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4년 1월호

‘디라이트’ 대표 조원희, 법률 서비스도 젊어질 수 있다

로펌 하면 떠오르는 보수적인 이미지를 깨고 자신만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인물이 있다. 스타트업과 글로벌 시장에 특화된 법률 서비스 제공으로 젊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법무법인 디라이트 조원희 대표의 이야기는 이렇다.

GUEST EDITOR 이기원 PHOTOGRAPHER 이우경

조원희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서 16년간 변호사로 일하며 기술, 지적재산권, 엔터테인먼트 등 업무를 담당했다. 지난 2017년 법무법인 디라이트 설립 후 수많은 스타트업의 법률 자문을 맡아왔다. ‘로펌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매년 매출의 약 5%를 공익사업에 투자하며 자신의 비전을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법조인 출신, 특히 법무법인의 대표라는 직함을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보수적인, 무거운, 경직된, 거만한’ 같은 형용사들. 디라이트의 조원희 대표는 좀 다르다. 친근한 말투와 개방적인 태도, 캐주얼한 옷차림 등은 일반적인 스타트업 대표의 이미지 그 자체다. 실제로 디라이트는 스타트업을 주 고객으로 삼는 법무법인이다.

“오늘은 촬영이라 좀 힘줘서 입고 왔는데 평소엔 이보다 훨씬 캐주얼한 차림을 선호합니다. 원래 성향이 좀 자유로운 편이에요. 주 고객층이 젊은 세대이다 보니 그런 성향이 더 발현되는 것 같네요.” 서울대 문리대학 89학번. 사법고시 합격 후 국내 3대 로펌 중 하나라는 태평양에서 변호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의 전문 분야는 IT 기술, 지적재산권, 엔터테인먼트 등이었다. 요즘 가장 중요해진 분야다. “당시에는 그렇게 유망한 분야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개인적인 관심이 많은 분야였어요. 지적재산권 위주의 일을 하고 싶어서 제가 직접 자원했죠. 디라이트도 그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설립된 셈입니다.”

신입 변호사 시절부터 선배들에게 “옷 좀 점잖게 입고 다녀라”는 조언을 듣곤 했다는 그는 태평양에서 16년을 일하고 나와 창업을 결심했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나가는 거냐?’고. 물론 큰 조직이 주는 장점은 많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더 넓히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 조직이 족쇄가 될 수 있다. 조원희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자신의 일에서 조금 더 커다란 의미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디라이트를 설립한 건 2017년이다. 변호사 4명으로 시작한 회사의 첫해 매출은 3억 원 정도였다. 6년이 지난 지금 디라이트는 변호사 38명, 총 직원 60명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70억 원을 넘었다. 스타트업과 기술 벤처에 특화된 법무법인으로는 대견한 숫자다. 때마침 불어온 스타트업 투자 열풍과 거기에 맞춤 대응한 경영전략의 결과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경기 침체에 대한 위기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스타트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려움을 느끼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국내외 투자 금액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고, 실제로 저희가 상담하는 내용도 달라졌어요. 사업장을 폐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달 직원들 급여를 못 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스타트업 윈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디라이트는 최근 흥미로운 소식을 발표했다. 아시아 전역으로 사무소를 확장하고 현지 밀착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아시아 프랙티스 그룹Asia Practice Group’ 출범이 그것이다. 아시아 각국에 진출하고 싶은 기업들을 위해 베트남, 미얀마, 싱가포르, 태국 등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국가마다 전문성을 둔 인력을 고용해 현지에 맞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을 계획이다.

“지금은 스타트업이 얼어붙은 시기라고 하지만 경기라는 건 결국 순환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어려우면 2,3년 뒤에는 좋아질 때가 있을 거고요. 글로벌 확장은 모든 스타트업에 필수적인 옵션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태평양에서 해외 업무를 많이 해왔다 보니 그런 경험을 잘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라이트만의 독특한 점은 공익에 대한 헌신이다. 설립 초기부터 전체 매출의 5%를 장애인을 위한 기술 공모전인 디테크D-TECH, 공익 법률 지원 프로그램인 타임뱅크 등 4가지 공익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5%가 아닌 매출의 5%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 투자 비용을 차라리 직원들 보너스로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싶어 작년에는 투자금을 5%에서 4%로 조금 줄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익사업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는 않는다.

“공익에 대한 투자는 오래전부터 했던 생각이에요. 디라이트를 ‘사회를 변화시키는 공동체’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런 투자가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익 투자를 위해서는 충분한 성장과 수익이 보장돼야 하는데,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기업의 공익 활동이 사회와 기업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문득 6년간 수많은 스타트업의 자문을 맡았던 그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다. 요즘 스타트업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AI다. 공교롭게도 AI에게 가장 위협받을 업종은 변호사와 의사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AI 때문에 수임에 실패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어요. 하지만 AI로 인해 새롭게 생기는 법률 시장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일의 디테일에서 AI가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누가 AI를 잘 쓰느냐가 변호사의 성과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2023년 디라이트의 워크숍 현장. 공익 업무의 방향성 등이 주요한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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