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CONTEMPORARY OPERA

예나 지금이나 오페라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와 극작가, 무대미술가와 성악가들이 힘을 모으는 ‘최고의 종합예술’ 장르다. 300~400년 역사의 고전 오페라 사이에서 전 세계 오페라 축제와 극장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재상연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주목받는 현대 오페라 작품들을 소개한다.

GUEST EDITOR 박지혜

Photo: Cory Weaver/San Francisco Opera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                    공동작곡가 마이클 아벨스Michael Abels.


OMAR

세계 초연 | 미국 스폴레토 페스티벌 , 2022년 5월 7일

<오마르>는 스폴레토 페스티벌과 디트로이트 오페라단에서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2022년 초연됐고, 2023년에는 퓰리처상 오페라 부문을 수상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작품을 가리켜 “압도적인 업적Sweeping achievement”이라는 찬사를 남겼으며, 미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모으며 순회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의 큰 주제인 ‘노예제도’, ‘무슬림 디아스포라’에 대한 성찰이 미국인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 이 작품은 200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미국에 노예로 끌려와 수난을 겪은 이슬람 학자 오마르 이븐 사이드Omar Ibn Said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는 실존 인물로 19세기에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 살았으며, 종교적 박해와 차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 결국 1831년 아랍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긴다. 대본과 음악까지 맡아 이 작품을 완성한 주인공은 리아논 기든스Rhiannon Giddens. 그는 미국의 포크 음악에 뿌리를 둔 음악가로, 그래미상과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했으며, 미국의 음악적 역사를 재해석하고 되살려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서아프리카 전통 악기 코라 연주나 블루그래스, 포크, 재즈 등의 다양한 음악적 언어를 하나로 결합해냈다는 찬사를 이끌었다. 더불어 주목할 것은 작품의 주제 의식을 인상적으로 시각화한 무대미술이다.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스토퍼 마이어스Christopher Myers는 여러 가지 아프리카 언어와 아랍어를 의상과 무대 위의 모든 직물에 프린트해, 작품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투영해냈다. 다인종이 얽혀 형성된 미국의 근현대사, 문화의 멜팅 포트로서 미국의 뿌리를 되짚어볼 수 있는 작품. sfopera.com




작곡가 가브리엘라 레나 프랭크.


EL ÚLTIMO SUEÑO DE FRIDA Y DIEGO 

세계 초연 | 샌디에이고 시빅 시어터, 2022년 10월 29일

미국 샌디에이고 오페라단,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포스워스 오페라단 등이 공동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2022년 초연 이래 미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유명 러브 스토리인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나 뮤지컬 등으로 수없이 각색되었던 그들의 이야기와 이 오페라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가 프리다의 사후에서 시작된다는 점.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의 구분 아래 리베라가 프리다에게 다시 한번 용서를 빌며 그녀와 함께 ‘영원’을 희구한다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순수하게 시각적인 차원에서 끝없는 기쁨을 주는 작품이다”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리뷰처럼, 디에고와 프리다가 생전에 남긴 수많은 그림들은 작품 속 의상과 배경으로 재해석되어 황홀한 시각적 환영을 안긴다. 그들의 삶 자체가 시대를 초월하는 ‘러브 스토리’로서 이야기의 힘을 가진다는 점, 두 예술가가 남긴 작품이 강렬한 시각적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 역시 이 작품에 롱런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이 작품이 무엇보다 오페라 장르로서 우뚝 서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작곡가인 가브리엘라 레나 프랭크Gabriela Lena Frank의 역량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로부터 새로운 관현악곡 작곡을 위촉받는 명망 있는 작곡가이며, 주로 남아메리카의 민속음악을 탐구하는 음악 인류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 역시 라틴아메리카 민속음악에 대한 그의 연구를 고전적인 서양음악과 결합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리스신화 속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탄탄한 대본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극작가 닐로 크루스Nilo Cruz가 맡았다. laopera.org




작곡가 베아트 푸러.


VIOLETTER SCHNEE 

세계 초연 |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2019년 1월 13일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베아트 푸러Beat Furrer는 현대 작곡가로서 보기 드물게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작곡가다. 베른하르트 랑Bernhard Lang, 하인츠 카를 그루버Heinz Karl Gruber와 함께 3세대 빈 악파로 불리며 꾸준히 관현악곡과 실내악곡을 발표하고 있고, 오페라 역시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 2019년 초연된 <피올레테 슈네>는 그의 일곱 번째 오페라 작품이자 최근작으로, 베를린 국립 오페라단이 의뢰해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소로킨Vladimir Sorokin이 남긴 과거의 소설을 오스트리아 시인 헨들 클라우스Händl Klaus가 각색해 제작되었다. 5명의 등장인물과 엑스트라만이 단출하게 등장하는 이 작품은 끊임없는 눈으로 종말 위기에 놓인 상황을 그려내며, 생태학적 절망에 놓인 인간을 비춘다. 오페라보다는 차라리 연극의 스케일에 가까운 이 작품을 위해, 베아트 푸러는 압도하는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상호 독백과 수다, 감정 상태를 비출 수 있는 섬세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스산한 눈보라 소리를 뚫고 이어지는 이들의 시적인 독백과 노래는 오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문학과 음악의 완벽한 앙상블을 선사하며 관객을 매료한다. 음악과 대사 외에 역시 눈여겨볼 것은 오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대미술적 요소다. 특히 초반부에 등장하는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Hunters in the Snow’(1565)은, 눈 속에 갇혀 우왕좌왕하는 극 속의 주인공들과도 묘하게 오버랩되며 스산한 분위기를 더한다.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4월과 5월에 각각 두 차례씩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staatsoper-berlin.de




작곡가 알렉산더 라스카토프.


ANIMAL FARM

세계 초연 |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극장, 2023년 3월 3일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권력’과 ‘계급’ 구조에 대한 거의 완벽한 비유로 영미권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고전이다. 그러나 이 오페라가 탄생하게 된 스토리에는 ‘명작’의 재해석 그 이상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언젠가는 오페라로 만들겠다”는 이탈리아 감독 다미아노 미키엘레토Damiano Michieletto의 오랜 버킷 리스트가 러시아 출신 작곡가 알렉산더 라스카토프Alexander Raskatov 를 만남으로 실현된 것. 구소련에서 금서였던 <동물 농장>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던 라스카토프는 만년의 나이에 만난 이 작품에 러시아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한그만의 암시를 투영하며, 좀 더 심층적인 해석을 불어넣었다. 날카로운 메시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돼지들의 반란과 투쟁’을 얼마나 감각적인 비주얼로 풀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그 역할을 맡은 것은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를 섭렵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무대 디자이너 파올로 판틴Paolo Fantin이다. 그는 무대 하늘 중앙에 큰 네온사인을 설치하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같은 구호를 띄웠다. 그가 만든 마법으로 인해 고전적인 이야기에 마치 ‘현대미술’ 같은 시니컬한 분위기가 더해졌다. 6개의 타악기, 2개의 하프, 색소폰, 전기기타, 심벌즈 등으로 구성된 네덜란드 실내악 오케스트라, 뉴 암스테르담 청소년 합창단의 음악 역시 현대 오페라로서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평이다. 알렉산더 라스카토프가 쇼스타코비치의 아내인 일리나에게 헌정한다고 밝힌 이 작품은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극장에서의 세계 초연 이래 오는 2월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operaballet.nl, wiener-staatsoper.at




작곡가 미에치스와프 베인베르크.


THE PASSENGER

세계 초연 | 브레겐츠 페스티벌, 2010년 7월 21일

다분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여러 부침 끝에 2010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세계 초연되었다. 원전은 아우슈비츠와 라벤스브루크 수용소의 생존자인 폴란드 기자이자 소설가 조피아 포스미시Zofia Posmysz가 남긴 자전적 소설 <더 패신저>(1962)다.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와 라디오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제작돼 널리 알려졌지만, 이미 완성되어 있던 오페라 작품은 1968년 소련 정부에 의해 초연이 제지당해 약 40년 후에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약 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작품이 다시금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데는 역시 ‘원전’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메시지와 드라마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오페라는 브라질로 향하는 대서양 횡단 크루즈가 공간적 배경으로, 그 안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두 여인을 비춘다. 수용소 당시 한 명은 유대인 죄수, 한 명은 교도관이었던 이 여인들의 관계와 감정이 포로 수용소와 호화 크루즈라는 상반된 공간을 통해 극화되며 소용돌이친다. 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작곡가 미에치스와프 베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가 1930년대 소련으로 탈출한 유대인 작곡가라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는 인물들의 내면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바흐의 ‘D단조 샤콘느’ 같은 고전음악을 차용하는 한편, 찌그러지는 관악기 소리나 강렬한 오케스트레이션 등을 사용해 마법처럼 장면을 전환한다. ‘유대인 수용소’와 ‘호화 유람선’, 두 시간대 사이의 평행을 강조하기 위해 두 층의 구조로 만든 무대장치 역시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한다. 영국 국립오페라극장, 뉴욕 링컨센터 등 세계 주요 극장에서 꾸준히 상연되고 있으며, 2024년 2월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에서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한 달간 상연될 예정이다. teatroreal.es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


INNOCENCE

세계 초연 |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 2021년 7월 3일

이 작품은 ‘현대 오페라 작곡의 어머니’라 불리는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Kaija Saariaho의 마지막 작품으로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세상을 뜬 그는 주목할 만한 연극적 감수성과 친밀한 사운드 스케이프로 현대 오페라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현대 오페라의 여러 주요작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이노센스>는 이 시대, 국제적으로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총기 난사’ 사건을 그리는 심리 스릴러다. 한 국제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인생의 주요 기점마다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연루자들의 심리,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경계가 없는 광범위한 고통의 여파를 다룬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국적이 제각기 다른 국제학교 학생들의 상호작용을 드러내기 위해 각 캐릭터들에게 자국어로 말하거나 노래를 하는 구조를 띤다는 점. 이들의 독특한 목소리를 실감나게 전하기 위해 카이야 사리아호는 핀란드 민요뿐 아니라, 스프레히게장Sprechgesang(말과 노래를 결합한 보컬)을 사용해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극본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 소피 옥사넨Sofi Oksanen이 맡았다. 노르딕 카운슬 문학상 등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첫 오페라 작업으로, ‘핀란드’의 가장 빼어난 작곡가와 소설가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도 유럽 문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뉴요커>는 이 작품을 가리켜 “4세기 동안 ‘죽음’으로부터 예술을 만들어온 오페라가 새로운 종류의 공포를 기록한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 이 시대에 유효한 주제에 대해, 과거에 대한 향수나 차용 없는 음악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진정한 ‘컨템퍼러리 오페라’의 면모를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operaballet.nl, sfopera.com




작곡가 테런스 블랜처드.


FIRE SHUT UP MY BONES 

세계 초연 | 세인트루이스 오페라극장, 2019년 6월 15일

‘뼈에 사무치는 화’라는 뜻을 지닌 이 작품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단숨에 미국 내의 오페라극장을 점령했다. 미국 사회의 거대한 축을 이루는 흑인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오페라라는 고전적인 장르 안에 전면적이며, 또 공식적으로 등장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2021/2022 시즌 미국 오페라의 최고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되면서, 작곡을 맡은 테런스 블랜처드Terence Blanchard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38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작곡가로 기록되었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이 있다면 ‘흑인의, 흑인을 위한, 흑인에 의한’ 작품이라는 점일 것이다. 작곡가와 대본, 원작, 안무, 연출, 배역, 합창, 무용 등의 스태프가 모두 흑인으로 구성되었으며, 음악 또한 ‘재즈’를 기반으로 한다. 작품 탄생의 주역은 역시, 그래미상 수상에 빛나는 트럼페티스트이자 작곡가 테런스 블랜처드라 할 수 있다. 그가 <뉴욕 타임스>의 주필 찰스 M. 블로Charles M.Blow가 쓴 어린 시절 회고록을 읽고 영감받아, 이를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것. 이야기는 열악하고 거친 흑인 사회에서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소외받고 내적 갈등을 겪었던 한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주축으로 한다. 주인공의 외로움과 성장 과정이 과거 미국 흑인 사회의 아련한 향수와 함께 버무려지며, 아름다운 재즈 음악과 함께 형상화된다. 여기에 안무가 커밀 브라운Camille brown이 만들어낸 박력 있는 군무가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한다.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승화된 테런스 블랜처드의 음악이 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어린 시절의 마이클 잭슨을 연상케 한다는 평을 받는 아역 윌터 루셀 3세Walter Russell III, 여주인공 에인절 블루Angle Blue의 가창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metoper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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