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꼽히는 발레는 오랜 세월, 예술가와 브랜드에도 마르지 않는 영감으로 작용해왔다. 발레리나의 모든 동작을 그림으로 담아내려 했던 화가 에드가르 드가를 비롯해, 발레리나의 몸짓을 담은 주얼리 브로치, 가까이는 발레리나 플랫 슈즈까지, 발레가 ‘예술’과 ‘패션’에 주는 영감은 무궁무진하다. 이는 20세기 초 다양한 음악가와 무용수,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패션 세계를 넓혀나간 가브리엘 샤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때 전설적 무용가인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 카리아티스Caryathis와 함께 무용 수업을 듣기도 한 그는 이를 통해 정확한 동작을 취하는 데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기도 했다. 훗날 이어진 샤넬과 안무가들의 협업은 샤넬 개인의 예술적 여정이나 취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대 발레 역사 속의 샤넬
1913년 프랑스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한 발레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은 클래식 음악계와 무용 예술계에 모두 센세이셔널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기존의 우아한 발레 음악과 달리 공연장에 울려 퍼진 으스스한 불협화음과 폭발적인 리듬, 민속적인 무대의상과 무용가 바츨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의 파격적인 안무는 기존의 발레 문법에 익숙했던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공연을 감상한 가브리엘 샤넬은 그 ‘파괴적 창조’의 장면을 목격하고 심미적 충격에 빠진다. 이를 계기로 샤넬은 사교계 명사였던 미시아 세르트Misia Sert를 통해 ‘봄의 제전’을 초연한 발레단 ‘발레 뤼스Ballet Russe’의 창립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를 소개받았고, 이들을 후원하게 된다. 샤넬은 특히 디아길레프가 ‘봄의 제전’을 재상연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때 그를 도왔으며, 결국 이 작품은 개작을 거쳐 1920년 말에 재상연되었다. 가브리엘 샤넬과 무용의 인연은 꾸준히 이어졌다. 발레 뤼스의 신작 ‘르 트랑 블뢰Le Train Bleu’의 의상 작업에 참여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비전을 펼쳐간 것. 1924년 초연한 ‘르 트랑 블뢰’는 당시 유행했던 스포츠와 수영을 풍자한 작품으로,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한가로운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함께 작품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대본은 장 콕토Jean Cocteau, 작곡은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무대 장식은 앙리 로랑스Henri Laurens, 무대 장막과 프로그램은 파블로 피카소가 맡았으며, 샤넬은 무대는 물론 실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는 현대적 의상을 제작했다. 격식을 중시하는 발레계에서 수영과 테니스웨어에 영감받은 샤넬의 룩은 혁명과도 같았다. 이후에도 샤넬의 협업은 계속되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하고 발란신이 안무를 맡은 ‘아폴롱 뮈자게트Apollon Musagète’,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구상한 ‘바카날Bacchanale’ 등으로 이어졌다. 무대의상 제작은 샤넬의 예술적 여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함께하는 ‘창조의 여정’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이어받은 샤넬 하우스 역시 무용 분야에 다양한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봄의 제전’ 안무가였던 니진스키를 기리는 ‘니진스키 어워드’의 공식 파트너로 활동 중이며, 2018년부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시즌 오프닝 갈라를 후원해왔다. 2020년부터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공식 후원사가 되어 이들의 모든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2021~2022년 시즌부터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위한 특별 선물이 추가되었다. 무용 학교 학생부터 프리마발레리나까지 모든 무용수가 한 무대에 오르는 ‘데필레défilé’를 위해, 프리마발레리나가 입는 튀튀와 코르셋, 티아라를 제작한 것. 자수 공방 르사주Lesage와의 창조적 협업을 통해 탄생한 아름다운 의상들은 앞으로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시즌 오프닝 때마다 데필레 무대에 등장할 예정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지젤’ 한국 공연
지난 3월 8일, LG아트센터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199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 이래, 발레단 전체의 내한으로는 무려 30년 만의 공연이다. 이들이 들고 온 작품은 바로 낭만 발레의 정수로 꼽히는 ‘지젤’. 더구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지젤은 조금 더 특별한데, 바로 이들이 1841년 파리에서 ‘지젤’을 세계 초연한 발레단이기 때문이다. 시골 처녀와 귀족 청년의 사랑을 담은 ‘지젤’은 여러 클래식 작품 중에서도 특히 동시대적인 재해석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정통적 해석을 고수한다.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게 접근했다. 지젤은 당시의 무대 장식과 의상 등에 충실하면서도 무용수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작품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새로운 수장으로 이번 내한 공연을 이끈 호세 마르티네스José Martinez의 설명이다. ‘지젤’은 주인공을 맡는 수석 무용수의 역량이 결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미리암 울드브람, 레오노르 볼라크, 도로테 질베르가 지젤을, 제르맹 루베와 폴 마르크, 기욤 디오프가 알브레히트를 각각 연기했다. 특히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 남성 에투알 위고 마르샹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기욤 디오프는 이를 계기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최초의 흑인 에투알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번 서울 공연은 “우아하고 매혹적이다”라는 극찬을 받으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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