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제작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완성한
다이닝 공간. 앞쪽 발코니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유서 깊은 빌딩 중 하나인 ‘세인트 어번The St. Urban’. 1900년대 초 건축가 로버트 T. 라이언스Robert T. Lyons가 프랑스 르네상스와 보자르 양식으로 설계한 이 상징적인 건물의 꼭대기 층에는 특별한 서사를 가진 이들의 안식처가 자리 잡고 있다. <브레이킹 배드>, <매드맨>, <워킹 데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들을 세상에 내놓은 전설적 미디어 경영인 조시 세이팬Josh Sapan과 그의 아내 앤 폴리Ann Foley가 그 주인공. 이들 부부가 자신들의 펜트하우스를 재해석하기 위해 손을 잡은 이는 뉴욕 디자인 위크에서 발표하는 ‘NYC×디자인어워즈’와 국제 인테리어 건축가 연맹에서 수여하는 ‘IFI 디자인 디스팅션 어워즈’ 등의 수상 경력에 빛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크리나 아르기레스쿠 로가드Crina Arghirescu Rogard였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 맥락을 현대적인 럭셔리로 치환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녀의 디자인 스튜디오 ‘크리나 아키텍처Crina Architecture’는 엄격한 건축적 구조 위에 예술적 큐레이션과 섬세한 질감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레이어링’ 기법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세인트 어번의 펜트하우스는 이미 강렬한 구조적 개성을 갖고 있었다. 이전 레노베이션을 통해 노출 철제 빔과 브러시트 스테인리스 스틸 계단, 메탈릭한 디테일이 강조된 상태였고 이는 자칫 차갑고 산업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다. 로가드는 이를 감추거나 상쇄하기보다 오히려 그 위에 촉감과 색채, 재료의 층위를 더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다시 조직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크리나 아르기레스쿠 로가드.

집 안의 중심 역할을 하는 로톤다 서재. 하워드 마이스터의 의자와 테이블, 직접 제작한 의자 등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말 그대로 ‘대조의 미학’이다. 브러시트 메탈의 차가운 표면 위로 벨벳과 모헤어, 가죽, 호두나무, 레진 같은 풍부한 소재를 겹겹이 배치하며 구조적 긴장감과 주거의 친밀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블루와 머스터드, 브라운, 회청색이 교차하는 팔레트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이 집의 감정적 온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메인 층은 거실과 다이닝, 라이브러리 라운지, 정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유동적인 구조로 재구성되었다. 노르딕 노트Nordic Knots의 ‘그랜드Grand’ 러그가 선명한 옐로 톤으로 각 공간을 묶고, 맞춤형 벨벳 소파와 레진 테이블, 래커와 가죽으로 마감한 콘솔 등을 리듬감 있게 배치해 로프트 특유의 개방감을 보다 생활감 있는 장면으로 전환한다. 이 집의 백미는 단연 구리 돔 타워 안에 자리한 로톤다 서재다. 2층 높이의 원형 공간은 그 자체로도 드라마틱하지만 로가드는 여기에 호두나무 패널과 맞춤형 레진 테이블, 하워드 마이스터Howard Meister의 금속 체어와 블루 모헤어 소재의 ‘브루털리스트Brutalist’ 체어를 더해 긴장감과 온기가 동시에 흐르는 장면을 완성했다. 원형의 건축적 엄격함과 유기적인 소재감, 그리고 클래식한 분위기와 현대적인 조형성이 한 공간 안에서 정교하게 맞물린다. 이 프로젝트가 인상적인 이유는 화려한 펜트하우스를 완성했다는 점보다 상반된 요소들을 충돌 없이 공존하게 했다는 데 있다. 역사적인 건물의 외피와 현대적 로프트 구조, 산업적인 금속과 부드러운 직물, 도시적 파노라마와 타운하우스 같은 친밀함이 하나의 서사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로가드는 이 집을 통해 현대적인 주거 공간이란 단지 세련된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과 취향, 삶의 방식이 켜켜이 축적된 결과물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왼쪽부터) 뉴욕 맨해튼에서도 유서 깊은 빌딩 중 하나인 세인트 어번. 1900년대 초 고전적인 분위기의 보자르 양식 건축이 돋보인다. 자연광이 아름답게 스며드는 메인 욕실.
조시 세이팬 부부와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처음엔 거실의 레이아웃을 다시 잡는 정도의 가벼운 의뢰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클라이언트와 협업이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우정도 쌓이면서, 프로젝트는 곧 펜트하우스 전체를 아우르는 레노베이션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거실의 배치를 새롭게 정의해 더욱 다재다능하고 매력적인 대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고, 현대적인 로프트 펜트하우스에 집다운 따뜻함을 부여하길 원했습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공간에 어떻게 반영되었나요? 부부는 전직 주요 미디어 경영인이며 자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펜트하우스는 종종 저녁 파티를 열거나, 성인이 된 두 자녀와 가족 모임을 갖는 장소이자 뉴욕과의 깊은 유대를 반영하는 생활 공간으로 기능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공적이고 사적인 장면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유연한 구조가 중요했습니다.
집의 구조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약 372㎡ 규모의 복층 펜트하우스로 메인 층에는 거실과 다이닝 공간, 도시 정원, 주방이 연결된 오픈 플랜 구조가 펼쳐집니다. 호두나무 패널로 마감된 원형 홀에는 서재가 있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구리 돔 아래 독서 공간과 발코니가 이어지고요.

(왼쪽부터) 한편을 다양한 아트워크로 꾸민 메인 침실. 벽 안쪽 오목하게 파인 공간을 침실로 만들어 안락함이 느껴지는 서브 침실.
이 집이 지닌 역사적 맥락도 흥미롭습니다. 세인트 어번은 1900년대 초 로버트 T. 라이언스가 프랑스 르네상스 및 보자르 양식으로 설계한 유서 깊은 프리워Pre-war 건물입니다. 장식적인 디테일과 맨사드Mansard 지붕(네 면이 모두 두 단계의 경사를 지닌 이중 경사 지붕), 코너 타워가 특징이며 펜트하우스의 독서실은 이 상징적 타워의 꼭대기, 구리 돔 아래에 자리합니다. 2010년대 초 진행된 이전 레노베이션에서는 브러시트 메탈, 노출 금속, 원형 다이닝 파티션, 계단 같은 포스트모던 요소가 더해졌어요. 저는 이런 요소들을 가리는 대신 ‘질감의 대조’를 통해 살리기로 했습니다. 차가운 금속 셸 위에 부드러운 벨벳과 모헤어, 가죽 등을 입혀 산업적인 날카로움과 가정집의 따뜻함이 공존하도록 층을 쌓았죠.
디자인의 주된 영감이 1970년대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의 집이었다고요? 네, 맞습니다. 클라이언트의 활기 넘치는 성격에 어울리는 소스를 찾던 중 1975년 2월호

직접 디자인한 가구들을 배치한 메인 거실. 다채로운 색감이 돋보이며, 창밖으로는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컬러 팔레트를 정할 때 전망보다 주변 환경에 더 집중하신 이유가 있나요? 펜트하우스의 전망은 훌륭하지만, 실내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창밖 풍경이 아니라 공간 자체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어퍼 웨스트 사이드의 벽돌과 브라운 스톤의 붉은색과 갈색, 재클린 케네디 저수지의 깊은 회청색, 센트럴파크 나무들의 노란색과 흙빛 톤을 실내로 끌어들였습니다. 외부를 집 안으로 끌어들여 친밀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공간 곳곳에 배치된 예술 작품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큐레이션은 아트 컨설턴트 오로르 뷔이에름Aurore Vullierme과 파리에 기반을 둔 아트 갤러리 아멜리 메종 다르Amélie Maison d’Art와 긴밀히 협업했습니다. 거실에는 아멜라 라시Amela Rasi의 대형 캔버스 작품과 나탈리 르뇨Nathalie Regnault의 세라믹 컬렉션을, 다이닝 공간에는 명 어소Myung Urso의 염색 작품을 배치했습니다. 메자닌 독서실에는 마농 지뉴Manon Gignoux의 수채화를 걸어 고요함을 더했죠.
이곳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과 가구는 무엇인가요? 단연 로톤다 서재입니다. 이곳의 유기적인 타원형 레진 테이블은 창문에 반사되며 원형의 방에 생명력을 불어넣지요. 또한 하워드 마이스터의 ‘P. 스트러트P. Strut’ 체어와 제가 디자인한 ‘브루털리스트’ 체어의 대조는 이 집의 콘셉트인 대조의 미학을 가장 잘 상징합니다. 톰 로저Tom Loeser의 흔들의자나 룰루 & 조지아Lulu and Georgia의 ‘이마라Imara’ 스툴도 로프트의 현대적 분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타운하우스의 친밀함을 품은 현대적인 로프트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억과 소재, 그리고 현대적인 로맨스가 겹겹이 쌓인 진정한 의미의 가족적인 집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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