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3월호

LIVING in SEOUL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 이들이 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다재다능한 이들이 삶의 터전으로 서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3명의 외국인이 이야기하는 서울의 매력과 이곳에서의 라이프스타일, 아끼는 풍경과 공간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이경옥, 이창화, 이우경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소장, 야코포 쥬만



“서울의 삶이 재밌는 이유를 하나로 꼽을 순 없지만 이곳을 가장 잘 설명할 한 단어는 바로 ‘생동감’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방문한 장소 중 하나가 동대문이다.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있는 자리에 동대문야구장이 있었을 때니까 생각해보니 정말 오래됐다. 그때 야구장 주변으로 패션 시장과 사람들이 꽉 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야코포 쥬만 소장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포도바Podova에서 나고 자랐다. 물론 베를린, 상하이 등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큰 도시를 경험했지만, 동대문 상인들이 새벽 5시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이하 ITCCK)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다. 이탈리아는 패션, 푸드, 가구 3개의 빅 F로 대표할 수 있다. 한국은 아시아 가운데 특히 패션에서 가장 큰 마켓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쥬만 소장은 한국, 특히 서울의 여성들이 트렌드를 이끈다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분명 회사나 사회 전반에 여전히 남녀 간의 의견 차이가 존재하지만, 패션이나 음식은 물론 문화 전반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삶이 재밌는 이유를 하나로 꼽을 순 없지만 이곳을 가장 잘 설명할 한 단어는 바로 ‘생동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카페, 독특하게 꾸민 팝업 스토어 등 발 빠르게 찾아오는 이들 대다수가 여성이다. 이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들과 밀접하게 일하다 보니 그들이 이끄는 서울의 바이브가 굉장히 특별하다.” 쥬만 소장은 서울이 빠르게 변화하지만, 여전히 전통을 간직한 도시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움직임이 느리다. 변화에 민첩한 한국에 있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우리가 비록 빅 F에 집중하고 있지만 테크놀로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기업이 있다. 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생동하는 도시에서 쥬만 소장은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주중에는 ITCCK에 헌신하며 서울과 이탈리아를 잇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주말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세 아이는 모두 세종시에 있다. 그들과 보내는 주말이 내겐 휴식이다. 많은 이가 취미 생활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지만 내게 가족과의 쉼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 우리는 퍽 재미있는 가족이다. 내가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한국어로 답한다. 또 아내와는 영어로 대화한다. 작지만 참 국제적인 가족이지 않은가!” 올해는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ITCCK 역시 비즈니스 측면에서 더욱더 견고한 관계를 다지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바쁜 1년을 앞둔 그가 살아갈 서울은 내일도 오늘만큼 활력 넘칠 테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학생들이 음악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볼 때다.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음악으로 소통한다.”


“한국에서 외국인 음악가로 산다는 건 매우 큰 축복이다.”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이곳이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시베리아가 고향인 그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음악을 접했다.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놀이, 혹은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건반을 대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열여섯 살에 독일로 유학을 간 라쉬코프스키 교수는 손열음, 임동혁 등이 거쳐간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리고 일찍이 세계 각국에서 크고 작은 공연을 펼쳐왔다. “일본, 중동, 유럽 등에서 다양한 연주를 들려줬다. 한국과 처음 연을 맺은 건 21세쯤이었던 것 같다. 짧은 방문으로 많은 것을 기억하진 않지만 추운 겨울과 마늘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 인상적이었다.” 라쉬코프스키 교수가 본격적으로 한국과 긴밀하고도 강력한 연결 고리를 만들기 시작한 건 작곡가 류재준을 만나면서부터다. 폴란드에서 열린 ‘두슈니키-즈드로이 쇼팽 페스티벌Duszniki-Zdroj Chopin Festival’에서 서로를 알게 된 이후 2013년 류재준은 라쉬코프스키를 ‘서울국제음악제’에 초청했고, 그 뒤로 매년 한국을 찾아 연주했다. “하노버에서 함께 공부한 피아니스트 정재원과의 인연으로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그간 한국에서 좋은 공연을 펼친 경험과 류재준 작곡가를 비롯한 다양한 한국 음악인과의 교류 등을 통해 서울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2017년부터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하는 삶을 이어오고 있는데, 아주 만족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보다는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음악인으로서 그저 몇 발 앞서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는 방법, 스스로 깨쳐나가는 방식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학생들이 음악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볼 때다.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음악으로 소통한다.” 그는 최근에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바로 ‘지휘’다. 오케스트라 각 파트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 조화롭게 아우르려는 노력을 통해 음악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연주자도 어떤 면에서는 작곡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재즈 연주자들을 동경하기도 한다. 나는 피아니스트로서, 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지휘나 작곡 그리고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모든 여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망과 열망, 경험들이 쌓여서 나를 더욱 탄탄한 음악가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선임 외국 변호사, 티모시 디킨스



“서울은 세상이 움직이는 박자보다 늘 한발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처음 서울에 발을 들인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티모시 디킨스 변호사. 그는 벌써 11년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여러 변화를 맞이했다. 영국인 부모님 아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대학에 이르기까지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런던에 위치한 세계에서 제일가는 법무법인 중 하나인 회사에서 변호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큰 로펌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일을 맡아서 진행하고 싶었던 그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는 큰 조직의 작은 일부로 느껴졌고 변화를 찾던 중 한 친구가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한국에 온 그는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을 이으며 기업, 게임,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맡아 큰 소송을 진행했다. 2016년부터는 대륙아주에서 아프리카팀을 만들어 그가 가진 경험과 현지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한·아프리카 재단과 긴밀한 협업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프리카는 한국에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이미 미국이나 중국, 유럽의 여러 나라는 수년 전부터 이곳에서 기반을 다지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향후 아프리카가 한국에도 주요한 곳이 되리라 믿는다”라고 말하는 디킨스 변호사. 타국에서 아직 많은 이가 눈여겨보지 않는 분야를 개척해나간 그에게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새로운 것에 적응할 때 겪는 어려움을 그저 힘든 것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자라면서 경험한 문화의 차이, 그리고 이 차이를 받아들이는 관점에서 생겨나는 ‘다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디킨스는 무엇보다 열린 마음을 강조하며 서울을 ‘영혼soul’이라고 표현했다. 영문 철자를 한 번 꼬아서 이곳에 자기 심장이 있음을 역설한 것. “처음에는 고층 건물이 많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이 정말 매력적인 곳임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자리를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는데, 효율적으로 원활한 흐름을 유지하는 점이 놀랍다. 서울은 세상이 움직이는 박자보다 늘 한발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디킨스 변호사에게 이제 이곳은 또 다른 고향이 되었다. 실시간으로 발전하는 기술과 시스템의 변화에 길들다 보니 이전의 느릿한 유러피언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어려움을 다름이라고 표현하며 낙천적인 시각을 보여준 그는 어쩌면 이곳에서 또 다른 10여 년을 지낼지 모른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땐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문화에 적응해간 덕도 있지만, 서울이 빠르게 세계화된 이유도 있다. 이곳에서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는 다리로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립 큐레이터, 발렌티나 부치



“외국인의 시각으로는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 이룰 수 있는 것과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동분서주하는 큐레이터가 또 있을까. 발렌티나 부치는 현재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병행 전시로 함께 열리는 이배의 개인전 <달집 태우기>의 큐레이터를 맡아 막바지 준비를 위해 서울과 이탈리아 그리고 이배의 작업실이 있는 경북 청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큐레이터에게 꿈의 무대다. 나를 믿고 이러한 기회를 준 조현화랑과 이배,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물론 한솔문화재단과 빌모트재단 모두에게 감사한 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밖에도 그는 현재 총 3개의 비엔날레에서 어드바이저와 리서처로서 소임을 다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는 3월에 제1회 행사를 앞둔 ‘2024 몰타 비엔날레’로, 예술 디렉터 소피아 피기Sofia Pighi를 도와 한국 작가 듀킴과 얄루 등을 소개하고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또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 파빌리언의 아트 디렉터를 맡았던 경험에 이어서 올가을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이탈리아 파빌리언에서 다시 한번 한국 큐레이터와 이탈리아 젊은 작가의 전시를 꾸리는 데 어드바이저로서 일조하고 있다. 발렌티나 부치는 자신이 큐레이터로서 얼마나 큰 열정을 가졌는지 거듭 강조했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공부했고, 18세의 어린 나이부터 커리어를 쌓아왔다. 유럽은 나의 고향이고 한국은 이제 나의 두 번째 집이다. 내 역할은 미술이라는 영역에서 서로 다른 나라에 견고한 다리가 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위해 공부할 때 문화 경영 및 정책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때 시각예술 쪽 정책 사례 연구로 자주 등장하는 한국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탈리아 역시 아름다운 박물관과 멋진 문화유산이 많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현대와 유기적으로 잇는 데 뛰어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있지만, 이들을 제대로 서포트하고 키우는 데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한국을 공부하고 이를 우리와 잇고 싶었다. 예술과 관련된 많은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광주, 청도 그리고 부산까지 두루두루 다녀본바, 지역마다 크지 않아도 저마다의 예술신을 만들고 있음이 보였다.” 부치 큐레이터는 “외국인의 시각으로는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 이룰 수 있는 것과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예술은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렌즈가 아닐까. 서울을 비롯해 한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누비며 사랑의 마음을 담아 작가들을 만나는 발렌티나 부치. 비록 희생이 따르고 조금 손해볼지라도 그는 큐레이터로서의 숭고한 삶을 멈출 생각이 없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