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9월호

REDISCOVERING BRICKS

김수근의 정동교회와 공간 사옥, 마리오 보타의 손꼽히는 명작들, 멀리는 로마의 콜로세움이 모두 벽돌로 만들어진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온 건축 재료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벽돌 건축’의 최신작들을 소개한다.

GUEST EDITOR 박지혜

MUSÉE YVES SAINT LAURENT


모로코 마라케시에 위치한 이 뮤지엄은 전설적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기리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의 마지막 퍼즐로 2017년 문을 열었다. 마조렐 정원, 살아생전 이브 생 로랑이 거주했던 ‘빌라 오아시스’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약 1만m²의 규모로, 이브 생 로랑이 남긴 약 5000여 점의 의류, 1만5000여 점의 오트 쿠튀르 액세서리, 스케치 등 그가 남긴 다양한 유산을 최적의 상태로 보존 및 전시하고 있다. 마치 하나의 조각 작품 같은 건물의 외형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 디자이너의 정신을 기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다. 프랑스와 마라케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 듀오 스튜디오 KO는 건축의 영감을 이브 생 로랑의 오래된 아카이브에서 찾았다. 이들은 이브 생 로랑의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곡선과 직선의 이중성 그리고 커팅의 반복에 흥미를 느꼈고, 이를 반영해 단순한 정육면체의 형태에 곡선 디테일을 첨가해 외관을 완성시켰다. 그중 직물의 씨실과 날실을 연상케 하는 여러 패턴의 벽돌 외관이야말로 이 건물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돌을 쌓는 방식을 변주함으로써 단순함 속 율동감을 구현했을 뿐 아니라, 현지 재료로 만든 벽돌을 사용해 ‘마라케시의 토양’에서 언제나 큰 영감을 얻었던 이브 생 로랑의 정신 역시 훌륭하게 담아냈다. studioko.fr



CASA INTERMEDIA


파라과이의 한 작은 마을, 벽돌로 만든 이 소박한 집은 탄생과 함께 전 세계의 건축 매체에 소개되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카사 인터메디아’라 이름 붙은 이 집은 가장 소박한 건축 재료인 벽돌이 구현할 수 있는 미학과 저평가된 기능성을 한껏 끌어올린 방식으로 ‘벽돌’의 재발견을 이끌었다. 건축 회사 에퀴포드 아키텍추라Equipode Arquitectura는 아열대기후에 자리한 집을 설계하면서 벽돌이 지닌 ‘환기성’의 측면에 주목했다. 190m²의 직사각형 건물 가운데는 망고나무가 있는 중정이 자리하며, 긴 공간을 마치 파라솔처럼 주름진 벽돌 지붕이 길게 덮고 있다. 반원형 지붕으로 인해 만들어진 빈틈은 바람과 해가 드나드는 동시에 다소 어두운 조도에서 외부를 관찰할 수 있는 창 역할까지 수행한다. 하이라이트는 리빙룸과 침실을 구획하는 중정으로, 의도적으로 지붕을 단절시켜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이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외부의 주차 공간과 리빙룸 사이에 얼기설기 쌓아 올린 벽돌 벽은 공간에 ‘빛’과 ‘그림자’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준다. 벽돌 구조를 떠받치는 철근 트러스트, 벽돌과 어울리는 천연 목재 가구까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기능성과 미학을 구현한 명작이라 할 만하다. equipodearquitectura.com



M 5605


벽돌로 지은 건축 명작을 뽑는 2024 브릭 어워즈Brick Awards에서 ‘함께 살기’ 부분 우승작으로 선정된 ‘M 5605’는 ‘재료’와 ‘배치’에 대한 실험으로 공동주택의 디자인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총 10세대, 6층으로 구성된 이 아파트의 가장 독특한 점은 모든 세대가 누릴 수 있는 발코니다. 마치 호기심 많은 이웃들이 창밖을 내다보는 것 같은, 잠망경처럼 생긴 발코니가 파사드에서 나와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는 것. 그러나 방향을 각기 달리해 프라이버시 침해의 요소를 없애는 동시에 측면과 상단, 하단은 닫혀 있는 돌출 형태를 취해 공간을 확장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벽돌을 얼기설기 쌓아 빛과 바람이 지나는 반 야외 공간을 연출한 것은 물론, 마치 무늬가 있는 블라인드처럼 생성된 패턴이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도록 한 점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벽돌’에 대한 실험은 내부로도 이어진다. 동일한 크기의 회색 벽돌을 리듬감 있게 쌓아 올린 로비, 구멍 뚫린 벽돌로 패턴을 더한 계단 등은 건물 전체에 일관성을 불어넣으며 완성도를 더한다. 설계를 맡은 아르크티포Arqtipo 스튜디오는 ‘브루탈리즘Brutalism’의 정신을 이어가는 건축 팀으로 손꼽히며, 이 건물 역시 ‘형태의 순수성’, ‘재료의 정직한 표현’, ‘강력한 기하학적 언어’ 등 여러 면에서 브루탈리즘의 정신을 잘 이어받은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arqtipo.com.ar



THE IMPERIAL KILN MUSEUM


중국 베이징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 회사, 스튜디오 주페이Zhu Pei는 중국 도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장시성 징더전景德镇의 가마 유적지에 ‘황실 가마 박물관’이라는 벽돌 건축의 명작을 선보였다. 중국 가마 문화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로 읽히기도 하는 이 건축물은, ‘벽돌’이라는 재료가 가진 여러 기능성을 단순한 방식으로 완벽하게 보여주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전체적으로는 붉은 벽돌을 엇갈리게 쌓아 만든 12개의 건물이 남북으로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마치 그 형태가 원시적인 동굴, 혹은 벌레가 기어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원시성’과 ‘불규칙성’ 그리고 ‘불완전한 완전성’이 이들의 디자인 테마로, 그 미학은 내부에서 더 도드라진다. 성당이나 동굴같이 아늑한 볼트 천장을 만든 방식 또한 징더전의 오래된 전통 벽돌 가마에서 영감을 얻은 것. 로마식 아치와 달리 비계를 사용하지 않고 중력의 도움을 받아 이중 곡면으로 곡선형 가마를 만들었던 전통에서 착안해, 마치 손으로 쌓아 올린 듯한 원시적인 형태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빛의 유입을 위해 낸 유리창, 군데군데 별처럼 뿌려진 조명을 제외하면, 내외부 재료의 대부분이 모두 벽돌로만 이뤄져 마치 성당이나 종교 건축물 안에 들어선 듯한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studiozhupei.com



ACE HOTEL TORONTO


닻을 내리는 곳마다 빠르게 그 지역 힙스터들의 안방 역할을 꿰차는 에이스 호텔의 저력은 그들의 비범한 디자인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성을 추구하되 건축과 디자인, 예술 작품, 공간을 채우는 작은 소품까지 세심하게 그 지역의 문화를 반영한다는 원칙이 바로 그것. ‘에이스 호텔 교토’가 구마 겐고라는 건축가를 기용해 성공을 일군 것처럼, ‘에이스 호텔 토론토’ 역시 이 지역을 잘 이해하는 캐나다 건축 회사인 심-섯클리프 아키텍처Shim-Sutcliffe Architects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탄생했다. 신축 건물임에도 건물의 내외부 곳곳을 붉은 벽돌로 단장한 것은 이 지역의 건축적 내러티브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호텔이 위치한 토론토의 캠든 스트리트는 과거 직물 공장을 비롯한 각종 공장들이 위치한 중공업 지구였으며, 인근의 돈 밸리 지역에서 1900년대 말부터 생산된 붉은 벽돌을 사용해 이 도시의 수많은 주택과 공장 등이 지어졌던 것. 건축가는 ‘벽돌’이라는 견고한 재료를 사용해 이 지역의 역사를 오마주하는 동시에 이웃 건물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토론토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냈다. 강철과 목재, 유리 등으로 디테일을 살린 입구를 비롯해, 유약을 바른 벽돌로 장식한 리셉션 공간, 로비를 장식하는 대형 설치 작품 ‘호라이즌 라인Horizon Line’까지 호텔 구석구석에서 그 정신을 느낄 수 있다. shim-sutcliffe.com



INTERNATIONAL RUGBY EXPERIENCE


아일랜드의 소도시 리머릭의 중심에 벽돌로 지어진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막달레나 칼리지 도서관을 설계해 2022년 스털링상을 수상한 니얼 맥러플린Niall Mclaughlin 건축사무소의 작품으로, 주변의 건축물과 나란히 줄을 맞춰 자리한 33.8m 높이의 타워가 오래된 건축물들 사이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내뿜는다. 건물의 용도는 아일랜드의 국민 스포츠 럭비를 기리기 위한 뮤지엄인 동시에 럭비 전용 이벤트 공간이다. “럭비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트로피를 높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또한 리머릭의 수많은 교회와 공공 건물의 조형적 요소에서도 힌트를 얻었다”라는 것이 건축가의 설명이다. 벽돌이라는 재료는 이 건축물에서 강력하게 안팎을 지배한다. 강철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기둥과 바닥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톤의 벽돌을 사용해 공간의 톤을 하나로 통일시킨 것. 조지아 시대에 지어진 이웃 건물들과 톤을 맞추기 위해 약 50만 개에 이르는 벽돌을 별도로 제작했으며, 벽돌 크기에 맞춰 건물 크기를 조정해 낭비를 최소화한 점 역시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이 작품은 주변 건물과의 조화, 파사드의 다채로운 그리드, 재료로 구현한 공간의 통일성, 그리고 ‘타워’로서의 상징성을 살린 디자인 등을 높게 평가받아 아름다운 벽돌 건축을 기리는 2024 브릭 어워즈에서 그랜드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niallmclaughl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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