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어스가 가장 개인적인 취향이 잘 드러나는 공간으로 꼽은 응접실. 20여년에 걸쳐 하나씩 수집한 가구와 작품들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셰인 & 피어스’는 디자이너이자 디벨로퍼인 피어스 조던Pierce Jordan과 디자인 파트너 에번 셰인Evan Shane이 함께 이끄는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다. 건설과 개발, 디자인 전반을 경험한 피어스 그리고 유럽 건축 및 도시적 미감을 토대로 공간의 서사와 균형을 설계해온 에번은 서로 다른 배경을 바탕 삼아 ‘시대를 섞는 방식’을 통해 타임리스한 주거 공간을 구축해왔다. 텍사스주 댈러스에 위치한 ‘로빈 로드Robin Road’는 피어스 자신의 집을 직접 설계한 프로젝트로, 이들의 디자인 철학과 개인적 취향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이 집은 유럽의 빌라를 연상시키는 곳으로 약 465㎡ 규모의 신축 주택이다. 자신의 생활 방식과 미적 기준을 섬세하게 조율한 덕에 전형적인 신축 주택의 인상을 벗어나 깊이 있는 주거 공간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아리아 스톤 갤러리Aria Stone Gallery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카라라Carrara 여행에서 찾은 대리석이었다. 처음부터 무드 보드의 중심에 놓였던 대리석은 집 전체의 컬러 팔레트와 분위기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 차분함과 밀도를 갖춘 공간의 성격을 형성한다. 하루 대부분을 건설 현장에서 보내는 피어스는 집이 무엇보다도 안정적이고 편안하면서, 동시에 디자인적으로 완성된 장소이길 바랐다고. 가구 구성 역시 시간의 층위를 품고 있다. 1700년대의 벽난로를 시작으로 1800년대의 앤티크와 가보 가구, 1900년대 미드센추리와 브루털리즘 피스까지 폭넓은 시대를 아우르며, 여기에 동시대의 가구를 절제 있게 배치해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된 듯한 ‘컬렉티드 룩’을 완성했다. 공간 전반에는 따뜻한 환영의 분위기가 흐르며, 유럽 스타일 미감에 대한 절제된 오마주가 은은하게 스며 있는 듯했다.

(왼쪽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셰인 & 피어스’ 를 함께
이끌어가는 에번 셰인과 피어스 조던.
신축 주택임에도 유럽의 오래된 빌라를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설정한 집의 ‘정서’는 무엇이었나요? 피어스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세련되고, 따뜻하며, 환대하는 분위기와 신선함을 동시에 지닌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스타일을 새로운 시선으로 겹쳐놓고, 간과되거나 오래된 인상을 주기 쉬운 디테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죠. 또한 각 공간이 패브릭, 컬러 등을 통해 다른 공간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분명한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집 전체가 하나의 서사처럼 이어지는 것 같아요. 디자인 원칙이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에번 유럽의 고전적인 빌라나 호텔이 오늘날의 감각으로 현대화된 듯한, 그러나 세월이 쌓아 올린 고전미는 잃지 않은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파리, 로마, 마드리드 같은 유럽의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아파트들은 훌륭한 디테일과 오랜 시간 검증된 천연석 위에 현대적인 가구를 배치하는데요. 각 시대의 장인 정신을 대표하는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그런 균형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집 안 곳곳에서 아치 형태가 반복되는 디테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에번 아치는 구조적 안정성 덕분에 고대부터 이어져온 고전적인 형태로, 전통적인 유럽의 건축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비록 이 집은 신축이지만, 아치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단순한 장식 요소가 아니라 집의 타임리스한 디자인 DNA 자체로 자리 잡게 하고 싶었습니다.

주방 가구 상판을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대리석으로 마감한 메인 주방. 주방으로 향하는
복도마다 아치를 사용해 타임리스한 분위기를
더했다.

왼쪽부터) 거실에는 벽난로를 설치하고 다양한 컬러의 가구를 배치해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로 꾸몄다. 유럽의 어느 오래된 노천카페를 떠오르게 하는 베란다. 이곳에서 종종 아침을 먹거나 가벼운 브런치를 즐기기도 한다.
버건디와 올리브그린, 웜 브라운처럼 깊고 절제된 색감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에번 무엇보다 이 공간이 차분하고, 포근하며, 안정감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집은 바깥의 분주한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휴식처이자, 가족과 친구들과의 추억이 쌓이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밝음과 어두움, 따뜻함과 차가움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거실이나 다이닝룸처럼 비교적 작은 공간은 짙은 농도의 색을 사용해 밀도를 높이고, 보다 개방적인 패밀리 룸과 주방에는 따뜻한 화이트 컬러를 사용해 시각적인 여백을 주었죠.
집 안에 놓인 예술 작품과 오브제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각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에번 피어스는 미국 남부의 역사적인 주택들 속에서 성장하며 태피스트리, 크리스털 등 앤티크에 대한 깊은 애정을 키워왔습니다. 수백 년 된 벽지 조각을 액자에 담은 대형 작품을 포함해 다양한 앤티크 컬렉션을 수집해왔죠. 반면 저는 ‘미드센추리’조차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로스앤젤레스 출신이라, 20세기 빈티지와 현대적인 감각을 입혔습니다.
우리는 LA 기반 세라미스트 벤 메단스키Ben Medansky에게 손으로 압출한 유약 타일로 구성된 작품을 의뢰했고, 이는 피어스의 벽지 작품과 유사한 톤과 스케일을 공유합니다. 두 작품은 코너를 사이에 두고 같은 시야 안에 배치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이탈리아 카라라 여행에서 선택한 대리석이 집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기반이 되었다고요. 피어스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대리석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고, 머릿속에는 ‘유니크할 것, 타임리스할 것, 컬러가 있을 것’이라는 몇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첫날에 ‘칼라카타 로즈Calacatta Rose’ 대리석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눈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분홍과 회색이 섞인, 이전에는 본 적 없는 결의 조합이었고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돌이 집 전체의 컬러 팔레트를 이끌게 되었죠. 주방용 스톤인 ‘칼라카타 비올라Calacatta Viola’는 블록 상태로 보자마자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린과 브라운 같은 기존 비올라에서는 보기 힘든 앤티크하고 러스틱한 톤이 담겨 있었거든요.

다양한 시대의 가구와 소품을 자연스럽게 믹스 매치해 앤티크 분위기와
모던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서재 공간.

시각적 과부하가 느껴질 정도로 활기찬 분위기를 원했다는 다이닝룸. 18세기 벽난로부터 모던한 샹들리에, 벽등, 새롭게 재해석한 플로럴 벽지까지 다양한 시대의 디자인이 결합된 대표적인 예다.

자칫 과해 보일 수 있는 요소를 균형 있게 조정한 메인 욕실. 스톤이나 타일 대신 원목 바닥재를 선택하고 대리석 소재를 벽면 웨인스코팅으로 사용했다.
주방 상판부터 벽난로, 욕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톤을 사용했지만, 부딪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에번 컬러와 패턴이 풍부한 스톤도 충분히 절제되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원칙 중 하나가 스톤을 항상 매트한 마감으로 쓰는 거예요. 광을 낮추면 훨씬 타임리스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죠.
또한 사용 면적의 ‘평면’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방의 대리석은 다소 강렬해 보일 수 있지만 상판에만 적용해 과하지 않게 했고, 메인 욕실에서는 원목 바닥을 선택하면서 대리석을 벽면 웨인스코팅으로 사용해 균형 있게 조정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가장 분명하게 반영된 공간은 어디인가요? 피어스 가장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은 응접실입니다. 마치 20여 년에 걸쳐 하나씩 수집한 듯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죠. 본가에서 자라며 함께했던 물건부터 새롭게 발견해 재해석한 가구, 그리고 커스텀 제작한 의자까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다양한 컬러와 패턴, 스타일이 제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죠.
이번 프로젝트는 두 분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나요? 에번 저희는 각기 다른 디자인과 건설 분야의 경험, 그리고 서로 다른 지역과 건축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큰 시너지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은 많은 영감을 주는 동시에 시야를 넓혀주기도 하지요. 서로를 자극하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 취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벽면의 작품은 LA에서 활동하는
세라미스트 벤 메단스키에게 의뢰해 완성한 것.
손으로 압출한 수백 개의 유약 타일로
구성한 작품이다.

왼쪽부터) 아늑한 분위기의 세탁실. 전반적으로 밝은 컬러를 사용해 시각적인 여백을 준 뒤 다양한 패턴과 소재의 조화로 한층 아늑함을 더한 메인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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