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아이디어 뮤지엄, 미술관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

리움미술관이 샤넬 ‘샤넬 컬처 펀드’의 후원을 받아 시작한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이 지난 12월 1일부터 <생태적 전환: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라는 제목과 함께 막을 올렸다.

EDITOR 정송

토마스 사라세노,막시밀리아노 라이나, ‘에어로센을 향해 파차와 함께 날다’, 2017~2023 © Studio Tomás Saraceno


리움미술관은 그동안 미술관의 경계를 확장하는 퍼블릭 프로그램을 선보여왔다. 올해부터는 3년간 브랜드 샤넬의 샤넬 컬처 펀드 후원과 함께 새로운 중장기 프로그램인 아이디어 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생태적 전환’을 화두로 내걸어 <생태적 전환: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라는 제목 아래 국내외 철학자, 사회학자, 영장류 학자, 건축가, 큐레이터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12월 1일부터 3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것으로 그 막을 올렸다. 12월 1일부터 24일까지는 기후 위기와 불평등, 기후 식민주의, 포스트 휴매니티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상 작품 10편을 무료로 상영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함께 재고해봐야 할 주제에 관한 담론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우리가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 관람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IDEAMUSEUM

아이디어 뮤지엄은 예술적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아이디어Idea’라는 단어에 미술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포용성Inclusivity, 다양성Diversity, 평등Equality, 그리고 접근성Access이란 의미를 담아 만든 프로그램명이다. 이를 통해 예술로 좀 더 나은 세상을 그릴 수 있도록 담론의 자리를 마련하는 미술관의 역할에 집중한다. 리움미술관의 아이디어 뮤지엄 프로그램은 특히 현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이 동시대 현안에 대한 ‘사유’와 ‘논의’의 장소로서 역할을 확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 간 연구 교류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아이디어 뮤지엄 프로그램을 위해 현대미술 작가뿐만 아니라 철학자, 사회학자, 영장류 학자, 건축가, 큐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쉽사리 만나지 못하는 저명한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태적 전환’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관해 다각도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SYMPOSIUM

12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린 심포지엄은 ‘생태적 전환’이라는 대주제 아래 기후 위기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현시대 우리 삶을 영위하는 데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조건 중 하나로 ‘환경보호’가 대두된 지는 오래됐다. 기후 위기에 대해 힘주어 말하는 많은 환경 단체에서 미술관과 작품을 매개로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해온 뉴스를 대부분 접해보았을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러한 급진적인 방식 대신 다종 간의 서사와 연대 가능성, 논의 중인 생태 담론과 용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미술관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먼저 첫날인 12월 1일 강연에서는 철학자 에마누엘레 코치아Emanuele Coccia가 강연대에 올랐다. ‘태어남과 자연’을 주제로 삼은 그는 생의 집합체인 자연을 강조하며 생태 위기에 맞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타자로 상정된 지구와 맺는 관계 및 생명의 순환에 주목했다. 강연을 마친 후에는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의 작품 ‘에어로센을 향해 파차와 함께 날다’를 시청했다. 작품은 리튬 채굴로 인해 착취로 얼룩진 아르헨티나 원주민 커뮤니티와 2017년부터 현재까지 6년 동안 이어온 협업을 담았다. 이어진 작가와의 화상 토크에서 작가는 생태 사회적 정의를 위해 연대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심포지엄 이튿날 강연에는 <포스트휴매니티Posthumanities> 시리즈를 창간한 편집자 케리 울프Cary Wolfe가 등장해 비인간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법과 정책에 대해서 설파했다. 또 건축가이자 SoA 큐레이토리얼 디렉터인 김효은이 환경 위기와 인구 감소로 인한 도시 소멸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공간 및 시각 디자이너인 페이페이 저우Feifei Zhou와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도 각각 왜 야생이 중요한지 살펴보며 오늘날의 산업 농업 시스템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고, 재야생화의 기본 개념과 논의 추세를 돌아봤다. 디자이너이자 영화감독인 리엄 영Liam Young의 ‘행성 도시’란 작품의 스토리텔링 퍼포먼스가 이날 심포지엄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12월 3일에는 철학자 사이토 고헤이Saito Kohei가 기후 위기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불가능한 개념을 재고하며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한 담론을 제시했으며,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인 김선정 역시 합세해 ‘2012년 비무장지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의 협력 및 자연 생태 연구 프로젝트 과정을 공유했다. 한편 2023년 5월 아트선재센터에서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약한 추스 마르티네스Chuz Martinez 큐레이터 역시 이날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어떻게 기후 위기와 생태적 전환을 논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안무가 마르텐 스퐁베리Mrten Spngberg가 우리 모두가 마주한 위기에 대한 공동의 도전 과제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짧고 굵은 3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FILM SCREENING

심포지엄은 총 3일 동안 집중적으로 열렸지만 기후 재난, 불평등, 기후 식민주의, 탈성장, 재야생화, 종 다양성, 포스트휴매니티 등을 다룬 영상 작품 10편은 12월 24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내용 중 일부는 많은 대중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어려운 개념이다. 예술의 역할은 이를 좀 더 직간접적으로 사람들이 알아채고, 이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보도록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로리 필그림Rory Pilgrim, 리엄 영, 박선민, 소피아 알마리아Sophia Al Maria, 요나스 스탈Jonas Staal, 이사도라 네베스 마르케스Isadora Neves Marques, 주마나 만나Jumana Manna, 차재민, 카라빙 필름 컬렉티브Karrabing Film Collective, 토마스 사라세노 & 막시밀리아노 라이나Maximiliano Laina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연구 작업을 펼쳐 보이며 24일 동안 진행된 필름 스크리닝 시간을 통해 예술가와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시간을 선사했다.


CHANEL CULTURE FUND

한편 샤넬 컬처 펀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예술에 헌신해온 샤넬 하우스의 가치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패션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 걸쳐 전 세계 예술가를 지원하며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물심양면으로 힘쓰고 있다. 그동안 런던 국립초상화박물관과 협력 파트너를 맺고 여성에 좀 더 집중한 프로젝트를 펼치거나,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어셈블Assemble’ 프로그램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를 모색하고, 상하이 당대미술관과 함께 ‘넥스트 컬처 프로듀서 프로그램Next Culture Producer Programme’을 통해 중국 내 공예 및 건축 분야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 세계 예술계의 성장을 도왔다. 이밖에도 차세대 예술인을 후원하는 수상 제도인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CHANEL Next Prize’를 통해 음악, 댄스, 퍼포먼스, 영화, 비주얼 아트, 디지털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10명의 아티스트를 선정해 지원하면서 앞으로 이들이 점령할 미래를 응원한다.

리움미술관과 함께 중장기 프로젝트로 마련된 아이디어 뮤지엄은 향후 3년간 ‘생태적 전환’이란 주제 안에서 다양한 삶의 조건과 패러다임의 변화 지점들을 모색해나갈 계획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올해 온라인 전용 플랫폼을 오픈하며 총서 또한 발간해 더욱 많은 사람이 리움미술관과 샤넬 컬처 펀드가 함께 만들어가는 좀 더 나은 내일을 손쉽게 살펴볼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우리가 서울 하늘 아래 세계적인 학자들을 만나겠는가. 이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결과를 단 하루, 몇 시간에 소화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이들이 제기한 문제들, 아이디어를 단 며칠이라도 고민해본다면, 이들이 함께 손잡고 도모하는 아이디어 뮤지엄 프로젝트의 목적을 작게나마 이룬 셈이 아닐까.


심포지엄 첫날 축사를 하고 있는 샤넬 아트 & 컬처 글로벌 총괄 야나 필Yana Peel.

아이디어 뮤지엄 심포지엄 첫날 인사말을 전하는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



심포지엄 둘째 날 강연을 하고 있는 케리 울프의 모습.



심포지엄 첫날 기조 강연을 하는 철학자 에마누엘레 코치아.



COOPERATION  샤넬,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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