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핀 황후가 즐겨 썼던 백조 깃털 장식의 티아라에서 영감받은 ‘조세핀 아그레뜨’ 티아라 CHAUMET. 화이트 골드에 아코야 진주와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감추고 싶은 상처, 시대의 미학이 되다
주얼리 역사에서 1901년부터 1914년까지의 짧은 시기를 영국에서는 ‘에드워디언’이라 부른다. 프랑스의 벨 에포크 그리고 미국 신흥 부호들의 ‘도금 시대Gilded Age’가 화려하게 교차하던 지점이다.
도금 시대란 19세기 말 미국이 겪은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기를 뜻하는데, 겉은 금빛으로 화려하지만 내실은 혼탁했던 사회상을 꼬집는 명칭이기도 하다. 당시 뉴욕 사교계를 장악한 신흥 재벌들은 막강한 부를 바탕으로 유럽의 권위와 전통을 선망하며 보석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런던과 파리 그리고 바다 건너 뉴욕까지, 대서양을 사이에 둔 사교계 여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이아몬드 초커로 목을 코르셋처럼 조여 맸다. 특히 사냥개 목줄의 형태에서 따온 ‘도그 칼라Dog Collar’ 초커가 대유행이었는데, 목 전체를 감추려 했던 왕비의 스타일을 그대로 복제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알렉산드라 왕비의 탐미주의는 초커 한 줄에서 멈추지 않았다. 초커 아래에는 다이아몬드를 일렬로 엮은 ‘리비에르Rivière’ 목걸이를, 그 아래에는 다시 긴 진주 줄을 겹겹이 늘어뜨렸다. 이러한 레이어드는 목을 높게 감싼 레이스 장식 위든, 어깨를 드러낸 이브닝드레스의 맨살 위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인들의 목선을 빈틈없이 메웠다.
보석을 돋보이게 하려고 의상 디자인이 결정되던 주객이 전도된 시대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특별석이 ‘다이아몬드 말발굽’이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신사들은 오페라글라스로 여인들의 주얼리를 관찰하며 가문의 현금 유동성을 품평했고, 여인들은 독수리 깃털 부채 뒤에서 그 시선을 즐겼다.
비엔나 사교계의 꽃이었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 역시 클림트가 그린 초상화 속에서 눈부신 초커를 두르고 있다. 당시 초커는 런던의 궁정부터 유럽 각지의 사교장까지 사교계라는 전장에 나서는 여인들에게 자부심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셈이다.

왼쪽부터)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140 × 140cm, 1907. 알렉산드라 왕비의 초상, 1889.
다이아몬드로 완성한 보이지 않는 계급
무도회와 오페라 시즌이 절정에 달하면 여인들은 초커 위에 티아라를 얹어 화룡점정을 찍었다. 오후 6시 이후의 공식 행사에서 기혼 여성이 티아라를 생략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결례였다.
흥미로운 규칙도 있었다. 모임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여성보다 큰 티아라를 쓰는 것은 금기였고 미혼 여성에게는 착용할 자격조차 없었다. ‘젊음 자체가 가장 완벽한 장식’이라는 예우 섞인 명분 뒤에는 엄격한 계급의 논리가 숨어 있었다.
알렉산드라 왕비의 수많은 주얼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코코슈니크Kokoshnik’ 티아라다. 러시아 전통 장식을 본뜬 반원형 디자인의 이 티아라는 그녀의 결혼 25주년을 맞아 365명의 여성이 마음을 모아 왕실 보석상 개러드Garrard에 주문 제작한 선물이었다. 400여 개의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이 티아라는 왕비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강렬한 빛을 사방으로 퍼뜨리며 좌중을 압도했다.
이 시기 뉴욕에서 티아라는 사교계의 견고한 벽을 허무는 도구였다. 1883년, 철도왕의 며느리 앨바 밴더빌트는 호화 무도회를 기획하며 권력자 애스터 부인의 딸을 초대 명단에서 제외하는 대담한 전략으로 그녀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승리를 기점으로 신흥 부호들은 사교계 정점에 올랐고, 미국의 상속녀들은 유럽 귀족에게 지참금을 주고 작위를 사는 ‘달러 공주’의 길을 택하며 결혼과 동시에 티아라를 쓸 권리를 거머쥐었다. 오페라 객석은 온통 그렇게 맞바꾼 다이아몬드의 화려한 빛으로 일렁였다.
미국의 자본과 유럽의 작위가 결합하면서 양 대륙의 주얼리 문화는 더욱 긴밀하게 뒤섞였다. 알렉산드라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이 눈부신 전승은 며느리 메리Mary 왕비에게 계승되었다. 보석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던 그녀는 남편과 단둘이 저녁을 먹을 때조차 티아라를 착용했다.
특히 그녀는 눈에 띄는 주얼리에 노골적인 찬사를 보내 선물로 받아내는 기이한 수집벽으로 유명했는데, 그녀가 방문하면 보석을 숨겨두는 귀족들이 속출할 정도였다. 러시아혁명 후 망명한 왕족들의 보석이 쏟아졌을 때 그녀가 손에 넣은 ‘블라디미르Vladimir’ 티아라는 현재까지도 영국 왕실 컬렉션의 자부심으로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다.
사라예보의 총성, 빛의 시대가 저물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황금기는 1914년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과 함께 멈춰 섰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갈라 디너와 무도회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귀부인들의 보석은 금고 깊숙이 잠들었고 주얼리의 핵심 소재였던 플래티넘은 군수물자로 징발되었다. 에드워디언 특유의 레이스처럼 섬세한 세공 기술 역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맥이 끊기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1920년대가 밝았을 때 세상은 이미 직선적이고 실용적인 아르데코의 시대로 변해 있었다. 에드워디언이 구가했던 그 유려하고 탐미적인 우아함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전설로 박제되었다.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한 꽃을 모티프로 한 ‘까멜리아’ 초커 CHANEL FINE JEWELRY.
까멜리아를 중심으로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꽃들이 두 줄의
화이트 골드 위에 규칙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소중한 연대를 상징하는 크로스스티치 모티프의 ‘쟌 슐럼버제 바이 티파니 나인티 투 스톤’ 네크리스 TIFFANY.
금사로 수놓은 듯한 스티치와 총 92개의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져 광채를 선사한다.

고대 로마의 물결 문양 건축 장식에서 영감받은 ‘에뚜왈레’ 네크리스 BUCCELLATI. 화이트 골드를 직물처럼 정교하게 꼰 뒤, 다이아몬드를 백합 모티프로 세팅해 고전적인 우아함을 완성했다. 승지민, ‘Motherhood 2 (Cell Division), 17×35×55cm. 깨지고 갈라져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강인함을 내포한 작품.

진주 내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탄생한 ‘슬라이스드’ 컬렉션의 ‘파인 링크’ 네크리스 TASAKI.
담수 진주를 과감하게 절단해 숨겨진 단면을 드러냈다.
김동완, ‘색 시리즈_화병(Color Series_Vase)’, 14×12×12cm.
유리 특유의 신비로움과 그위로 드리우는 빛의 고유한 매력을 빚어낸 작품.

산스크리트어로 ‘하나’를 의미하는 ‘에카’ 컬렉션의 네크리스,
다이아몬드 푸시 클래스프가 돋보이는 ‘솔로’ 컬렉션 네크리스 모두 FOPE.
WRITER 윤성원 주얼리 히스토리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등을 집 필했으며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등 모든 분야를 융합적으로 다루고, 나아가 보석업계의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COOPERATION 부첼라티(6905-3490), 샤넬 파인 주얼리(080-805-9628), 쇼메(1670-1180), 타사키(3461-5558), 티파니(1670-1837), 포페(6905-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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