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4월호

ART DECO JEWELRY

과거의 장식성을 걷어내고 기계문명의 명료함을 선택한 아르데코 사조. 
마천루를 닮은 정교한 설계로 현대적 세련미의 원형이 된 아르데코 주얼리에 관하여.

EDITOR 이수연 PHOTOGRAPHER 이호현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그라프 라운드와 페어 셰이프 그리고 오벌 다이아몬드’ 네크리스. 총 40.12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내뿜는 빛의 파편들이 질서 정연한 패턴 속에서 대담한 광채를 발산한다. GRAFF.


지난 20여 년간, 어떤 스타일의 주얼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아르데코’라 답했다. 그것은 취향이라기보다 차라리 종교적인 부름에 가까웠다. 2017년 뉴욕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Cooper Hewitt Smithsonian 디자인 박물관의 전시를 세 번 반복해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쇼케이스 너머 1925년 파리 현대 장식미술·근대산업 국제박람회 즈음의 작품들을 마주할 때마다 살아 숨 쉬는 시대의 박동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1925년 초판본 표지.


47번가 부티크에서 발견한 마천루의 실루엣

1920년대를 향한 나의 열렬한 짝사랑은 21년 전 뉴욕 47번가의 아담한 빈티지 보석상에서 시작되었다. 화창한 봄날, 내 시선을 단숨에 빼앗아버린 것은 3cm 너비의 팔찌 한 점이었다. 네모와 세모, 사다리꼴 같은 기하학적 도형이 블랙 오닉스와 다이아몬드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정교한 수학적 상상력이 보석으로 구현된 결정체 같았다.

상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차창 너머 맨해튼의 마천루를 바라보았다. 예리한 모서리의 다각형들과 지그재그 패턴이 팔찌 위 도형들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이미 아르데코라는 기하학적 양식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벨 에포크를 상징하던 화려한 화환, 갈런드garland 형태의 꽃줄기와 리본 장식이 물러난 자리에는 또렷한 직선의 시대가 도착해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입고 재즈 클럽을 누비던 ‘플래퍼flapper’들이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칵테일파티에서 그녀들이 상체를 가볍게 움직이거나 남자들과 뒤섞여 격렬한 찰스턴Charleston 춤을 출 때마다, 길게 늘어진 소투아르sautoir는 골반과 무릎 사이를 오가며 관능적인 리듬을 그렸다. 낮게 내려온 허리선 아래로 찰랑거리는 목걸이의 율동감은 코르셋을 던져버린 여성들의 자유를 선언하는 가장 화려한 방식이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펼치면 그 시대의 냄새가 먼저 풍긴다. 롱아일랜드의 저택, 밤마다 펼쳐지는 개츠비의 파티. 홀을 누비는 여성들의 목에는 어김없이 긴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결혼 전날 밤, 데이지는 톰이 보낸 35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취한 채 내던졌고, 조던 베이커가 그녀를 욕조에 넣어 깨운 뒤 목걸이를 다시 채워주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진주 목걸이에 굳이 가격표를 붙였다. 그것이 그 시대를 새기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었다. 개츠비가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돈 소리가 난다”고 했을 때, 그 말이 겨누는 곳은 한 여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재즈가 흐르는 홀에서 소투아르가 흔들릴 때마다 그 시절의 욕망과 허영이 함께 출렁였다.


(왼쪽부터) 플래티넘 위에 다이아몬드와 오닉스가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루는 1920년의 ‘이집트’ 펜던트. ALBION ART JEWELLRY INSTITUTE. 아르데코 양식의 시초가 된 1925년 파리 현대 장식·산업 예술 국제 전시회 포스터.


빛과 그림자의 이중주, 시대의 언어가 된 흑백
아르데코의 정체성은 흑백의 대비에서 정점을 찍는다. 다이아몬드의 무채색 광채 사이로 파고드는 블랙 오닉스의 깊고 매끄러운 광택은 모던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애도의 상징이었던 검은 보석은 어느 순간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색채의 주얼리로 거듭났다.

흑백영화의 명암 대비처럼 주얼리의 흑백 역시 시대의 얼굴을 만드는 언어가 되었다. 가브리엘 샤넬이 리틀 블랙 드레스 위에 긴 진주 목걸이를 걸었을 때, 흑백의 조합은 비로소 하나의 애티튜드 가 되었다. 특히 투명한 백수정과 다이아몬드를 병치하는 방식은 빛의 온도를 다루는 실험이었다. 같은 무색이되 백수정은 빛을 조용히 머금었고 다이아몬드는 날카롭게 반사했다. 부를 과시하기 위한 다이아몬드의 나열 대신 오닉스를 통해 형태를 정의하는 그 절제야말로 현대적인 삶의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다이아몬드 곡선과 오닉스가 일정한 간격으로 교차하는 브레이슬릿. OSCAR HEYMAN.


1925년 파리, 근대 디자인의 분수령

훗날 ‘아르데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양식의 정점에는 1925년 파리 현대 장식미술·근대산업 국제박람회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과거 양식의 단순한 복제를 배제하고 진정한 독창성을 보여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세웠고, 이에 응답한 주얼러들은 고전적인 장식을 내려놓고 기계문명의 명료함을 선택했다.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부쉐론 같은 당대 메종들이 합류하면서 주얼리는 의상을 보조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근대 디자인사의 한 축인 장식미술의 정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 반클리프 아펠은 차가운 플래티넘 위에 보석을 수학적으로 배치해 한 점의 건축물 같은 구조미를 완성했다. 부쉐론 역시 백수정과 다이아몬드를 결합해 기하학적 형태의 순수함을 밀어붙였다. 투명한 수정의 이면에 기하학적 선을 새겨 넣거나 다이아몬드와 오닉스를 체스판처럼 배치한 브로치들은 당대 사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미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파격이었다.


입체파의 캔버스와 마천루의 리듬

오늘날 전 세계 컬렉터들이 아르데코에 매료되는 배경에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의 영향이 자리한다. 입체파 캔버스의 입방체와 뉴욕 마천루의 계단형 실루엣이 공유하던 리듬은 바게트 컷과 칼리브레Calibré 컷을 통해 손가락 위로 정밀하게 옮겨졌다. 특히 칼리브레 컷은 주얼리의 기하학적 도안에 맞춰 보석을 ‘정해진 치수대로’ 정교하게 다시 깎아내는 기법이다. 금속 틀에 단순히 보석을 끼워 맞추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선의 끝과 끝을 완벽히 메우기 위해 보석 자체를 조각하는 작업이다.

칼리브레 컷으로 다듬어진 보석들은 아르데코의 직선을 한층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보석은 이제 금속과 한 몸이 되어 구조물 자체를 이루며 빛의 건축을 완성했다. 과잉의 시대일수록 직선은 더 또렷하게 빛난다. 정교하게 설계된 미학은 유행과 무관하게 진가를 발한다. 21년 전 손목 위의 그 직선도 마찬가지였다.


클루 드 파리부터 고드롱의 유연한 직선까지 메종의 코드를 굴뚝 조립 방식으로 결합한 ‘콰트로 블랙 다이아몬드’ 라지 링, 세 가지 골드 소재로 네 가지 코드를 압축한 ‘콰트로 클래식 다이아몬드’ 엑스스몰 링.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4개의 밴드는 파리의 건축적 정신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모두 BOUCHERON.


18K 옐로 골드의 X 모티프가 반복되며 기하학적인 율동감을 선사하는 ‘티파니 에나멜’ 컬렉션 브레이슬릿. 파요네 에나멜링으로 깊고 선명한 블루 컬러를 구현하고, 고급 골드 포일을 여러 차례 레이어링해 완성했다. TIFFANY & CO.


로마 카라칼라 욕장의 부채꼴 모자이크 패턴을 모던하게 재해석한 ‘디바스 드림’ 네크리스와 이어링. 블랙 오닉스와 다이아몬드 파베 세팅의 선명한 대비가 부채꼴 실루엣의 입체감을 한층 부각한다. 모두 BVLGARI.


뾰족한 스터드와 둥근 비즈라는 상반된 도형을 반복적으로 배치한 ‘클래쉬 드 까르띠에’ 링과 이어링. 핑크 골드와 블랙 오닉스의 강렬한 조우가 조형적인 입체감을 극대화한다. 모두 CARTIER.


로즈 골드 비즈로 정교하게 직조한 루프와 오팔을 세팅한 내부 루프의 중첩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골드 루프’ 하이 주얼리 이어링. 메종 설립 150주년을 기념해 탄생했다. PIAGET.



WRITER 윤성원 주얼리 히스토리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등을 집필했으며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등 모든 분야를 융합적으로 다루고, 나아가 보석업계의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COOPERATION 그라프(2256-6810), 까르띠에(1877-4326), 불가리(6105-2120), 부쉐론(080-822-0250), 티파니(1670-1837), 피아제(187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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