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2월호

영원映遠의 끝에서 마주한 풍경, 미노루 노마타

구체적으로 식별되지 않는 모호한 시공간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우뚝 선 기이한 건축물. 마치 초현실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 미노루 노마타의 캔버스 안에서 펼쳐진다. 그의 손끝을 거쳐 탄생한 숭고한 풍경은 관객과 조응하는 순간 무한히 확장한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경옥

미노루 노마타   1979년 도쿄 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후, 도쿄의 한 광고 대행사에서 5년간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회화 작업에 몰두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그는, 1986년에 고이케 가즈코가 운영하는 대안 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치렀다. 이후 도쿄 메구로구 미술관(1993),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2004·2023), 일본 군마 현대미술관(2023), 영국 벡스힐의 드 라 워 파빌리온(2022)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다. 1979년 도쿄 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후, 도쿄의 한 광고 대행사에서 5년간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회화 작업에 몰두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그는, 1986년에 고이케 가즈코가 운영하는 대안 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치렀다. 이후 도쿄 메구로구 미술관(1993),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2004·2023), 일본 군마 현대미술관(2023), 영국 벡스힐의 드 라 워 파빌리온(2022)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다.



이제 곧 일흔을 바라보는 일본 화가의 작품이 한국에 당도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과 경계가 흐릿한 지평선을 배경으로 아찔하게 솟아 있는 타워나 웅장한 위용의 구조물을 보면 마치 초현실의 영역에 당도한 것만 같은 착각도 든다. 이같은 작품을 그려온 이는 작년 가을 한국에 진출한 영국의 세계적 화랑, 화이트 큐브 서울의 첫 개인전의 영예를 거머쥔 미노루 노마타. 예술가로 살아온 40여 년의 삶 동안 그는 초현실의 세계를 화폭에 담아왔다. 한자 ‘비칠 영映’과 ‘멀 원遠’을 합해 ‘먼 광경을 투영하다’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안 ‘영원’을 제목으로 앞세운 전시에는 중세 시기의 도상과 르네상스 회화에서 기법적인 영감을 받아 색연필, 파스텔, 콩테, 목탄 등으로 완성한 회화와 드로잉 20여 점이 걸렸다. 자포니슴Japonisme과 동양 미학의 영향을 받은 초기작 ‘Eastbound’ 연작부터 ‘Far Sights’ 연작, ‘Seeds’ 연작 그리고 ‘Ghost’와 ‘Rectagular Drawings’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장에 자리한 만큼 긴 시간 다져온 미노루 노마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평안함과 고독이 느껴지다가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풍경 앞에 압도당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그려낸 그가 첫 전시를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화이트 큐브 서울이 마련한 첫 개인전이자, 미노루 노마타의 한국 첫 전시다. 작년 프리즈 서울 개최 당시 화이트 큐브 부스에서 만날 수 있었던 미노루 노마타 작품은 마치 당신을 곧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힌트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 열린 첫 전시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지난해 9월 개관한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감개무량하다. 일본 미술계에서 소수의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그림을 그려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서울에서 내 작품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되뇌일 때마다 기분 좋은 떨림을 느낀다.


화이트 큐브 서울의 첫 개인전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만큼 그에 따른 책임감과 부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나?

일본 미술은 전통적인 시각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시작점은 아마 고구려 시대였으리라 보는데, 당시부터 지금까지 예술적 영향을 주고받는 흐름이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작품 세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두 국가의 상호 교류로 인한 영향이 내 유전자에도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선보일 작품을 고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특히, 이번 전시의 구성은 한국의 도자를 연상시키는 갈색 톤의 작품과 다실을 모티프로 한 작품에 초점을 맞췄다. 적확한 예시가 ‘Far Sight’ 시리즈일 테다. ‘Far Sight’ 시리즈 작업을 할 당시, 나는 아주 작은 규모의 화실에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문득 이곳의 규모가 다실과도 매우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비좁은 공간이 곧 폭발하듯 확장하는 무한한 상상력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한된 공간과 그곳에서 탄생한 상상이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Far Sight’다. 한국 전시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 작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전시명 <映遠-Far Sights>에 담긴 함의가 궁금하다. 앞서 말한 당신의 작품 시리즈 중 하나인 ‘Far Sights’의 명칭을 차용했던데.

전 세계적으로 근시안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물을 추구하는 경향에 거스르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즉각적인 것은 휘발되기 쉽다. 전시에서만큼은 조금 더 멀리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이러한 장치의 일환으로 전시명을 정할 때 항상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천천히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의미를 유추하며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단어를 채택하려 하는 편이다.


오래도록 변함이 없다는 의미인 ‘영원永遠’과도 동일한 발음으로 읽힌다는 점 또한 재밌다. 의도한 바인가?

물론이다.(웃음) 동음의 단어이지만, 상이한 뜻을 지녔기에 더 오래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영원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그림 자체만 설명하고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 또한 가리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마음에 ‘투영’되고 ‘반영’되는 것, 그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하자는 바람이 담긴 것으로 봐달라.


전시장에 들어서면 ‘Points of View-31’을 가장 처음 마주할 수 있다. 해당 작품을 전시장 중앙에 배치한 이유가 있나?

절반가량만 완성한 원 형태의 건축물을 그렸는데 도형적으로 원은 결함이 없는 완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분명 그 속에도 공동空洞과 결락欠落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을 보면 분절된 원을 지탱하는 구조물이 있다. 이 구조물이 불완전한 원을 보완하고 지지하는데, 불완전하더라도 보완과 결집의 과정을 거치는 순간 완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물론, 작품을 다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시대적 상황이나 사건에 따라서도 작품을 달리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 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 다만, 작품을 본 뒤에 현실적인 상황에서 벗어난 듯한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느낌이 오래도록 남길 바란다.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 전시 <映遠-Far Sights> 전경. 전시장 정중앙에 놓인 ‘Points of View-31’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그림 속 건축물은 특정한 목적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하는 상상에서나 존재할 법한 비정형적이고 기하학적인 외관의 건축물이다. 그리고 건축이 존재하는 시공간 또한 초현실처럼 모호하다. 이 같은 요소를 창조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 그리고 세계의 구조를 파헤치는 물리 법칙은 단 몇 퍼센트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미발견 법칙이 존재하는 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다양성’과 ‘모호함’은 내 작업을 관통하는 필수 요소다. ‘표현’이라 지칭하는 일련의 것이 소비적 경향이 있다고 느꼈다. 특히 도쿄에 있으면 다양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휘발되고 마는 다양한 요소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 나의 내면에서 ‘분류되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계속해서 몸집을 키웠다. 모호함은 내게는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정답처럼 단정적인 요소를 그리고 싶지 않다. ‘불확실성’ 또는 ‘모름’을 전달하고 모르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면적이고 모호한 요소들이 혼재된 작품이야말로 즉각적으로 소비되지 않고 오래도록 남으리라 생각한다.


건축물을 그리고자 한 계기가 있나.

공장과 주택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태어나 산을 바라보듯 건물을 올려다보고, 항상 급수탑을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존재감을 지닌 건축에 대한 동경은 늘 있었지만, 예술로서 건축을 마주하게 된 것은 라이오넬 파이닝거와 찰스 실러의 작품을 접하면서부터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내가 동경하던 풍경과 건물이 그림의 요소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지역마다 랜드마크가 존재하듯,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서 가상의 거점을 만들고자 결정한 데는 이러한 요소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모호하다는 것은 도리어 하염없이 커질 수 있는 ‘확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지표면과 하늘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지평선을 그리는 것처럼 하늘과 땅, 나아가 지구와 우주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무한히 커지는 당신의 작품 속 세계처럼 말이다. 어떠한 마음으로 ‘그리기’라는 행위에 임하나?

단지 허구적인 것만 바라보고 골몰하지 않는다. 가상의 거점을 그린다고 해서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그저 좌시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내가 현존하고 있는 세계의 면면을 명민하게 관찰하며 이를 나만의 미학으로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도 거듭하고 있다.


“회화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세계이기도 하지만, 활력을 주는 세계가 되었으면 한다”라는 당신의 말처럼, 미완성의 건축물은 얼핏 디스토피아를 보는 듯하지만, 건축물을 감싸는 식물과 유영하는 구름 등을 보면 움트는 생명력과 활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확실히 존재한다. 당신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사물을 분류해 이해한다는 의식이 없는 세상이지 않을까.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가득한 세계에서 분류할 수 없는 것이 주는 사유의 여지는 내면의 깊이감을 길러주는 좋은 원천이 된다. 쉬이 판단할 수 없고 분류하기 힘든 모호한 요소와 즉각적이고도 직관적인 요소가 적절히 배합된 세계가 인간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이상향인 듯하다.



Minoru Nomata, ‘Ascending Descending-8’, 2018


일본 다실茶室에서 영감을 받아 부드러운 갈색 톤의 콩테 크레용으로 표현한 ‘Far Sight’ 시리즈나 상징주의 화가 페르낭 크노프에게 영감을 받은 ‘Eastbound’ 등을 보면 영감의 원천이 다양해 보인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항상 과거(과거의 사건, 과거에 좋아했던 것), 현재(현재 의식의 중심에 있는 것), 미래(관심 있거나 걱정되는 것)라는 기준에 따라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다. 새롭게 맞닥뜨리는 일련의 사건이 이러한 요소들 사이사이에 생겨나면 내게 ‘영감’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생겨나지만, 정작 나의 붓을 들게 만드는 것들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늘 달라지는 듯하다.


당신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반사, 수정, 적응, 반등. 이 4가지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세계를 나만의 시각으로 반사해 나의 그림 언어로 수정, 치환하고 다시 현실 세계에 적응해 붓을 들고 미노루 노마타라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적층해가는 것. 지금껏 붓을 들 힘을 주는 건 이 과정의 반복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평생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지금의 나를, 그리고 나의 어느 부분까지를 예술가라 봐야 할지는 사실 모르겠다. 또, 사회가 어느 정도로 예술가를 필요로 하는지도 여전히 내게는 의문이다. 다만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과 그들이 창조해내는 문화적인 흐름이 지금 현존하는 예술가와 예술의 가치를 정의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품은 일평생의 꿈이 있다면.

단 하나다. 내게 남은 삶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캔버스와 마주하는 것.



COOPERATION  화이트 큐브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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