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3월호

A RELIABLETOMORROW

개그맨 출신 단역배우에서 뮤지컬계의 톱스타가 되기까지, 정성화가 걸어온 시간은 성실한 걸음으로 ‘해내고야 마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 절실함을 바탕으로, 무대 위에서 행복한 내일을 꿈꾼다. 그렇게 우리는 늘 ‘다음’이 기대되는 믿음직한 배우를 만나고 있다.

EDITOR 이연우, 정두민 PHOTOGRAPHER 박영빈

차콜 슈트 세트업은 지오송지오. 니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더비 슈즈는 미소페. 브라운 티타늄 안경은 앰버옵티컬.


많은 이가 인생 뮤지컬로 꼽는 작품인 <노트르담 드 파리>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배우 입장에서도 무대에 오르는 각오가 남다를 듯합니다.

역사가 깊은 작품이죠. 한국어 버전 공연도 오래됐고요. 그렇다 보니 일종의 표본이랄까, 관성 같은 게 만들어졌을 거예요. 제작진은 물론 관객분들도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이런 거지’라는 공식을 떠올리는 거죠. 따라서 모두에게 익숙한 <노트르담 드 파리>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가 큰 과제였어요. 정성화만의 콰지모도를 만들기까지 고민이 상당히 많았죠. 고민 끝에 노래 부분과 이야기 부분을 분리해서 표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어요.


모두가 기피하는 추악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맑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남자, 콰지모도 역을 맡았죠. 콰지모도가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했을 텐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는 힘을 만드는 거였어요. 콰지모도가 되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힘이 필요하더라고요. 공연 기간 동안 쭉 콰지모도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선 단단한 근육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죠.


무거운 곱추 분장을 하고 극 내내 기울어진 몸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데요. 몸은 괜찮습니까?

허리를 구부린 채 왼쪽 다리로만 체중을 지탱하고 서 있거든요. 이 자세가 허리에 굉장히 무리가 가더라고요. 처음 연습을 시작하고는 이틀 만에 뻗었어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정말 열심히 운동했죠. 허리 통증을 덜기 위해 체중도 줄이고 허벅지와 무릎 중심으로 강화 훈련을 강도 높게 하고 있어요.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바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구부정하게 서서도 아주 정확하게 노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한 다리로 버티고 서서 피아니시모 같은 음역을 소화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는데 발성은 안정적으로 내야 하니까요. 노래, 소리라는 게 바른 자세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노래가 영 엉망이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운동으로 자세를 만들고 적응하다 보니 이제 나름대로 방법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블랙 레더 재킷은 올세인츠. 스트라이프 셔츠, 니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 작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콰지모도를 꿈꾸지 않을까요? 그가 갖고 있는 서사, 그가 갖고 있는 절절함, 이런 것들이 배우의 마음을 건드리죠. 저 역시 그랬고요. <노트르담 드 파리>는 오래전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던 작품이었는데 매번 다른 작품과 일정이 겹쳐 도전해볼 기회가 없더라고요. 이번에 상황이 잘 맞아서 기대를 갖고 오디션에 지원했는데 결과가 좋았네요.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준비를 했나요?

일단 그저 노래만 잘 부르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콰지모도의 삶, 그가 처한 상황, 그가 느끼는 감정이 노래에 끈끈히 녹아들 수 있도록 곡의 기승전결을 연구했죠. 노래가 다음 소절로 나아가기까지, 어떤 이유와 감정들이 작동하는지를 깊게 연구하고 계산했어요.


언제나 가사를 먼저 연구하고 그 가사를 연기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편인 것 같아요.

맞아요. 일반 가요와 뮤지컬 음악의 가장 큰 차이는 노래가 갖고 있는 연기적 특성이거든요. 그것을 극대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중심에 노래가 있는 거고요. 노래가 연기의 구성 요소처럼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 저는 가사 분석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에요. 특히 이번 작품은 송스루song-through(대사를 최소화하고 음악만으로 극을 진행하는 방식) 뮤지컬이기 때문에 특히 더 노력을 기울였어요.


같은 역을 연기하는 여러 배우 중 정성화의 콰지모도는 어떻게 특별한가요?

물론 다른 배우들이 모두 탁월한 연기를 펼치고 계시지만, 저는 특별히 가사를 더 잘 표현하는 콰지모도라고 생각해요. 가사의 의미, 강조할 부분, 내재하고 있는 감정 등을 신경 써서 뱉는 편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좀 더 풍부한 호소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블루 셔츠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네이비 컬러 니트는 빠니깔레. 네이비 슬랙스 팬츠는 코스. 블랙 스트랩 워치는 몽블랑.


평탄치 않은 삶을 굽이굽이 살아낸 콰지모도, 당신과 닮은 점이 있다면요?

제가 요즘 절실히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항상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하지요. 콰지모도 역시 삶이 고되고 어렵기는 하지만, 자신이 종을 치는 행위가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거든요. 비록 남들은 그를 무시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긍정적으로 살아 있음을 누리려고 하는 인물이에요. 저 역시 바쁘고 힘들더라도 ‘이렇게 내가 쓰임이 있다’ 생각하며 웃음 짓곤 해요.


<노트르담 드 파리> 이 작품은 당신에게 어떻게 남을까요?

의미를 찾기 전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제가 이 작품을 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예요. 사실 제가 이 작품을 좀 더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가 음악의 아름다움 때문이거든요.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는데 제가 그 노래들을 부른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온전한 행복을 맛보는 것은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이 작품의 목표는 ‘내가 무대에서 행복하기’인 거예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했던 것도 그 행복을 조금이라도 갉아먹고 싶지 않아서였고요. 아직 공연 중에 있습니다만, 지금까지는 목표가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충만한 행복을 누린 작품으로, 목표를 끝까지 완수해낸 작품으로 남기고 싶어요.


김덕민 감독의 신작 <도그데이즈>로도 관객들을 만나고 있죠. 오랜만에 만나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예요.

맨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애견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달려보니 ‘사람’에 대한 이야기더군요. 그래서 좋았어요. 제가 원래 가볍고 유쾌한 코미디를 좋아해요. 전작에서 워낙 진중하고 묵직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터라 오랜만에 밝고 활기찬 인물을 만나 좋았어요. 상대 역인 김윤진 선배와 티키타카 하는 재미도 컸고, 감독님과 머리 맞대고 웃으며 회의하는 과정도 즐거웠고요.


공연에, 영화 홍보에 무척 바쁜 나날이네요. 요즘의 생활에 대해서는 얼마나 만족하고 있나요?

너무 착하고 뻔한 대답이라고 흉보실지 모르지만요. 진심으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어요. 매니저나 동료들한테도 늘 얘기해요. “나 요즘 되게 바빠, 정말 감사해”라고요. 누군가 저를 써주고, 무대 위에 설 수 있게 해주고, 연기할 수 있게 해주고, 심지어 많은 사람이 좋아해준다는 사실이 가끔 믿기지 않을 만큼 벅차게 기쁘죠. 요즘 참 좋습니다.


좀 감동적인 대답인데요? 수십 번 수백 번 무대에 오르고 또 오랜 기간 카메라 앞에 서온 배우가 본질적인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요.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작품 하나를 시작하면 한 번 잘해서 될 일이 아니라 거의 100회에 달하는 매 회차를 잘 해내야 하는 거니까요. 그 여러 번의 무대가 때론 지긋지긋하기도 하죠. 그러나 무대가, 촬영장이 괴롭지 않으려면 제가 하는 퍼포먼스 자체를 행복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도 무대에 올라가면 그렇게나 좋아요.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싶고 서사를 잘 펼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그래서 연기하는 본질 자체에 더 집중하고 충분히 행복을 누리려고 해요.


많은 작품을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새롭게 느끼거나 깨닫는 것이 있겠죠?

‘아, 계속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요. 나이가 들수록 퍼포먼스가 무뎌지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젊을 때는 좋은 체력을 바탕으로 뭔가를 했다면 이제는 제 안에 쌓인 시간과 경험들이 익어가면서 또 다른 차원의 결과를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노력하면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조금 놀랍고 뿌듯해요.


한편으로는 이것만큼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딱 하나 있죠. 연습량이요. 수치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납득할 만큼의 기준이 있어요.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채우고 무대에 올라요. 사실 공연보다 훨씬 신경 쓰는 게 연습이에요. 항상 예습과 복습을 하고요. 앞으로도 완벽한 연습, 이것만큼은 꼭 지키며 살 겁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절실함”이라고 말한 바 있더군요. 많은 것을 이룬 지금, 무엇이 ‘내일의 정성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긴장을 놓치지 않기. 긴장을 풀고 마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산다면, ‘‘사는 게 불행하다’ 생각했던 예전 시절로 돌아갈 것 같아요. 배우가 가장 행복할 때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순간이거든요. 행복하고 싶고, 그 행복을 유지하고 싶다면 절실한 마음으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내일의 정성화’ 역시 계속해서 어제의 절실함으로 만들어가는 거군요?

맞아요. ‘오늘의 나’는 2~3년 전 제가 했던 노력의 결과인 것 같아요. 지금, 오늘을 절실하게 부지런히 산다면 2~3년 후의 나 역시 행복할 거예요. 저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어요.


카멜 컬러 스웨이드 코트, 블랙 슬랙스 팬츠 모두 페라가모.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HAIR & MAKEUP  유나  STYLIST  안수빈, 이정인 

COOPERATION  몽블랑(1877-5408), 미소페(2049-1700), 브루넬로 쿠치넬리(1644-4490), 빠니깔레(031-378-4711),

앰버옵티컬(0502-626-4567), 올세인츠(080-801-7070), 지오송지오(468-2663), 코스(1800-2765), 페라가모(3430-7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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