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2월호

소외된 것으로 향하는 시선, 유화수

송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제23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의 영예는 유화수 작가에게 돌아갔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과 환경적 변화, 나아가 기술과 인간, 생명의 관계에 대해 면밀히 고찰한 시간을 담은 작품 ‘재배의 몸짓’은 소외받고 외면받는 것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남긴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기태

유화수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노동에 미치는 영향, 기술이 만들어낸 환경과 개인, 기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이러한 관계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현상 등에 집중해왔다. 특히 작가는 기술이 장애와 오작동을 조우할 때 생겨나는 반응과 현상에 주목하면서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기술의 환경적 가치관과 미래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해로 23회째 개최되는 송은미술대상은 역량 있는 동시대의 한국 작가를 발굴해 한국 미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목적을 둔 미술상이다. 총 512명이 저마다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였고, 최종적으로 유화수 작가와 그의 작품 ‘재배의 몸짓’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재배의 몸짓’은 인간의 편리와 필요를 위해 고안된 첨단기술인 스마트팜으로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비식용 버섯의 생태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유지, 보수하는 설치 작업이다.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거된 주거 단지의 나무를 보며 작업의 영감을 떠올린 그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기술이 정교하게 발달할수록 자연환경에 대한 감각은 도리어 무뎌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전부터 작가는 사회 가장자리에 위치한 존재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작품을 제작하며 장애인과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대상을 조명해왔다. 여기서 나아가 2021년 개인전 <잡초의 자리>를 통해 스마트팜 기술로 잡초를 길러내는 작품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신작 ‘재배의 몸짓’을 통해 인간의 관점에서 쓸모 없어진 자연을 인간의 윤택한 삶을 위해 개발한 첨단기술로 돌보는 전복적 시도 또한 감행했다. 작가 유화수는 지금 인간이 과연 무엇과 공존하는지에 대해 과감한 물음을 던지는 중이다.


연초부터 좋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제23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을 수상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개근상 이후로 상을 받아본 경험이 드물어요. 특히 제가 몸담은 미술계에서 주는 상이라면 더욱요. 작가로 살아오며 뚜렷한 성과 없이 공회전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갑작스레 찾아온 큰 상이 제 삶의 변곡점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 대상의 영예를 안겨준 ‘재배의 몸짓’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잘린 나무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요.

종로구 구기동의 한 빌라 단지에 자리한 12그루의 나무가 주거인의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잘려나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반상회의 만장일치로 단 몇 분만에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무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거죠. 심지어 잘린 나무의 처리 비용도 만만찮더라고요. 그래서 잘린 나무 덩이들을 작업실로 가져왔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버섯이 피기 시작하더군요. 누군가에겐 쓸모없어 버려졌는데, 도리어 생명이 움트다니요. 물론 이렇게 움튼 버섯도 식용 가치가 없어 쓸모없는 생명으로 치부될 것이 뻔했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과연 우리 인간은 누구와 얼마나,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이어졌어요. 이것이 ‘재배의 몸짓’이 탄생하게 된 시작점입니다.


인간의 윤택한 삶을 위해 개발한 기술의 혜택이 누군가의 불편으로 버려진 존재에게 적용된다는 발상의 전복이 흥미로웠습니다. 작품에 쓴 목재 다리도 나무 중 고급 재료로 취급받는 월넛을 소재로 사용했고요. 인간과 사회에서 소외받는 것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는 전작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스마트팜이라는 진보적 기술의 혜택을 받을 식물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지 따져보니 편파적이더군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새로운 기술로 삶이 더욱 윤택해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기술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몇 년 전, 개인전에서 스마트팜 기술로 잡초를 길러내는 작품을 발표한 적 있어요. 상추나 딸기 등 인간의 식생활에 이로운 식물이 스마트팜 기술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반면, 잡초의 경우 이를 제거하고자 하는 기술적 데이터는 많아도 길러내는 데이터는 전무하죠. 아이러니하게도 제초제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잡초가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작품을 통해 기술의 혜택과 목적, 대상 그리고 방향성을 뒤바꾸는 시도를 감행해보고 싶었습니다. 혜택의 대상과 그렇지 못한 대상이 되는 게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누가 그것을 결정하나요? 누구도 방치되거나 외면받고 싶지 않아합니다. ‘재배의 몸짓’을 통해 동일한 맥락의 이야기를 저만의 수단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어요. 귀중하게 취급받는 목재인 월넛으로 다리와 지붕을 만들고 버섯이 잘 자라도록 최적의 조건을 항시 유지해주는 스마트 기술을 적용한 소규모 온실을 만들어서요.


대체 무엇이 작가님을 움직이나요?

너무도 일상적이라 무심코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저로 하여금 다시 이야기를 만들도록 합니다. 당연한 것처럼 도사린 일상의 수많은 것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거죠. 저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 변화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의문을 던질 필요성을 느낍니다.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예술 그리고 예술가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작가는 그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자라고 봅니다. 계속해서 제기되는 질문을 의식하고 생각이 환기되어야만 사회와 삶에 이러한 의문점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고 문제에 관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거예요. 캠페인과는 달라요. 캠페인은 행동의 방향성을 제안하지만, 작가와 작품은 생각이라는 행위를 독려하는 것이니까요. 저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요.


대상 수상 작가인 만큼, 곧 송은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모습의 전시일지 기대됩니다.

개인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는지라 전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의 규모가 크고 좋은 공간인 만큼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이전에 해왔던 작업과 앞으로 해야 할 미래의 작업을 어떻게 분류해 하나의 완결성 있는 전시를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을 거듭하는 중입니다.(웃음) 행복한 고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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