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트 에게 쾨세Mert Ege Köses는 고대 이집트의 ‘셴shen’ 상징을 알루미늄 조각으로 재해석해 피라미드를 빛과 구조로 새롭게 프레이밍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이집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집트 고미술은 고대 문명국의 상징인 피라미드를 알고 있기에 비교적 친숙한 느낌이다. 반면 이집트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조금 낯선데, 그렇다고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영국 미술 잡지 <아트 리뷰>가 발표한 2025년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파워 100’에 따르면, 4위가 이집트 미술가 와엘 샤키다. 와엘 샤키는 2024년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도 여러 번 작품을 선보인 바 있는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작가다. 더욱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도 2017년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을 전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집트 예술은 우리와 멀지 않다.

대이집트 박물관 입구 광장에는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 중 한 명인 람세스 2세 왕의 11m 동상이 있다.
피라미드 앞에 선 현대미술
올해 5회를 맞은 전시 <Forever Is Now>

알레샨드르
파르투Alexandre Farto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폐기된
문을 정교하게 조각하고
재조립해 일상과 문명의
기억,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탐구했다.
투탕카멘의 화려한 유산
11월 개관한 대이집트 박물관은 피라미드 3개가 창밖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이집트 정부는 이곳을 기자의 ‘네 번째 피라미드’로 만들고자 했으며, 카이로 박물관이 더 이상 유물을 수용할 수 없기에 건립 계획을 수립했다. 카이로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 대이집트 박물관은 단일 문명을 전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다. 50만㎡ 규모에서 이집트 고대 문명의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5만 점의 유물을 전시하는데, 밤새 쉬지 않고 유물을 보아도 70일 이상이 걸릴 정도로 전시가 방대하다. 카이로에 70일간 머물기 어려우니 박물관을 둘러보는 노하우를 추천한다면, 먼저 아침에 박물관이 문을 열자마자 바로 투탕카멘 컬렉션 전시관으로 뛰어갈 것. 룩소르 투탕카멘의 무덤 한곳에서 발굴한 5000점의 유물이 몽땅 전시돼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 황금 전차와 침대, 무기와 식기, 수많은 보석과 신상이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미라가 차곡차곡 5중으로 보관되었던 관과 황금 가면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황금 가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도 있을 정도. 투탕카멘은 1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이처럼 화려한 유물을 남겼으니, 그간 도굴되었던 다른 왕들의 유산은 얼마나 화려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다음으로 갈 곳은 기자 피라미드에서 발굴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 선박인 ‘쿠푸 왕의 배’ 전시관. 이 배는 1200개의 나뭇조각으로 분해된 채발견되었으나, 손톱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전시관을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배를 360도로 두루 볼 수 있어 관람이 더욱 흥미진진하다. 저승으로 가는 여정에 과학과 영성을 융합한 고대 문명의 우수함이 놀랍다. 입구 광장에서는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 중 한 명인 람세스 2세 왕의 동상이 자랑스럽게 서 있어 문명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그랜드 홀에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중에 매달린 오벨리스크인 람세스 2세 왕의 오벨리스크를 전시하고 있는데, 무게가 110톤에 달한다. 현대적 공학 기술을 사용해 설치한 덕에 방문객들은 아래위뿐 아니라 모든 각도에서 비문을 감상할 수 있다. 이집트 문명박물관에도 안 갈 수 없다. 5만 점의 유물도 훌륭하지만, 22구의 미라 전시관이 따로 있기에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꼽힌다. 미라 전시관은 신성한 곳이니만큼 카메라 촬영이나 가이드 설명이 어렵다. 그러나 방문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이로 박물관에 있던 미라를 별도로 관리하기 위해 이 전시관을 새로 마련했으며, 이집트 제17왕조부터 제20왕조까지 4대 왕조에 걸친 파라오 미라 18구와 왕비 미라 4구를 전시하고 있다. 투탕카멘의 미라는 발굴한 이래 다시 무덤으로 보내졌기에 여기에는 없고, 대이집트 박물관에서 본 대형 조각의 주인공 람세
스 2세의 미라는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미라마다 왕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어, 역사에 관심이 깊은 이들에게 권한다.


피카소 아트 갤러리는
이름과 달리 독창적인 이집트
작가의 전시를 하고 있다.
카이로의 삼청동과 청담동
지금부터는 현대미술 갤러리를 살펴보자. 나일강의 게지라섬 북쪽에 위치한 자말렉Zamalek 지역은 ‘카이로의 삼청동’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자말렉에만 갤러리 20여 개가 있어 산책하면서 둘러보기 좋다. 시작은 ‘패션 아트 갤러Passion Art Gallery’다. 낡았지만 우아한 빌라에 들어서면 요즘 이집트에서 인기 있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펼쳐진다. 미리암 하투트Miriam Hathout, 할라 엘 샤로우니Hala El Sharouny, 펠로파테르 할림Felopater Halim의 작품은 서구의 현대미술 경향을 따르지 않는 이집트 스타일의 작품이라 신선하다. 갤러리 대표 셔린 엘 카밋시는 위층에 있는 이집트 거장 와기야사Wagih Yassa의 작업실을 보여주었는데,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작품에 반할 수밖에 없다. 인근에는 ‘사파 칸 갤러리Safar Khan Gallery’가 있다. 1968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이 갤러리는 작지만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해 근사하다. 샹들리에와 계단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작고한 작가 살라 압델 케림Salah Abdel Kerim의 회고전이 진행 중인데, 이집트의 미술과 디자인을 넘나든 작품 세계에 관심이 증폭된다. 조금 걸어가면 ‘피카소 아트 갤러리Picasso Art Gallery’를 발견할 수 있다. 갤러리 이름은 스페인 미술가 피카소에게서 따왔지만, 전시장 두 곳의 작품은 한없이 독창적인 이집트 스타일이다. 게다가 위층의 VIP 뷰잉 룸에도 세대를 아우르는 이집트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작품이 가득해 최소 1시간은 봐야 할 대형 갤러리다. 마지막으로, ‘카이로의 청담동’ 셰이크 자이드Sheikh Zayed 지역의 ‘아트 링스 갤러리Art Linx Gallery’를 소개한다. 갤러리 대표 디나 파흐미 엘루비는 우리나라에서도 전시한 적 있는 미술가다. 럭셔리 갤러리답게 야외에도 대형 조각이 대거 설치되어 있으며 회화, 캘리그래피, 미디어 아트 등 모든 장르를 소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트 리뷰>의 ‘파워 100’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2위는 카타르 박물관청장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3위는 샤르자비엔날레 디렉터이자 샤르자 아트 재단 설립자 후르 알 카시미 공주가 차지했다. 4위 와엘 샤키를 포함해, 상위가 모두 중동인이다. 이집트는 지정학적·역사적으로 중동의 중심에 위치하기에 예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새로운 문물이 중동으로 유입될 때는 이집트를 거치곤 했다. 21세기에는 영상 발전으로 ‘중동의 할리우드’라 불리는 이집트를 이해해야 중동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박종규 작가가 말하는 피라미드의 비밀
박종규는 디지털 화면에서 오류를 뜻하는 디지털 노이즈를 모티프 삼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온 작가다. 그는 디지털 노이즈를 오류로 보지 않고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재해석해 예술로 만들어냈다. 이집트에서 선보인 대지 미술 작품 ‘영원의 코드’는 그의 대표 주제인 디지털 노이즈를 사막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는 픽셀을 접착 시트에 인쇄한 뒤 선택적으로 제거해 이미지를 구성하는 회화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신작은 그 회화를 사막 위에 설치하고 확장했다.
신작 ‘영원의 코드’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피라미드의 높이와 변의 길이를 적용한 기하학적 구조물을 철과 철망 소재로 설치했고, 앞에는 단군이 파라오에게 쓴 상상의 편지를 모스부호로 암호화해 아크릴 미러 점으로 표현했습니다. 피라미드는 한국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문명 간의 연결을 예술로 표현하기에 완벽한 장소예요.
피라미드 앞에서 작품을 전시한 소감은? 4500년 전에 만들어진 피라미드의 기하학적 형태와 제 작품이 서로 마주 보며 연결돼 기쁩니다. 피라미드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기하학적 구조물이자 하나의 거대한 코드예요. 마치 시간이 겹쳐진 풍경 속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천 년의 시간과 현대의 기술적 구조가 한 지점에서 합쳐지면서, 작품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 듯합니다.
작품의 영감은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2024년 <Forever Is Now>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가 흥미롭습니다. 피라미드는 영원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만든 구조물입니다. 반대로 디지털 데이터는 아주 일시적이지만, 그 안에는 개인의 흔적이 남죠. 두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이 흥미로웠어요. 올해 전시 주제는 디지털과 불멸인데, 사라질 것들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시도가 디지털이잖아요. 현대 기술이 고대 예술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둘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작품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끼길 바랍니다. 작품 구조만 보면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1000개의 아크릴 미러 점들이 모스부호로 단군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고대 이집트 벽화를 상상하며 보는 것처럼 관람객도 호기심과 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 전체가 한 편의 기록이자 한 문장처럼 보이길 기대합니다.

디지털 노이즈를 오류로 보지 않고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박종규의 ‘Embodiment’(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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