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6년 3월호

보고 싶은 것, 보고 싶을 것

서울에 사는 미술가, 음악가, 배우 백현진은 도시를 관찰하며 살아왔다. 
그는 노래하듯 그림을 그리고, 연기하듯 노래하며, 그림을 그리듯 연기한다. 그에게 작업은 장르가 아닌 삶의 리듬이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박재영

10 CREATORS: THE ART OF MAK

디자인하우스가 걸어온 반세기의 철학 위에서 창간 25주년을 맞은 <럭셔리>는 한국 문화에 내재한 ‘막MAK’의 정신을 하나의 미학이자 태도의 언어로 정리하고자 한다. 이에 유연한 막 정신을 삶과 작업 속에 체화하고 있는 창작자 10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술가·음악가·배우 백현진부터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는 공민정, 무대와 런웨이를 오가는 기무간, 다양한 표정을 지닌 배우 옹성우, 음악의 진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그레이코드와 지인,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윤산하, 캔버스에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캐스퍼 보스만스, 다채로운 능력과 독보적 존재감의 대명사 수리, 가구와 공간을 잇는 문승지, 장르를 넘나들며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김아린까지. 이들의 기록은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백 현 진


PKM갤러리의 전시  출품작 ‘Winter’(2025) 앞에 선 백현진.


현재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3월 21일)가 진행 중입니다. ‘서울식’이라는 의미의 제목이 호기심을 자아내요. 젊은 시절 서울은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훨씬 컸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이 지닌 의외의 미감을 발견하고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됐습니다. 를 우리말로 풀면 ‘서울식’인데, 저는 이 말이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이게 서울식’이라고 규정하기보다 ‘서울에 이런 면모도 있다’라는 제안에 가까워서죠. 작년 발매한 솔로 앨범과 LA 타냐 보낙다르 갤러리Tanya Bonakdar Gallery 개인전에서도 동일한 제목을 내걸었습니다. 서울에서 살아온 55년은 제 삶을 둘러싼 하나의 조건이 됐고, 미술가로서 서울에 반응하며 작업해온 결과물을 보여주는 자리가 바로 이번 PKM갤러리 전시입니다.


왜 애증의 대상이었나요? 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마땅찮았어요. 가족도 불편했고, 학교도 싫었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거부감이 컸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라는 공간이 마냥 답답했고, 동네를 돌아다녀도 소속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미대에 몸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시야가 좀 트이고 나니까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신경을 거스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저는 날이 바짝 서 있는 ‘앵그리 영맨’ 그 자체였어요. 그러다 언젠가부터 바깥을 탓하는 대신 저를 들여다보는 쪽으로 시선이 이동했습니다. 도시를 대하는 눈과 감각이 바뀌었달까요? 생각의 결이 달라지면서 생활 리듬 역시 서서히 달라졌고, 예전처럼 무작정 밀어내기보다는 눈앞에 놓인 것을 하나둘씩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깨진 보도블록이나 길가에 막 자란 풀 한 포기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순간들이 찾아오더군요.



“‘막’은 단순함 속에 숨겨진 가장 밀도 높은 수행의 결과물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의 ‘싱크 넥스트 23’ <백현진 쑈 : 공개방송>, © 세종문화회관


백현진 한국, 미국, 영국, 독일 등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미술가이자 음악가, 배우.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일민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선정됐다. 인디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동시에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폭넓은 예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타냐 보낙다르 갤러리 전시 때 작성한 글을 보면, 신택스Syntax를 “언어와 구조의 질서, 기호와 의미 사이의 관계, 즉 미끄러짐과 불일치로 가득한 관계”로 설명했더라고요. 서울은 모든 것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는 곳은 아닙니다. 여기저기 어긋나고 미끄러지는 상황이 많아요. 언어와 의미가 한 번에 맞물리지 않는 장면들, 구조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안에서 생기는 틈 같은 것들요. 저는 그런 어긋남이 서울을 서울답게 만든다고 느낍니다. 불완전한 채로도 계속 굴러가는 관계들. 그런 묘한 리듬을 캔버스 위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백현진의 미술 작업은 다가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강렬한 필치와 추상적 에너지로 가득한 작업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죠. 그런데 <들과 새와 개와 재능>(2016),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2019), <말보다는>(2021)의 전시를 거치면서 구체적 형상들이 종종 등장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추상의 혼돈 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불러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리는 사람도, 이를 바라보는 사람도 모두 변합니다. 우리는 쉼 없이 움직이는 존재니까요. 저라고 예외일 리 없습니다. 작가로서 겪은 전환이 작업에 녹아들었을 거예요. 예전에는 그 시절, 어떤 찰나를 붙잡아두려는 욕심이 컸습니다. 요즘은 그저 제가 보고 싶은 것, 앞으로도 보고 싶을 것들을 화면에 남기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젊은 시절 여러 대도시를 오가며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뉴욕, 런던, 마드리드,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등 어디를 가든 사람들 감정의 평균값은 이상하게도 쓸쓸함에 머물러 있더군요. 그때는 관계와 고독을 집요하게 붙들던 시기라 저의 기분을 화폭이나 음악에 빼곡하게 기록하려 했습니다. 어떤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그 시기를 통과하며 생겨난 흐름이었죠.



전시 전경. Courtesy of PKM Gallery


화면도 담백하게 비워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노래 가사에서도 그런 결이 보입니다. ‘횟집’에서 “여기까지만 부르는 게 적당하겠어”라며 멈춘다든지, ‘모과’에서 불안 속 대상을 가만히 붙잡는 것처럼요. 대상을 일정한 거리에 두고 덜어내는 감각이 음악과 미술에 동시에 나타난 걸까요? 말 그대로 형식과 밀도를 덜어내는 중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에서 빌런 역할을 맡아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더니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고갈된 채로 작업실에 앉으니 저도 모르게 비워두는 쪽으로 몸이 움직였습니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인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작업 흐름이 그쪽으로 기우니 저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노랫말도 한두 줄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지고, 그림도 툭툭 몇 번 손대고 나면 멈춰도 되겠다는 순간이 잦아졌어요. 젊은 시절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지만, 그때는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일이 너무 불안해서 그런 결과물은 전부 폐기했습니다. 지금은 중년이 된 덕에 일종의 뱃심이 붙었고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까지는 온 것 같아요. 그러나 화풍이 간결해지고 작아지는 게 과연 맞는 선택인지는 여전히 고민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순함은 무수한 고민의 결과 아닐까요? 편안해진 건 사실이지만,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기분은 아닙니다. 창작이라는 게 삶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선명해질 수 있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어쩌면 지금처럼 조금 흐릿하고 갈팡질팡하는 상태가 더 괜찮은 것일지도···. 너무 명확해진 것들은 나중에 돌아봤을 때 부끄러워진 경우도 있었거든요. 결론을 내린다기보다 그 사이를 부유하는 느낌입니다. 경험이 쌓였다고 삶의 방향이 꼭 단순해져야 한다고는 못 박고 싶지 않아요. 지혜로운 사람이 더 복잡해진 채 생을 마칠 수도 있으니까요. 단순함을 정수나 해답으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는 덜어낸 방식이 몸과 마음을 덜 소모하게 합니다.



전시장 속 백현진.


백현진, ‘난제’,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Photo: © Sangtae Kim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그렇다면 삶의 방식과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맞닿아 있나요? 철 저하게 연동되어 있습니다. 저는 삶과 작업, 예술을 따로 떼어놓 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인식은 젊은 시절 피나 바우 슈를 만나며 또렷해졌어요. 그는 삶과 작업, 예술을 도저히 구분 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처음엔 그 말이 단순히 멋있게 들렸습니 다. 그런데 직접 교류하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온전히 몸으로 이해되는 때가 왔습니다. 작업하는 거랑 생활하는 걸 어떻게 나 누겠어요. 예술가한테는 작업이 곧 생활이고, 전부 한 덩어리라 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미술가와 음악가는 물론, 연기자로도 활동 중입니다. 앞서 말한 태도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미디어에 비친 모습 때문인지 제가 밤낮없이 일만 하는 사람으로 오해받고는 합니다. 실제로는 아무 일정 없이 혼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낮잠을 자는 날도 적지 않습니다. 배우로 촬영 현장에 나가는 날은 1년에 40~60일 정도이고, 나머지는 혼자 있거나 고독을 즐깁니다. 그때마다 마음이 끌리는 곳은 달라요. 어떤 때는 배우로서 끌리는 일이 있고, 또 어떤 때는 미술이나 음악으로 기울어지기도 하죠. 저에게 미술, 음악, 연기는 느슨하게 분리된 영역이 아니고, 이러한 시스템을 운용하는 데도 훈련이 되어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편입니다.



미술가와 음악가로서 덜어내는 작업을 하신다고 했는데,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설 때는 어떤가요?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처럼 그냥 평소에 말하는 것 같은 연기를 지향합니다. 요즘 제 연기를 두고 많은 분이 “자연스럽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시지만, 정작 저는 연기하면서 ‘아, 지금 내가 어떤 기술을 쓰고 있구나’ 하고 자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그런 장치들을 걷어내서 모든 기술을 지운 채 평소 떠드는 것마냥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태도가 ‘더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려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직결된다는 것이에요. 무언가를 자꾸 덜어내려는 노력이 장르를 넘나들며 서로를 환기하는 셈이죠.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그냥 막 해요”라는 표현이 오히려 본질에 근접한 것처럼 들립니다. ‘막’이라는 말이 자칫 대충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지만, 저에게는 직관적으로 바로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물론 직관은 공짜로 생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 야구 선수를 하며 훈련의 힘을 몸소 체감했습니다. 직관이란 몸에 어마어마한 훈련이 쌓여 있어야 터져 나오는 데이터의 결괏값이에요. 비슷한 맥락으로, 빵을 열 개 구워본 사람과 만 개를 만들어본 사람의 ‘막’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만 개를 만든 사람의 손짓에는 이미 오랜 시행착오가 촘촘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죠. 제가 작업을 막 한다는 것은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닌, 수십 년간 미술가, 음악가, 배우로 살면서 쌓인 숙련된 것들을 직관으로 뿜어내는 것입니다. 젊을 땐 신중하게도 해보고 이런저런 시도도 해봐야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많이 해본 사람만이 도달하는 그냥’의 경지를 신뢰하게 되더군요. 그러므로 저에게 ‘막’이란 단순함 속에 숨겨진 가장 밀도 높은 수행의 결과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는 일. 일어난 모든 일은 있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되뇌신다고요? 이는 세상의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을 ‘신택스’로 받아들이는 작가님만의 태도처럼 들립니다. 예전에는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일들에 대해 화를 내거나 부정하며 에너지를 썼다면, 이제는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단 일어났다면 그 자체로 ‘있는 일’로 받아들입니다. 그게 제가 세상을 대하는 가장 편안한 방식이기도 하고요. 제가 그리는 풍경도 거창한 성취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루 동안 건강하게 볕을 쬐고, 멍하니 산책하며, 눈앞의 장면을 마주하는 무리 없는 일상이 소중해졌어요. 제가 하는 미술, 음악, 연기도 일상을 지키기 위해 그 시기에 궁금한 것들을 기록하는 과정이자 행위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들판의 개나 공중의 새처럼 자연스럽게 ‘있는 일’들 속에 머물다 가려 합니다. 그게 제가 바라보는 건강한 삶의 방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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