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5년 9월호

ICONIC FRONT

시대를 품은 흔적이자 브랜드가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 자동차 엠블럼 이야기.

EDITOR 박이현


평면화된 상징, 미래를 향한 선명한 선언

지난 7월 벤틀리가 상징적 엠블럼의 다섯 번째 버전을 공개했다. 2002년 ‘컨티넨탈 GT’ 출시와 함께 선보였던 네 번째 엠블럼 이후 23년 만의 변화다. 날개는 이전보다 더 날카롭고 극적인 형태로 진화했고, ‘B’ 레터링 하단의 깃털은 완전히 사라져 시각적으로 간결해졌다. 새 엠블럼은 벤틀리의 미래 디자인 비전을 담은 콘셉트 카 ‘EXP 15’에 부착되어 찬연히 빛났다. 브랜드 디자인 총괄인 로빈 페이지는 “럭셔리 브랜드가 그간 만들어온 이야기의 산물이라면, 엠블럼은 럭셔리 브랜드의 서명과도 같다”라며 아이코닉한 상징을 다시 그린 작업의 무게를 강조했다.

벤틀리의 소식은 흥미롭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자동차에 박히는 엠블럼, 나아가 브랜드를 대변하는 로고의 변화는 최근 10년간 여러 브랜드에서 꾸준히 있었다. 대부분은 3D 스타일에서 2D로의 전환이었다. BMW가 대표적 사례로, 몇 년 전부터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 투명 배경의 평면 로고를 사용 중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작은 스크린 위에서도 즉시 식별 가능한 단순한 형태가 요구되면서 복잡한 입체 효과와 금속성 질감을 덜어낸 것. 디지털이라는 시대적 물결, 또 요즘 자동차가 거대한 컴퓨터처럼 진화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BMW가 이 로고를 2020년 ‘i4’ 콘셉트 카에만 적용하고 실제 판매 차량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로고가 실제 자동차의 엠블럼으로 새겨지는 방식은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다.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선언이 필요할 때도 브랜드는 로고와 엠블럼을 바꾼다. 지난해 람보르기니가 그랬다. 눈에 띄는 변화는 명암을 없애 더욱 간결해진 평면 디자인 그리고 뚜렷한 선으로 재구성된 황소 및 방패 모양이다. 새로운 로고는 디지털 환경은 물론 앞으로 출시될 모든 람보르기니 차량에 적용될 예정이다. 브랜드 측은 이번 변경이 ‘용감한’, ‘예상치 못한’, ‘진정한’이라는 핵심 가치를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중장기 전동화 전략인 ‘디레치오네 코르 타우리Direzione Cor Tauri’와도 맞물리는 상징적 변화라고 밝혔다.



디지털 환경에 맞춰 복잡한 입체 효과와 금속성 질감을 덜어낸 BMW 로고.


형태 너머의 메시지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거나 격상시키고 싶다면, 표정만 바꾸는 것으로 부족하다. 종종 얼굴 전체를 갈아 끼우는 이유다. 자신감 넘치는 사자 심벌로 유명한 푸조는 2021년 열한 번째 로고를 공개했다. 앞발을 들고 선 입체적인 사자 형상은 방패 안에 자리 잡은 사자 얼굴로 바뀌었고, 전체적으로 미니멀하게 재구성했다. 당시 푸조 CEO 린다 잭슨은 “푸조는 유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라며 “새로운 얼굴은 브랜드 고급화를 위한 역사적 과정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 로고는 차량과 전시장, 공식 홈페이지 등 브랜드와의 모든 접점에서 활용되고 있다.

크게 바꿀 이유가 없다면, 많은 것을 바꿀 필요가 있을까? 2023년 조용히 로고를 손본 포르쉐처럼 말이다. 방패 중앙의 말을 몸을 치켜세운 순간으로 재구성해 역동적이고 결단력 있는 인상을 자아내고, ‘STUTTGART’ 레터링을 검은색으로 바꿔 가독성을 높였다. 전체 금색 배경은 더욱 매끈하게 다듬고, 붉은색 영역은 입체적인 벌집 패턴을 적용해 미래지향적 분위기를 강조했다. 이 변화는 의식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전과의 차이를 알아채기 어렵다. 1952년 이래 포르쉐 로고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기본 구조는 한결같이 유지했다. 이 상징을 단순한 로고가 아닌 문장紋章을 뜻하는 ‘크레스트’라 부르는 것도 포르쉐다운 태도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자부심, 그 헤리티지를 브랜드 중심에 놓자는 철학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로고는 차량 디자인과 상호작용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2020년 변경된 제네시스 로고가 그렇다. 로고 중앙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차량의 시그너처 크레스트 그릴은 오늘날 제네시스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고, 두 줄로 구성된 라이팅 그래픽 역시 로고 날개를 모티프로 설계했다. 그 덕분에 낮이든 밤이든 제네시스는 단번에 인식된다. 이 로고는 실제 차량에도 활용되는데, 전통적인 시계 제작 기법인 기요셰 패턴이 더해져 차량의 고급스러움을 끌어올리는 역할도 담당한다. 로고와 엠블럼은 시대의 반영이자 정체성의 표현, 브랜드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스스로에게 새기는 약속이다. 어떤 브랜드는 과거의 얼굴을 고집스러울 만큼 계승하고, 또 어떤 브랜드는 얼굴을 바꾸며 저마다의 시간을 통과한다. 자동차에 박힌 작고 단단한 형상의 의미를 기억한다면, 자동차를 바라보는 경험은 지금보다 더 깊어질 것이다.



WRITER  황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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