 가린다면, 카라얀상은 지휘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하루씩 연주하고, 우승자를 다음 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재초청하는 형식이다. 파이널리스트 3인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승 이상의 기쁨이 있었고, 잘츠부르크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라던 것 이상의 결과였다. 파이널 공연에서는 그저 기회를 얻었으니 잘해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악단이 있나? 콩쿠르 이후에는 주로 어떤 일정을 소화했나.

지금은 어디도 속해 있지 않은 상태다. 2021년까지 독일 브란덴부르크 극장 오케스트라와 메클렌부르크 주립극장에서 일했는데, 계속 묶여 있다가는 오디션이나 다른 좋은 연주 기회를 놓칠 것 같아서 그만뒀다. 지금은 일단 최대한 많은 악단과 인연을 쌓자는 전략이다. 카랴안상을 탄 전후로 유명한 지휘자나 악단과 틈틈이 일하고 있다. 작년 1월에 사이먼 래틀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했던 유럽 투어에 함께했고, 7월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하는 뮌헨의 ‘오데온스플라츠 콘서트’의 야외 리허설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의 데뷔가 확정되어서, 오는 9월에 3번의 공연을 함께할 예정이다.


나만의 지휘, 곡 해석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요즘 같은 시대엔 레퍼런스가 너무 많다 보니 도움이 되는 동시에 독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창 지휘를 공부할 때는 분석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저 지휘자는 왜 저렇게 할까? 왜 멋있는 걸까? 저걸 통해서 어떤 효과가 나는 걸까? 이런 식으로 의문을 가졌다. 결국은 종이 한 장의 차이고 정답은 없다. 해석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흐름이나 템포에서 아주 특출난 레코딩을 듣고 무심결에 받아들이면 전체적인 나의 해석에도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속의 디테일, 이를테면 작은 윙크 한 번 같은 것들은 참고하는 편이다. 작은 단서, 특정 악기의 소리나 단원들의 컨디션 같은 것에서 시작해, 완전히 다른 나만의 해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보려는 편이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무대나 곡 그리고 지휘자로서의 비전이 궁금하다.

어딜 가나 그때그때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다. 좋아하고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싶은 작곡가는 스트라빈스키, 브람스, 브루크너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어떻게 이렇게 곡을 썼을까’ 하고 궁금해하던 작곡가들이다. 스트라빈스키는 혁신적이면서도 오케스트레이션이 굉장히 멋지고, 브루크너는 긴 시간 동안 계속 멋진 사운드를 끌고 나간다는 점이 놀랍다. 브람스의 경우 굉장히 체계적이고 수직적인 방식으로 곡을 썼는데,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놀랍도록 낭만적이라는 점이 대단하다.


경쟁이 심한 음악계에서 젊은 지휘자로서 힘든 점은 없나.

가장 힘든 건 비행기 연착과 기차 연착이다.(웃음) 음악이나 지휘 모두 평생 배워야 하는 일이지만,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멋진 지휘자에 대한 로망 같은 건 없고,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20~30대 지휘자에게 70~80대 지휘자의 연륜을 요구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70~80대 지휘자에게 20대의 열정을 요구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모두가 인생의 길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이를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STYLIST  문승희  HAIR & MAKEUP  이담은

COOPERATION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523-6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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