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4월호

수집의 문법

수집가의 눈은 어디에서 출발할까. 
누군가는 자본의 흐름을 좇거나 트렌드에 주목하지만, 루디 청Rudy Tseng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어의 뿌리’에 닿아 있다. 푸신위Pu Hsin-Yu의 시정詩情을 탐닉하던 청년은 이제, 전 세계 비엔날레와 미술관이 가장 신뢰하는 동시대 미술의 조력자가 되었다.

EDITOR 박이현 WRITER 박수전

Photo: Lin Yueh-Hung, Courtesy of Tatler China


루디 청 타이베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컬렉터이자 큐레이터, 작가. 월트 디즈니 인터내셔널 타이완을 이끌었으며, 오사카 도지마 리버 비엔날레(2013)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테이트 모던과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SAM)의 소장품위원회, 아트바젤 ‘글로벌 패트론 카운슬’ 및 모리미술관의 ‘베스트 프렌즈’ 멤버로서 글로벌 기관과 아시아 미술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학창 시절 시詩에 매료되었고, 그 감성이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진화했다고 들었습니다. 청나라 황실의 일원이자, 마지막 황제 푸이Puyi의 사촌인 문인화가 푸신위(1896~1963)는 “나를 ‘화가’라 한다면 ‘서예가’라 할 수 있고, ‘서예가’라 한다면 ‘시인’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어요. 저에게 시와 고전 문학은 예술에 대한 미학을 논할 때 필수이며, 지금까지도 저는 그 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있습니다.


수집 초창기부터 영상 및 설치미술에 관심이 깊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20년이 넘는 시간을 영화 산업에 종사했습니다. 덕분에 영화에서 사용되는 은유, 언어, 형식적 전략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움직이는 이미지는 저에게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처럼 다가옵니다. 회화 혹은 사진과 비교해봤을 때, 영상이라는 장르는 더 강력한 감정적 설득력을 지닌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통해 서사를 유지하고 사건을 더 깊고 복잡하게 묘사할 수 있거든요.



Photo: Anpis Wang, Courtesy of Lee Studio

리밍웨이의 ‘The Mending Project’(2009~),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광경. 관객이 가져온 헌옷을 작가가 수선하며 대화를 나누는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타인과의 정서적 연결과 상처의 치유 과정에 집중한다.


미디어 그룹(월트 디즈니)에서의 경력이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나요? 기업의 수장은 전략적 사고와 의사 결정 능력이 필수지만, 예술계에서 이런 능력은 예산을 편성하거나 기획 운영 같은 행정 업무에만 적용됩니다. 예술에 대한 저의 이해와 인식 그리고 직관은 기업을 떠난 후에 비로소 발달한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독서를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의 전시를 그야말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보면서 길러진 것이에요. 동시에 제가 저자로서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짚어보게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과 직관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글로벌 담론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보유한 컬렉터로서 아시아 작가의 특별한 에너지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저는 YBA(Young British Artists) 작품으로 현대미술에 입문했지만, 그 후에는 아시아 현대미술로 관심이 옮겨갔습니다. 특히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작가에 주목해왔어요. 서구 중심의 글로벌 예술계에서 아시아 작가는 유럽이나 미국 작가보다 훨씬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타국의 낯선 환경에 스스로를 몰아넣으며 현지예술계에 진입하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하죠. 또한, 아시아 특유의 역사적 맥락 때문에 이들의 작업 동기와 출발점은 서구의 작가들과 매우 다릅니다. 이러한 다름에서 오는 관점과 경험, 의도가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비엔날레나 미술관 전시를 위해 컬렉션을 대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 컬렉션이 공공 전시에 대여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이는 컬렉터인 저의 관점이 전문가들의 시각과 일치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죠. 만약 집에서만 작품을 감상한다면, 공유할 수 있는 인원은 매우 한정적일 겁니다. 하지만 비엔날레 같은 공공의 장에서는 작품의 영향력 범위가 훨씬 넓어집니다. 특히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대여했던 리밍웨이Lee Mingwei의 ‘The Mending Project(수선 프로젝트)’는 훌륭한 담론을 불러일으켰죠. 그리고 작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에는 유지Yu Ji의 조각이 전시되었는데, 나중에 그 작품이 저의 컬렉션이라는 사실을 안 큐레이터들이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Photo: Lin Yueh-Hung, Courtesy of Tatler China

데이비드 배철러David Bachelor, ‘Brick Lane Remix II’, 2005.


한국 독자들을 위해서 관심 있는 한국 미술 사조 혹은 작가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미술사학자들은 사조나 흐름에 집중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개별 작가가 무엇을 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아시아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 한국 작가들은 활동적이고 경계를 허무는 데 거침이 없는 것 같아요. 양혜규, 이미래, 탁영준 같은 예술가들이 바로 이러한 에너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최근 타이베이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탁영준의 비디오 설치 작품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한국 작가 친구 두 명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이 고故 강서경 작가입니다. 리움미술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생생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슬픈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다른 친구는 한국과 콜롬비아의 유산을 잇는 갈라 포라스-김으로 제가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돼요. 그리고 도쿄 모리미술관 전시에서 만난 김아영 작가의 행보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올해의 아트 일정 중 가장 기대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수묵화의 거장 류궈쑹Liu Kuo Sung과 저의 대화를 담은 책 (하체 칸츠Hatje Cantz)의 영문본이 곧 출간됩니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5년이나 걸렸네요. 아트바젤 홍콩 기간 중 출판기념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트선재센터와 선프라이드 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LGBTQ+ 예술계의 다층적인 지형과 생태계를 조명하는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위해 곧 서울에 방문합니다. 선프라이드 재단 설립자 패트릭 선Patrick Sun은 타이베이, 방콕, 홍콩에 이어 이번에는 서울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데, 각 전시마다 작품이 거의 겹치지 않아 새롭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오프닝 인파를 피해서 여름에 스위스 아트바젤 일정과 연결해 관람하려 하고, 이후에는 파리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왼쪽) Photo: Lin Yueh-Hung. Courtesy of Tatler China. 양혜규, ‘Faceted Dancing Mask’, 2017.

(오른쪽) 루디 청과 수묵화의 거장 류궈쑹의 대화를 담은 책 .


글로벌 아트 일정에서 잠시 벗어난 휴식 시간에는 에너지를 어떻게 재충전하시나요? 여행을 하거나 아니면 주로 산속에서 지냅니다. 해발 500m 지대에 위치한 단독주택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아주 드물지만 눈이 내리기도 해요. 대만에 방문한 해외 큐레이터를 만나러 도시로 내려가야 하는 일이 없는 한,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독서를 하면서 보냅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동식물을 키우는 취미가 생겼어요. 몬스테라, 안투리움 등의 식물을 키우고 있는데, 특히 박쥐란은 200그루가 넘어서 가꾸는 데 시간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 여섯 살이 된 보더콜리는 운동량이 활발해서 정기적으로 산책을 시켜줘야 해요. 타이베이에서의 제 일상은 은퇴 생활과 매우 비슷합니다.


당신을 롤 모델로 삼는 차세대 컬렉터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젊은 컬렉터를 보면 시각과 사고방식이 확연히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 30대 컬렉터가 수집하는 작품을 보면 제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죠. 하지만 세대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려 노력합니다. 저 스스로를 뛰어난 컬렉터라 생각하진 않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은 강한 편이에요. 자신의 안목을 믿고, 끊임없이 훈련하며, 더 많이 보고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컬렉터가 단순히 소문에만 귀 기울이는 경향이 있어요. 특정 작가가 ‘떠오른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구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그 작품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서 다시 시장에 내놓죠. 컬렉터의 관점에서 이는 건전한 접근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작가가 무엇을 하는지 보세요. 그리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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