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3월호

LIVING in SEOUL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 이들이 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다재다능한 이들이 삶의 터전으로 서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3명의 외국인이 이야기하는 서울의 매력과 이곳에서의 라이프스타일, 아끼는 풍경과 공간들.

EDITOR 김송아, 차세연 PHOTOGRAPHER 이경옥, 이우경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겸 화가, 바움가르텐 잉고



바움가르텐 잉고 교수가 한국을 알게 된 것은 1993년이다. “그때 다니던 학교에서 한국으로 단체 견학을 온 것이 시작이었다. 한 도시 안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한강을 따라 일렬로 도열한 아파트와 그 반대편에 옛 모습을 간직한 주택들이 빽빽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도시를 그리는 화가이기도 한 그는 고향인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 영국, 일본을 거쳐 최종적으로 한국에 도래했다. 완전히 서울에 정착한 것은 2008년부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임명되고부터다. “도쿄에서 공부할 때, 한국인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많이 힘써줬다.” 그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선택한 지역은 바로 마포구 서교동. “직장과 가장 인접한 곳을 택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지난 몇 년 동안 상수, 합정, 망원 그리고 아현까지 주변 지역의 크고 작은 변화를 세심히 관찰했다. 오랜된 동네들 중 많은 곳이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면서 내가 좋아하던 식당과 카페가 사라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관찰과 발견에서 오는 기쁨을 알기에,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지나치기 십상인 주택, 모퉁이와 계단, 창문이 그의 작품의 주 소재다. “서울은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수없이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이 도시를 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영감이 떠오른다.” 약 15년 동안 서울에 거주한 만큼 독일의 가족과 친구들도 몇 차례 서울을 방문했다고. 그들이 꼽은 인상적인 장소는 동대문과 종로다. “코엑스와 같은 현대적인 쇼핑몰과 다르게 동대문, 종로는 전통적이면서도 서울 특유의 문화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더 독특하고 인상적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서울 도심 속에 거주하고, 도시를 그려내는 그가 서울을 즐기는 방법은 바로 도시의 산을 걷는 것. 그중에서도 인왕산을 즐겨 찾는다. “인왕산 정상에 오르면 서울의 도심이 한눈에 보인다. 종로구부터 서대문구까지 아우르는 풍경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등산 후 마을로 내려가면 다양한 종류의 카페, 레스토랑, 상점이 즐비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을 단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물음에 그는 바로 “역동적dynamic”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서울은 그 어떤 곳보다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곳이다. 때때로 너무 빠른 속도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으로 기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중교통 시스템이 아닐까?” 가끔 서울의 천편일률적인 풍경이 지루해진다면,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자. 애정 어린 시선이 깃든 서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넥스트 스테이지 벤처스 공동 창업자, 조나단 무어



“서울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혁신과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눈 깜짝할 새 수많은 발전을 이룬 서울의 무궁무진한 앞날이 기대된다.”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확장을 선도하고 있는 넥스트 스테이지 벤처스의 공동 창업자 조나단 무어. 그가 한국을 알게 된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한류 열풍 붐이 일지 않았기에, 서울은 굉장히 생소한 도시였다고. “빌딩 숲과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 서울은 예상과 전혀 다른 도시였다. 텍사스 출신인 내게 서울은 마치 라스베이거스를 보는 듯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후 그는 영어 가르치는 일을 하며 점차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2006년 처음 한국에 온 뒤로 1년 동안 거주하면서 생동감 있고 빠른 발전 양상에 매료되었다. 이후 얼마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3년부터는 완전히 서울에 자리 잡았다.” 이후 투자금 600만 달러를 조달하고 200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한 에듀테크 스타트업의 공동 창업자로 활약함과 동시에 수많은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5년간 펜타플로에서 CIO로 근무하며 스타트업의 글로벌 혁신상 수상, 벤처 캐피털의 투자 유치 및 인수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특히 그는 서울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그의 컨설팅을 받은 국내 약 100개의 스타트업이 주요 글로벌 혁신상을 수상했고, 2022년에는 한국 기업이 CES 혁신상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우며 서울의 스타트업이 업계 10위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했다. 이를 통해 서울시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외국인 15명에게 수여한 ‘2023년 서울시 명예시민’ 중 1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보통 스타트업 하면 실리콘밸리를 많이 떠올린다. 서울 또한 빠르게 변화하며 발전하는 도시이기에 충분히 아시아의 실리콘밸리이자 스타트업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을 교통으로 꼽는다. 지하철, 버스, 택시의 교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깔끔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주요 명소를 쉽게 오갈 수 있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 것. 자연스레 교통의 요지 중 하나인 여의도에 머물게 됐다. “강남, 홍대, 이태원 등 서울의 주요 장소를 한 번에 쉽게 갈 수 있다. 특히 비즈니스로 공항을 자주 왔다 갔다 하기에 여의도는 내게 최적의 장소다.” 현재 그는 한국 스타트업의 국제적 성장을 위해 파트너들과 함께 넥스트 스테이지 벤처스를 설립했다. 한국과 글로벌 인사이트의 독특한 조화를 바탕으로 국제적 성장을 꿈꾸는 스타트업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획 중이다. 2006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서울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한국을 떠나서 1년 뒤에 방문하면 정말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에 발맞춰 글로벌 확장을 목표로 하는 벤처기업에 초점을 맞춘 넥스트 스테이지 벤처스를 이끌고 있으며, 비즈니스 시너지를 위해 싱가포르 확장을 준비 중이다. 한국의 혁신이 서울을 넘어 글로벌 무대를 선도하는 미래를 만들고 싶다.”



서울독일학교 미술 교사, 트레이시 헤드벅



“서울에서의 삶을 정말 사랑한다.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온 만큼, 이곳의 구석구석을 탐구하고 싶다.”


서울 용산구의 한복판에는 1976년부터 이어온 역사를 간직한 글로벌 학습과 만남의 장소가 있다. 바로 서울독일학교Deutsche Schule Seoul. 독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독일계 외국인 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 과정까지 운영한다. 트레이시 헤드벅은 이곳에서 10년 넘게 근무 중이다. “서울독일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페인팅, 조각, 사진을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예술적 열정과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미국 캔자스 출신으로, 2007년 처음 서울을 방문했다. “캔자스는 굉장히 평평하고 넓게 퍼져 있어 어디에서도 수평선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서울은 정반대다. 역사를 간직한 건축과 고층 건물, 북적이는 거리가 매력적이었다.” 이후 점차적으로 서울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2008년부터 서울에 완전히 터를 잡았다. “처음에는 단지 짧은 출퇴근 시간 때문에 해방촌을 선택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해방촌 그 자체에 매료됐다. 언덕지고 구불구불한 길, 비밀로 가득한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벽돌집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이곳에 거주해온 다양한 인종의 주민들과 한국인의 혼합. 해방촌의 매력은 셀 수 없다.” 특히 그는 세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반려견 친화적인 동네이기 때문에 평화로운 산책이 가능한 것이 큰 장점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남산을 산책할 수 있고,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금방 이동할 수 있어 좋다. 종로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종로를 꼽았다. “종로의 식당, 오래된 골목길 그리고 그곳에 녹아 있는 역사를 사랑한다. 빈티지 카메라를 수집하며 아날로그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데, 종로를 거닐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취미다. 동묘의 벼룩시장도 자주 가는데, 그곳 노인들의 패션이 너무 멋지다.” 그는 종로를 걸어다니며 경험하는 모든 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든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요즘 서울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뉴트로 스타일도 정말 좋아한다. 옛날 간판에서 오는 특유의 느낌도!” 현재 서울에서의 삶은 만족스럽지만, 가끔 너무 빠른 속도에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그럴 때면, 종로의 골목골목을 탐방한다. 바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살이에서 옛날로 시간이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요즘 그는 ‘위대한 정리’라는 예술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너무 많은 물건을 수집해왔다. 포화된 공간을 정리하는 과정을 SNS를 통해 공유하며 기록해보려 한다.” 서울에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수많은 물건이 쌓인 것. 묵힌 것들을 털어버리고, 사랑하는 이곳을 더욱 즐기기 위한 노력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다.



국제변호사, 데이비드 린튼



“새로운 것이 무조건 정답인 것은 아니다. 조상들이 지켜낸 문화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이 되기를 기원한다.”


대학생 시절 한국어를 배우고자 유학길을 택한 데이비드 린튼(한글 이름 인대위)이 참치와 계란을 넣어 먹는 라면 맛을 안 지는 이미 오래. 그는 사실 태어나기 전부터 한국과 오랜 인연이 닿아 있었다. 1895년 미국인 선교사의 신분으로 건너온 1대 유진 벨부터 시작해 독립 유공자인 윌리엄 린튼을 포함, 5대에 걸쳐 한국과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독립 유공자 후손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었기에 남다른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꼈고, 이것이 곧 2014년 특별 귀화의 길을 택한 이유가 되었다. 그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및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도와온 법률가이자 사업가로서, 리더십과 법, 직업의식 등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맹활약 중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는 탁월한 능력 덕에 서울을 빛낸 외국인들에게 주어지는 ‘서울 명예시민’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열린 G20 정상 회의에서 서울을 알리는 홍보 모델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까지 있다. “일에 전념하다 보니 특정한 취미 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이사다. 저마다의 감성을 지닌 다양한 동네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지금도 이사는 거의 2년마다 다니는 것 같다.” 잠실, 신용산, 이태원, 상암동 등 지금까지 거쳐온 동네만 해도 수두룩하다. 직장 때문에 이사한 적도 있지만, 동네가 좋아 집을 구해놓고 재택근무를 한 경우도 있다. 그는 맛집도 맛집이지만 옥탑방 생활이 워낙 독특했던 터라 연남동을 가장 기억에 남는 동네 중 하나로 손꼽았다. 이곳저곳 탐방하는 것을 즐기지만, 대치동에 위치한 ‘반도 카메라’ 매장은 그중에서도 특히 즐겨 찾는 공간이다. “건축에는 문화와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산책을 나갈 때면 건물을 유심히 보곤 한다. 반도 카메라는 고객으로 처음 방문했는데, 최신 제품뿐만 아니라 구형 카메라나 사진, 영상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박물관처럼 전시해놓은 모습에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약 130년 동안 이어져온 가업을 보존하고자 하는 그의 전통주의적인 가치관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서울이 살기 좋은 도시인 것은 분명하나, 신식만을 좋은 것이라 여기는 경향 탓에 얼마 남지 않은 전통적인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반도 카메라처럼 전통과 현대를 모두 존중하는 복합 문화 공간과 전통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이유다.” 독립 유공자 후손으로서, 그에게는 아직 한국 독립의 유산을 축복하고 국민의 자유권을 보존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어렵게 되찾은 명예와 문화를 지켜나가며 발전하는 것. 이것이 꿋꿋한 대한민국의 지지자, 데이비드 린튼이 모두에게 당부하는 바다. COOPERATION  반도 카메라(6273-1501), 코넬리아니(3463-0008)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