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3월호

LIVING in SEOUL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 이들이 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다재다능한 이들이 삶의 터전으로 서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3명의 외국인이 이야기하는 서울의 매력과 이곳에서의 라이프스타일, 아끼는 풍경과 공간들.

EDITOR 이영진 PHOTOGRAPHER 이경옥, 김규한

럭셔리 비즈니스 그룹 회장, 다니엘 메이란



“한국이 발전하는 과정을 22년 동안 몸소 체감한 사람이자 서울 시민으로서 한국이 자랑스럽다.”


다니엘 메이란과 서울의 인연은 2002년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아시아에 알리는 ‘부루벨코리아(Bluebell Korea)’ 대표이사로 부임하고부터다. 한국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을 이어간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럭셔리 비즈니스 그룹(LBG)’을 설립했다. 럭셔리 비즈니스 그룹은 유럽을 포함한 외국 럭셔리 브랜드가 아시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비즈니스 솔루션 회사다. 컨설팅, 교육, 인재 발굴에 집중한 3가지 유닛으로 구성됐으며,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도 많은 직원을 두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간 문화 교류에 이바지한 그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서울을 사랑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서울을 빛낸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2023년 ‘서울시 외국인 명예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고유 문화를 아시아에 전한 공로를 인정받으며 프랑스 문화부에서 수여하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기사장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도 받았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모두 유의미한 상을 받았지만, 서울에서 받은 것이 훨씬 더 자랑스럽다. 과거의 유산과 현대적인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에 거주하면서, 서울 시민으로서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글로벌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한국 시장에 오랫동안 몸담은 만큼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다. “사회적인 관계를 중요시 하는 아시아인들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럭셔리 시장이 꾸준히 확장돼나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디지털에 특화된 나라인 만큼 새로운 제품에 대한 지식이 많고 또 이를 발 빠르게 시도하려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과거에는 브랜드만 보고 구매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요즘은 그 브랜드의 더 독특한 아이템, 리미티드 제품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들을 위해 획일화된 방법이 아닌 개인에게 맞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엘 메이란 회장을 따라 한국을 자주 방문한 손자 역시 한국 문화에 큰 애정이 있다. K-팝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손자는 작년에만 네 번을 방문했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고. 오늘도 한국 여행 중인 손자와 특별한 시간을 보낼 거라 덧붙인다. 인터뷰 내내 “한국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만큼 한국에 진심인 다니엘 메이란은 한국의 럭셔리 시장에 크게 이바지하고 싶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가 걸어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콜린 벨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독일에 방문할 때면 한국 자랑을 늘어놓는 ‘한국 알리미’로 활약하곤 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국은 너무나 아름답다.”


평소 한국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콜린 벨 감독은 2019년 10월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 나라의 라이프스타일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산과 바다를 곳곳에서 포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물론 메디컬 센터 같은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된 한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다. 오래 머무를수록 한국에 더욱 매료된다.”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고충은 없었는지 묻는 질문에도 그의 답변은 단호했다. “전혀 없었다.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많은 사람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과정에서 두려움보단 즐거움이 더 컸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된 그는 2022년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같은 여자 축구 프로그램의 인기가 입증하듯 최근 국내 여자 축구 팬은 크게 증가했지만 선수층은 매우 얕다. 백승호 선수가 이적한 버밍엄 시티 FC 산하 여자 축구단에 속해 있는 조소현 선수, 마드리드 CFF의 이영주 선수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외국에는 한 팀 아래 남자, 여자 팀으로 나눠 구성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K-리그는 그렇지 못하다. 콜린 벨 감독은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여자 축구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하루 일과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개인 운동을 끝낸 후에는 늘 지난 경기를 분석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친다고. 바쁜 와중에도 생활 속 즐거움을 찾는 일은 잊지 않는다. 인터뷰 중 가장 많이 한 대답이 “한국 카페가 너무 좋다”였을 정도. “획일화되지 않고 개성 넘치는 콘셉트로 꾸민 공간이 정말 많다. 평소 집중이 필요할 때면 카페를 찾곤 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인 공간에서 특히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는다. 또 이태원과 홍대 부근처럼 역동적이고 활발한 바이브가 넘치는 공간에서 나 또한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한국을 한 단어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집’이라 표현한 콜린 감독. 그는 주말이면 일산에서 이태원까지 한강을 따라 사이클을 즐기고 베이커리에서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평일에는 일에 매진하고 주말에는 취미 생활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여느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일주일에 두 번, 1시간씩 수업을 받으며 조금은 익숙해진 한국어 실력처럼 한국에 녹아든 그의 삶이 더욱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댄 디즈니



“스스로를 단련하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한국인들을 누구보다 존경한다.”


한국적인 오브제와 책들이 반기는 아늑한 공간은 댄 디즈니 교수가 사는 집이자 명상·요가 강사인 아내의 일터이기도 하다. 2010년부터 시작해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그는 요가 수업에서 처음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댄 디즈니는 서강대학교에서 20~21세기 시를 가르치는 영문학과 교수이면서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국 시조와 시인에게서 영감을 받은 시집 를 선물로 건네며 한국에서의 경험과 에피소드가 녹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2년 호주에서 가장 저명한 문학상 중 하나인 ‘N.S.W. Premier’s Literary Awards’를 수상했을 만큼 문학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목차를 살펴보던 중 가장 눈에 띈 라는 제목의 시에 대해 물었다. 택시에서 흥미로운 대화가 많이 이어진다고 전한 그는 “택시를 타면 가끔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며 먼저 질문을 건네는 기사님들이 있다. ‘파파고’ 같은 번역 앱을 서로 보여주면서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약간의 오역이 생기곤 하는데, 결국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다른 말만 하다가 끝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재밌다”라고 설명했다. 호주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 한국살이였지만 첫 2년은 익숙지 않은 사회 분위기와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호주가 그립지 않느냐는 질문에 “물론 가족들이 그리울 때는 있지만 호주가 그립진 않다”며 우스갯소리를 전할 만큼 한국을 사랑한다. 특히 한국의 깊은 역사는 물론 이를 공부하고 탐구하며 스스로 발전해나가는 한국인들이 존경스럽다고. 이는 제자들을 아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모든 일에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는 제자들이 자랑스럽다. 이런 마음 때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늘 걱정하며 바라보고 응원하게 된다.” 그가 애정하는 것은 또 있다. 산에 있을 때면 마치 ‘산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그의 방 안 곳곳에서는 절에서 구매한 여러 아이템을 포착할 수 있었다. “한국의 산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산속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고즈넉한 공간에서는 특히나 영감이 잘 떠오르곤 한다. 이 시간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느낀다. 최근 경상북도의 작은 산 하나를 구입해 그곳에 한옥을 짓고 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그곳에 사는 것이 꿈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