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론진 CEO 마티아스 브레스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시장에서 론진의 성장 속도를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론진의 헤리티지와 기술력이 미디어와 마니아들을 통해 입소문을 탄 데다, 배우 정우성을 앰배서더로 선정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도 적중했다.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대화가 오갔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가끔 격렬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가짜 스토리텔링, 혹은 기술적 진전 없이 가격만 올리는 경쟁사들에 대해 얘기할 때였다. 그건 분노가 아니라 론진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서울은 몇 번째 방문인가?
이번이 15번째 방문이다. 해밀턴 CEO로 일할 때 처음 서울에 방문한 이후 거의 매년 이 도시에 오고 있다. 매번 올 때마다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놀라운 도시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광경만이 아니다. 서울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매년 정신적, 물질적으로 변하는 걸 느낀다. 서울 같은 도시는 서울밖에 없을 것이다.
론진 CEO로 부임한 지 2년째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를 기억하는지? 어떤 기분이었나.
론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 브랜드 중 하나고, 론진을 포함한 상위 4개의 브랜드가 다른 모든 시계 브랜드를 합친 것보다 크다. 이런 브랜드에 부임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고백도 해야겠다. 나는 시계 산업에 20년 이상 종사했지만 론진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시계 산업의 혁신을 이끈 브랜드라는 걸 잘 몰랐다. 론진이 100년 전 고주파 무브먼트를 발명해 스포츠의 시간 측정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도, GMT 무브먼트와 플라이백 무브먼트를 발명한 것도 몰랐다. 아마 과거의 나처럼 론진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 헤리티지를 잘 소개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론진은 브랜드를 CEO에 적응시키는 곳이 아니라 CEO가 브랜드에 적응해야 하는 곳이었다.
론진에 부임하기 전 해밀턴과 라도의 CEO를 역임했다. 론진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브랜드가 각각의 DNA를 가지고 있지만, 론진은 더욱 특별한 면이 있다. 우선 포트폴리오 밸런스다. 많은 브랜드가 남성과 여성, 혹은 스포츠나 클래식 중 어느 하나에 강점을 가진다. 예컨대 내가 맡았던 해밀턴의 경우 고객의 80%가 남성이었다. 하지만 론진은 고객의 남녀 성비가 거의 같고, 클래식과 스포츠 라인도 동일하게 강하다. 이런 균형감은 시계 산업에서 매우 드문 케이스다.
당신이 부임한 이후 론진의 마케팅이나 세일즈 전략에 변화가 있었나?
최근 시장의 특이점 중 하나는 브랜드의 역사, 헤리티지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이야기에 소비자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 역시 그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GMT 기능을 탑재해 여행이 잦은 이들에게 유용한 ‘스피릿 줄루 타임’ 워치
올해 론진의 클래식 워치를 많이 출시했는데, 그 이유 때문이었나?
그렇다. 론진은 과거에도 빈티지 워치가 유명한 브랜드였고, 거기서 파생된 클래식 라인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론진이라는 브랜드의 유구한 역사 때문이다. 이 역사를 좀 더 현대적인 느낌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예컨대 올 상반기에 출시한 ‘스피릿 줄루 타임’ 워치는 GMT 워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메이크했고, ‘울트라 크론’ 워치는 론진의 자랑인 고주파 무브먼트 기술을 재해석했다. 아직 우리의 강점인 헤리티지를 잘 모르는 소비자가 많다. 이들을 위해 좀 더 홍보를 강화할 생각이다.
어떤 브랜드는 일단 제품을 개발한 다음, 인위적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굉장히 부도덕한 일이고,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다. 특히 젊은 시계 마니아들은 이런 가짜 스토리를 굉장히 싫어한다. 젊은 소비자일수록 시계에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진심을 배반하는 건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앞서 당신의 대답처럼, 론진은 남성과 여성 라인의 판매가 비슷한 브랜드다. 이는 다른 시계 브랜드에서 보기 힘든 일인데, 왜 론진만 여성 라인의 판매가 강하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우아함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Elegance is an Attitude”라는 슬로건을 사용한 지 20년이 넘었다. 우리는 경쟁 브랜드에 비해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의 여성들에게 시계는 패션이나 메이크업처럼, 외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의 일부다. 그래서 우리는 제품을 만들 때 어떤 이미지를 불러올 것이지 염두에 두고 진행한다. 코코 샤넬이 말하지 않았나. “우아함은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이 공존할 때 나온다”라고. 이 문장이 우리가 하는 일을 완벽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시계 시장은 굉장히 크게 성장했다. 한국이라는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론진에게 매우 큰 시장 중 하나다. 한국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계속 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가격 정책도 그중 하나다. 론진은 독자적인 기술과 역사를 가진 브랜드지만, 한화로 200~600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우리는 합리적인 가격대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다. 일부 브랜드는 조용히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론진은 이런 가격 인상에 동참할 생각이 없나?
기술적 진보 없이 가격만 올리는 브랜드가 많다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시계를 사기 위해 수백만 원을 지불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장점을 보다 많은 소비자와 나누고 싶다.
한국에서 론진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비자들의 안목이 높아져서일까?
그렇다. 직업상 많은 국가를 다녔는데 한국의 소비자가 특히 스마트하다. 시계에 대한 지식도 뛰어나지만 좋은 제품을 알아보는 감별력 또한 상당히 높다. 우리처럼 헤리티지가 강한 브랜드는 수준 높은 소비자가 있는 시장이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 지난 5년간 한국 시장을 살펴보면 면세가 아닌 소매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이 데이터가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우아함은 태도에서 비롯된다”라는 론진의 슬로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누구일까? 최근 론진의 앰배서더가 된 수지라고 말할 건가?
물론이다(웃음). 앰배서더로 셀러브러티를 선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명세만으로 선정하는 건 아니다. 인물이 지니고 있는 철학과 이미지가 우리와 맞아야 한다. 올해 우리가 수지를 앰배서더로 선택한 건 그녀가 긴 시간 성실하게 활동해왔고, 아이돌에서 배우로 변신했으면서도 그 이미지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론진을 구매한 이들은 아마도 가격대가 비슷한 몇몇 브랜드 사이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민 끝에 론진을 구매했을 것이다. 그들은 왜 경쟁 브랜드가 아닌 론진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첫 번째는 엘레강스다. 우리는 여성 시계에 대한 역사가 깊기 때문에 경쟁사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있다. 두 번째는 제조 기술과 헤리티지다. 경쟁사들은 우리보다 헤리티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신제품을 만들 때도 계속 억지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가짜 스토리텔링이 필요 없다. 우리가 해온 것들을 정직하게 보여주기만 해도 되니까. 나는 그들이 우리와 경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968년 데뷔한 ‘울트라 크론 다이버’가 올해 ‘울트라 크론’으로 부활했다.

론진의 헤리티지와 앞선 고주파 기술을 바탕으로 완성한 ‘울트라 크론’ 워치.
‘울트라 크론’을 다시 조명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
부임 초기부터였다. 론진은 고주파 기술에 대해 선도적인 업체고, ‘울트라 크론’은 론진 고주파 기술의 상징적 모델이다. 사실 나는 부임 당시만 해도 ‘울트라 크론’의 헤리티지를 잘 몰랐다. 시계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던 나도 잘 모른다면 99% 이상의 소비자들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울트라 크론’의 혁신과 기술력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 말 나온 김에 올봄에 출시한 ‘스피릿 줄루 타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하이엔드 모델에 쓰이는 GMT를 탑재했다. 저가형 GMT 워치는 미닛 핸즈와 아워 핸즈가 분리되어 움직이지 않지만, ‘스피릿 줄루 타임’은 미닛 핸즈와 아워 핸즈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가격 대비 엄청난 하이 퀄리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올해 출시한 ‘스피릿 줄루 타임’과 ‘울트라 크론’ 모두 론진의 헤리티지를 재해석한 모델이다. 앞으로도 론진의 헤리티지를 재해석한 모델이 계속 등장할까?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곧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제품이 될 것이고, 우리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이동시켜줄 제품이라고 자신한다.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나 시계 산업은 경기에 상당히 민감한 분야인데,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전 세계가 경기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라는 공포가 만연했고, 론진 역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해 여름부터 매출을 회복했고, 최근까지 전보다 훨씬 높은 판매를 기록했다. 왜였을까? 사람들은 위기 상황이 오면 자기만족을 위한 투자를 늘리기 때문이다. 시계는 마음을 위로하는, 정서적인 물건이기 때문에 시계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행여 경기가 나빠진다 해도 시계 산업의 성장이 꺾이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올해 크리스마스 계획은?
마터호른 인근에 체르마트라는 작은 산악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거다. 아마도 열심히 스키를 타지 않을까?(웃음)
COOPERATION 론진(3479-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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