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5월호

HERITAGE OF VIENNA

합스부르크 왕가가 600년 동안 공들여 세운 모든 것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관광지 속 유적이 아닌 도시의 뼈대로서.
그 위로 오늘의 삶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EDITOR 김민지

약 136m의 첨탑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슈테판 대성당의 모습. © WienTourismus/Christian Stemper


완벽한 좌우대칭 구조의 프랑스식 정원을 품고 있는 벨베데레 궁전. 자연을 통제함으로써 바로크 시대의 권력을 상징했다. © WienTourismus/Julius Hirtzberger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는 벨베데레 궁전.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WienTourismus/Paul Bauer


비엔나에서는 일상과 역사가 같은 높이에 있다. 황실 납품업자의 후손이 같은 자리에서 구두를 짓고, 황실 제과사의 레시피로 만든 케이크가 오늘도 팔린다. 이 도시에서 과거는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된다. 처음 비엔나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부터 뭔가 달랐다. 도시가 자신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제국의 위상이 느껴지는 왕궁과 의회, 박물관, 오페라하우스가 자리한 비엔나 중심부의 원형 도로, 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찬찬히 거닐다 보니 그 기분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들 사이를 그냥 통과하고 있다는 가볍고도 조금 벅찬 느낌. 처음엔 그게 단순한 여행자의 흥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도, 나흘째 되던 날도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집약된 곳이 슈테판 대성당St. Stephen's Cathedral이다. 첨탑은 날씨에 따라 표정을 바꾼다. 흐린 날엔 무겁고 엄숙하며, 맑은 오후엔 황금빛을 받아 하늘 속으로 녹아든다. 비엔나 1구 한복판에 서 있는 이 고딕 성당은 12세기에 처음 지어진 이래 전쟁과 화재,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쳐 지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자이크 무늬 지붕 타일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을 담은 채 수십만 명의 발걸음 위로 빛난다. 슈테판 대성당에서 남동쪽으로 15분 정도 떨어진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미학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외젠 왕자의 여름 별궁으로 지어진 이 바로크 건물은 정원의 계단식 분수와 함께 박물관으로서 오스트리아 미술의 보고를 품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니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The Kiss’가 있었다. 황금빛 옷자락 속에 파묻힌 두 연인 앞에서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던 원본의 물질적 무게를 실감했다. 벨베데레의 진정한 즐거움은 정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이는 프랑스식 정원을 걷다 보니 왜 비엔나 사람들이 느릿하게 산책하는 법을 체화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됐다.



LIVING HERITAGE

대를 이어 지켜온 것들

유럽의 문화 수도, 비엔나의 자존심은 물건 속에서도 드러난다. 이 도시엔 합스부르크 황실 납품업자 칭호를 받고 수백 년을 이어온 브랜드들이 지금도 영업 중이다. 그 상표는 단순한 헤리티지 마케팅이 아니라 장인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 생존의 기록이다. 황실이 무너진 1918년, 비엔나에는 약 500개의 황실 납품업체가 존재했지만 그중 지금껏 살아남은 곳은 손에 꼽힌다.

가장 오래된 이름부터 시작하자면, ‘아우가르텐 포르첼라인Augarten Porcelain’은 1718년 창업해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이 직접 황실 소유로 접수한 유럽 두 번째 도자기 제조소다. 1864년 한 차례 문을 닫았지만 1923년 재창업해 지금도 아우가르텐 바로크 공원 안 공장에서 모든 작품을 수작업으로 빚고 있었다. 같은 시대의 황실 식탁을 채웠던 또 다른 물건은 유리로, ‘J. & L. 로프마이어Lobmeyr’는 1823년 개업 이래 지금까지 얇디얇은 크리스털 유리를 직접 제조한다. 쇼룸에서 잔 하나를 집어 들었을 때, 무게가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에 놀랐다. 그 얇음이 300년을 버텨온 기술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가벼움이 달리 보였다. 황실의 몸치장도 빠질 수 없다.

‘A.E. 쾨헤르트Köchert’는 1814년 창업해 1832년 황실 납품 칭호를 받은 보석상이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황후 엘리자베트에게 줄 첫 결혼기념일 선물로 주문한 27개의 다이아몬드 별, ‘시시 슈테르네Sisi-Sterne’가 바로 이곳의 작품이다(황후는 이 별들을 머리카락에 직접 엮어 달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유리 진열장 너머 반짝이는 별 모양 브로치를 바라보는데, 황실이니 황후니 하는 말들이 갑자기 멀지 않게 느껴졌다. 왕가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합스부르크 후손들은 가보의 감정을 위해 지금도 쾨헤르트를 찾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패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신발 이야기도 해야겠다. 브로이너슈트라세 4번지의 ‘루돌프 셰어 & 죄네Rudolf Scheer & Söhne’는 1816년 창업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스포크 구두 제작소다. 1878년 황실 납품업자 칭호를 받은 이곳에서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를 포함해 유럽 왕가 귀족 대부분의 발을 쟀다.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연간 300켤레만 제작하며, 한 켤레를 받으려면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한다. 7대째 가족이 운영하는 아틀리에에서는 1905년산 빈티지 싱어 재봉틀이 여전히 돌아가는 중이다. 장인이 가죽 다듬는 소리를 듣고 실밥 고르는 손끝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이 공간만큼은 100년 전과 오늘이 정말 같은 속도로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아우가르텐 포르첼라인과 200년 역사의 J. & L. 로프마이어 유리 제품들. © WienTourismus/Thomas Albdorf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스포크 구두 제작소인 루돌프 셰어 & 죄네. © SCHEER/Peter Rigaud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황후 엘리자베트에게 줄 첫 결혼기념일 선물을 주문했던 A.E. 쾨헤르트. © A. E. Köchert



WHERE TO EAT

먹는다는 것, 비엔나식으로

비엔나의 하루를 음식으로 설계한다면 점심과 저녁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야 한다. 낮은 느슨하고 사교적으로, 밤은 깊고 집중적으로. ‘춤 슈바르첸 카멜Zum Schwarzen Kameel’은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레스토랑 겸 델리다. 1618년 요한 밥티스트 카르멜이 이국의 향신료를 팔던 가게로 시작해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형태를 바꿔가며 살아남았다. 1825년엔 황실 납품업자 칭호까지 받았다. 베토벤이 드나들었고, 화가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발트뮐러가 지금도 쓰이는 로고를 직접 그렸다. 현재의 아르누보풍 인테리어는 1902년에 완성한 것으로 100년이 넘도록 거의 그대로다. 카운터에 늘어선 오픈 샌드위치 중 하나를 집어 오스트리아 화이트 와인 한 잔과 곁들이는 것이 이곳의 정석이다. 제대로 앉아 식사하고 싶어 2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바삭하게 튀긴 슈니첼을 조금씩 썰어 먹으며 400년의 역사를 느긋하게 만끽했다. 저녁은 전혀 다른 속도로 시작됐다. 비엔나 19구,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아래 자리한 ‘레스토랑 아마도어Restaurant Amador’로 향했다. 스페인 혈통의 셰프 후안 아마도어는 2017년 비엔나에 자리를 잡자마자 미쉐린 가이드 오스트리아에서 2스타를 받았고, 2019년에는 최초로 3스타에 올랐다. 2026년 올해도 어김없이 3스타에 오른 아마도어. 스페인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지중해의 감각, 독일에서 갈고닦은 고전 기법의 정밀함 그리고 오스트리아 현지 식재료에 대한 집착이 한 접시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놀라운 코스가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4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지만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춤 슈바르첸 카멜을 대표하는 오픈 샌드위치. 무려 400여년의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춤 슈바르첸 카멜. © Zum Schwarzen Kameel


2층으로 올라가면 슈니첼 등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Zum Schwarzen Kameel


캐주얼한 분위기의 춤 슈바르첸 카멜 1층 모습. © Zum Schwarzen Kameel


벽돌 아치형 천장의 와인 저장고 공간을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만든 ‘레스토랑 아마도어’. 오스트리아 최초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다. 비엔나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정교한 파인다이닝이라고 평가받는 셰프 아마도어의 메뉴. © Amador/Lukas Kirchgasser



WHERE TO STAY

역사가 깃든 건축, 만다린 오리엔탈 비엔나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돌고 싶다면 중심가의 어느 호텔에 머물든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비엔나 자체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머무는 곳이 달라야 한다. 링슈트라세 안쪽의 조용한 골목인 리메르가세 7번지에는 1908년 건축가 알프레트 켈러가 설계한 아르누보 건물이 자리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원 청사로 쓰였던 공간이다. 그리고 2025년 10월, 같은 건물이 ‘만다린 오리엔탈 비엔나Mandarin Oriental Vienna’로 새 삶을 시작했다. 만다린 오리엔탈의 첫 오스트리아 거점이기도 하다. 건물의 아르누보 파사드와 섬세한 내부 장식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고, 그 안에는 86개의 객실과 52개의 스위트로 꾸며졌다. 중정을 둘러싼 구조 덕분에 도심 한복판임에도 호텔 전체가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 복도에서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천장 몰딩 하나, 손잡이 하나가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슈테판 대성당까지 도보 5분, 국립 오페라하우스까지 도보 10분 거리지만, 리메르가세 자체는 관광객의 동선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다. 덕분에 아침에 창문을 열면 사람 소리보다 새소리가 먼저 들렸다. 식음료는 ‘아틀리에Atelier 7’이라는 이름 아래 레스토랑과 카페, 바 등 4개의 공간으로 운영되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르 셉Le Sept’에서는 현대 프랑스 기법에 아시아 감각을 얹은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내부에는 실내 수영장과 스파 트리트먼트 룸을 갖추고 있어 하루 종일 관광을 하고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에도 제격이었다.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는 럭셔리가 느껴지는 ‘만다린 오리엔탈 비엔나’의 스위트룸. © Mandarin Oriental Vienna


1908년에 지어져 법원 청사로 쓰이던 건물을 레노베이션했다. 기존의 역사적 디테일은 그대로 유지한 채 현대적인 디자인을 결합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 Mandarin Oriental Vienna


주소 Riemergasse 7, 1010 Wien, Austria



ART & CULTURE 3개의 미술관, 3개의 세기

비엔나에서 미술관을 고른다는 것은 어느 시대의 비엔나를 만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제국의 심미안, 세기말의 디자인 혁명, 그리고 한 여인의 집요한 수집 욕망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도시의 미술관 안에 살아 있다.


© WienTourismus/Paul Bauer


© WienTourismus/Paul Bauer


빈 미술사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건물 자체가 먼저 말을 건다. 링슈트라세에 면한 이 신르네상스 건물은 합스부르크 황실 컬렉션을 담기 위해 지은 공간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피터르 브뤼헐과 벨라스케스, 카라바조의 원본 작품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제국이 수백 년에 걸쳐 수집한 것들이 이 한 건물 안에 있다. 중앙 홀의 카페는 궁전 천장화 아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비엔나이기에 가능한 경험을 선사한다. 최소 반나절, 가능하다면 하루를 잡을 것. 체력이 된다면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빈 자연사박물관도 함께 둘러보자.


주소 Maria-Theresien-Platz, 1010 Wien, Austria



© MAK


© WienTourismus/Paul Bauer


빈 응용미술관 MUSEUM FÜR ANGEWANDTE KUNST(MAK)

1864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 시대에 설립된 응용미술 전문 박물관이다.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을 모델로 삼아, 공예와 디자인이 예술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했다. 중세부터 현재까지의 유리, 가구, 직물, 도자기가 전시실마다 다른 디스플레이로 펼쳐진다. 특히 <비엔나 1900> 상설전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사조 운동 제체시온Secession, 빈 공방Wiener Werkstätte, 아돌프 로스로 이어지는 세기말 디자인 혁명의 정수를 한눈에 보여준다.


주소 Stubenring 5, 1010 Wien, Austria



© Heidi Horten Collection/Ouriel Morgensztern


© Heidi Horten Collection


하이디 호르텐 컬렉션 HEIDI HORTEN COLLECTION

국립 오페라하우스와 부르크가르텐 사이에 자리한 합스부르크 시대 행정 건물. 오스트리아 출신 억만장자 컬렉터 하이디 괴스-호르텐(1941~2022)이 1990년대부터 수십 년에 걸쳐 모은 수백 점의 컬렉션이 이 안에 있다. 클림트에서 시작해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를 거쳐 동시대 미술까지,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이 한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클림트와 앤디 워홀 사이에 르네 마그리트가 있고, 마크 로스코와 프랜시스 베이컨과 장-미셸 바스키아가 있다. 건물 중앙을 3층 높이로 뚫어낸 공중 부양 전시 플랫폼은 그 자체로 조각이라 부를 만하다.


주소 Hanuschgasse 3, 1010 Wien, Austria



TRAVEL SUMMARY

총평 합스부르크의 유산과 오늘의 삶이 공존하는 비엔나를 깊이 있게 경험하는 헤리티지 & 미식 투어

추천 대상 역사·예술·음식 등 다방면에 높은 취향을 가진 3040세대 혼자 혹은 둘

추천 기간 5~10월, 4박 6일 일정

추천 코스

1일차 저녁 비엔나 도착 & 만다린 오리엔탈 비엔나 체크인

2일차 오전 슈테판 대성당 방문 → 점심 춤 슈바르첸 카멜 방문 → 오후 벨베데레 궁전 관람

3일차 오전 빈 미술사박물관 방문 → 하이디 호르텐 컬렉션 관람 → 저녁 레스토랑 아마도어 방문

4일차 오전 빈 응용미술관 방문 → 오후 아우가르텐 포르첼라인 쇼룸 & 로프마이어 탐방 → 저녁 르 셉 디너

5일차 오전 쾨헤르트 보석상과 루돌프 셰어 & 죄네 아틀리에 탐방 → 오후 국립 오페라하우스 관람 → 저녁 비엔나 시내 거닐며 여유 즐기기

6일차 오전 링슈트라세 산책 → 오후 인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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