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THE MOST PARISIAN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데커레이터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디렉터인 마랑 몽타구Marin Montagut. 누구보다 파리라는 도시와 문화를 사랑하는 그가 자신의 집으로 <럭셔리>를 초대했다. 공간마다 빼곡히 자리한 빈티지 오브제와 마랑 몽타구 특유의 아기자기한 데커레이션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아틀리에 같은 집을 공개한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로메인 리카드Romain Ricard

마랑 몽타구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렉터다. 파리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껴 도시 곳곳에 자리한 아름다움을 포착해 이를 일상의 물건에 그려내고 있다. 피에르 프레이, 파리 리츠 호텔, 로저 비비에, 딥티크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3년 전, 새로운 집으로 이주하면서 영감이 가득한 집에서의 일상을 만끽하고 있다.



‘가장 파리지앵다운 아티스트’. 마랑 몽타구를 설명할 때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다. 빈티지 진과 블루 워크 재킷 그리고 앞섶을 풀어헤친 마리니에르 셔츠를 데일리 룩으로 즐겨 입는 그의 모습만 보더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너무도 당연하게 파리에서 평생을 살아왔을 법한 외양이지만 그는 사실 남프랑스에 위치한 툴루즈에서 태어났다. 앤티크 숍을 운영하던 부모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주 접했던 벨 에포크 스타일의 오브제에 매료됐고, 자연스레 파리 이주의 꿈을 품게 됐다.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진로를 정한 뒤 드로잉의 기초를 쌓기 위해 런던으로 넘어가 예술 대학 세인트 센트럴 마틴에서 공부한 그는 졸업 후 마침내 파리로 이주해 그곳에서의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응용미술을 전공한 마랑 몽타구는 생계를 위해 영화미술, 데커레이션 등 미적 감각을 십분 펼칠 수 있는 다방면에서 기량을 쌓아왔다. 몇 년간 탄탄하게 공력을 다지던 그에게 파리지앵 아티스트라는 수식이 달린 결정적 계기는 바로, 파리 곳곳에 위치한 공예 아틀리에와 부티크를 자신의 일러스트로 도식화한 가이드 맵 북을 발간한 이후부터다. 파리에 머물며 도시의 건축과 문화, 파리지앵의 라이프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이 책을 ‘메르시Merci’와 ‘콜레트Colette’ 등 파리의 대형 부티크에 판매한 이후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의 경력은 화려하게 만개한다.

이 시기에 그는 뤽상부르 공원의 세이지 그린 의자, 나무 유화 팔레트, 타로 카드 등을 소재로 팽 드 시에클fin de siècle(세기말)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크 스카프나 도자기에 인쇄해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마랑 몽타구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이프스타일 부티크 브랜드 ‘마랑 몽타구’를 론칭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꽃잎 장식 유리그릇, 종이 디오라마, 시크릿 박스 등 일러스트레이션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다방면의 작업을 대중에 선보이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입지를 탄탄히 굳혀가고 있다.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고가구와 오브제는 마랑 몽타구에게 영감을 선물하는 귀중한 요소다.


충만한 파리 라이프를 영위하던 그에게 생긴 또 하나의 꿈은 자신의 로망을 오롯하게 구현할 수 있는 집을 꾸리는 것. 2021년 파리에 위치한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박물관과 아틀리에를 소개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소스 북 출간을 위해 파리 전역을 돌아다니며 작업하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도시의 동쪽에 위치한 가구 회사 ‘수브리에Soubrier’ 소유의 복층 주택을 방문한다. 가구를 만드는 작업실로 이용하던 곳이었지만 직전 사용자에 의해 주거 공간으로 일부 개조된 공간을 보자마자 마랑 몽타구는 이곳이 자신의 꿈을 완벽히 실현할 수 있는 터전임을 직감했다. 포도 덩굴이 무성한 청색 나무문과 마호가니로 만든 벽난로, 아늑한 다락방 등 빈티지한 요소가 공간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 단번에 이사를 결정한 그는 3년의 시간 동안 차근차근 손보며 그간 쌓아온 데커레이션 공력을 이곳에 아낌없이 발휘해 지금의 집을 완성했다. 올해로 3년째 이곳에서 머무는 중인 그는 지금 이 공간에서 보내는 매 순간이 자신에게 무수한 영감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계단을 타고 오르는 순간에도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크기의 액자를 벽에 걸어 두어 리듬감을 살렸다.

테라코타 타일과 톤온톤으로 인테리어한 출입구 역시 눈길이 간다.



출간 당시 자료 조사차 들렀던 곳이 지금, 당신의 집이 됐다. 공간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집이 위치한 150구는 파리 내에서도 동쪽, 바스티유 근처에 위치한 지역이자 비교적 시골처럼 한적한 곳이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당시 집 주변으로 골목마다 가구를 만드는 공장이나 작업실이 자리해 예술적인 영감이 넘쳐흐르는 것만 같았다. 어떠한 도시의 소음도 없이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리는 이곳이라면 내게 오롯한 쉼이 있는 집을 꾸리기에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 자리한 청록색 문을 보자마자 외부로부터 완벽히 분리된 나만의 피난처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시골 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어떤 모습으로 집이 구현되기를 바랐나?

이곳에서 머문 시간은 비록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훨씬 오래전부터 거주한 느낌이 들도록 꾸미고 싶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어느 한적한 도시 외곽에 자리한 별장의 이미지였다. 빈티지 느낌이 나는 장식적인 패턴의 벽,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목재와 오브제가 자리한 그런 공간의 모습 말이다.


인테리어에서 고심한 부분이 있다면?

머릿속으로 공간의 이미지를 그린 다음, 스스로에게 ‘어떻게 공간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했다. 고심 끝에 내린 답은 다양한 패턴과 색의 월페이퍼를 사용해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거실에서 주방으로 넘어갈 때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집에 다른 무드의 벽지를 사용한다는 것이 다소 도전적일 수 있겠으나, 이곳은 나의 상상이 현실화되는 공간이지 않겠나. 도전을 감행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건 ‘페로 & 볼 Farrow & Ball’의 제품이었다. 벽난로가 위치한 거실에는 따뜻한 인상을 주되 어느 정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옐로 스트라이프 패턴을 두른 벽지를 바르는가 하면, 침실이나 다락방에는 보다 과감한 플로럴 패턴의 벽지로 포인트를 줬다.




마호가니로 만든 벽난로가 있는 거실. 옐로 스트라이프 패턴의 벽지와 기하학적인 문양의 텍스타일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마랑 몽타구는 하루 중 벽난로 앞 의자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복도 사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여러 아트 북과 소품을 둔 선반을 비치했다.



마랑 몽타구의 집 곳곳에는 다양한 소품을 매치해 데커레이션 감각을 발휘한 뷰 포인트가 많다. 노란 플로럴 벽지와 선명한 색 대비 효과를 내는

푸른색 빈티지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맥시멀 하우스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집을 에워싸고 있는 많은 가구와 오브제에도 눈길이 간다.

작은 앤티크 숍을 운영하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 시절부터 빈티지한 가구나 도자 같은 시간이 담긴 기물을 많이 접해왔다. 기물에 담긴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걸 말해준다. 세심한 소재 선정은 물론 오래도록 머릿속에 그려온 모습을 구현해내기 위해 작가와 장인이 치열하게 쏟아부은 노력과 땀 같은 이야기들은 나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브랜드의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나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모든 기물은 내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내가 이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면 내면의 열정이 들끓는다. 집에 머무는 내내 나는 창작의 열정으로 가득한 시간을 영위하고 싶었고, 그 결과 이렇게 많은 물건이 나와 함께 매일을 보내게 됐다.


집에서 특히 애정하는 공간이 있다면 알려달라.

사실 내 손으로 일궈낸 집인 만큼 모든 공간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지만, 마호가니로 만든 벽난로가 자리한 거실이 제일 만족스럽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이곳이다. 바쁜 하루가 끝나고 벽난로 앞에 둔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마무리하면 매일을 치열하게 살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안식처가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작년 말, 서울 TTRS 성수에서 마랑 몽타구의 론칭 행사가 열렸다. 파리에 위치한 마랑 몽타구 부티크를 고스란히 한국에 옮겨온 것 같은 팝업 부스가 인상적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팝업 행사는 프랑스 이외의 국가에서 열리는 첫 공식 론칭 행사라 들었는데, 소감이 어떤가?

한국, 특히 서울은 내가 사랑하는 도시다. 무엇보다 나의 워크숍 매니저가 한국인이어서, 그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프랑스가 아닌 타 국가에서의 첫 론칭 행사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점이 내게는 무척이나 뜻깊다.




마랑 몽타구의 작업실 공간. 작업을 하다가도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창을 크게 냈다.

그는 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에서 작업의 영감을 자주 받는다고도 언급했다.



거실 옆에 위치한 주방 공간. 목제 가구와 벨 에포크 스타일의 파티션이 주방에 우아함을 불어넣는다. 그는 지인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즐긴다.


실제로 마주한 서울은 어땠나?

무척이나 북적이고 활기로 가득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서울은 거리 곳곳마다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변화에 열려 있고 새로운 시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도시의 모습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마랑 몽타구’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브랜드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파리를 방문해본 이들, 혹은 파리의 매력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 모두에게 나의 상상의 총체이자 내 이름을 내걸고 만든 마랑 몽타구의 제품이 마치 한낮의 꿈을 꾸듯 파리를 여행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 마랑 몽타구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많은 영감을 선물하는 여행의 동반자가 될 준비를 마쳤다.


마치 시골 별장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마랑 몽타구의 집. 오묘한 깊이감이 느껴지는 청색 대문을 비롯해

컬러풀한 요소가 다분한 그의 집은 그가 오래도록 꿈꿔왔던 상상의 총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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