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2023 ART JAKARTA

동남아시아의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 자카르타’. 2023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어떠한 새로운 것들이 펼쳐졌는지 직접 방문해서 살펴본 아트 자카르타의 면면을 전한다. 이를 이끌며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열정을 불태운 톰 탄디오Tom Tandio 디렉터와 나눈 진솔한 이야기도 담았다.

EDITOR 정송


오랜 시간 동안 예술 영역에서 힘의 추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국가에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세계적으로 동서양 국가가 가진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지면서 예술 영역에도 많은 지각변동이 일었다. 한국, 일본, 중국으로 대표할 수 있는 아시아 작가들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각국의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등이 생겨나며 미술 시장도 확대되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예술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다. 몇몇 태국,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 작가가 영상, 설치, 다원 예술 등 그간 볼 수 없던 급진적이면서도 어센틱한 주제의 작품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눈도장을 찍었으나, 그들 국가의 예술 신은 다른 앞서나간 극동아시아 및 서양 국가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 와중에 이러한 인식을 타파하는 데 일조하고 국가가 가진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예술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행사가 매년 인도네시아를 수놓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다. 벌써 15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열려왔지만, ‘국제적’인 행사로 발돋움해 국내외 컬렉터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여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 시작은 바로 2019년 톰 탄디오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공들여 바꿔놓은 2023 아트 자카르타는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시아기니 라트나 울란Syagini Ratna Wulan이 선보인 대형 설치 작품 ‘Memory Mirror Palace’.


IN THE PAST

현재의 아트 자카르타는 2009년 시작된 ‘바자 아트 자카르타’를 전신으로 한다. 원래 이는 인도네시아 기반의 갤러리를 중심으로 해외 갤러리를 초빙하려 노력하던 평범한 아트페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탄디오 디렉터가 이를 인수하고 새로 팀을 개편한 뒤, ‘동남아시아’에 오롯이 초점을 맞추면서도 해외 컬렉터의 유입을 꾀하는 등 국제적인 면모를 동시에 갖추는 전략을 취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상대적으로 미술 시장이나 예술계 관심이 낮은 동남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로 가파르게 성장했으니 말이다.


2023 ART JAKARTA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복귀한 2023년에 열린 아트 자카르타는 변화를 주며 좀 더 빠르게 확장의 가능성을 엿봤다. 그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던 페어가 올해부터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컨벤션 센터는 좁은 통로를 사이로 2개의 전시장이 연결된 장소로 이뤄졌다. 구획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페어장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인식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현재의 국제 엑스포 자리로 옮기면서 좀 더 개방된 공간에서 탁 트인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더욱 큰 스케일의 작품 설치가 가능해졌으며, 많은 관람객이 한꺼번에 모이는 페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전보다 쾌적한 관람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2023 아트 자카르타에는 총 12개국의 68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그중에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 등에서 처음으로 참가한 14개의 갤러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2022년과 비교했을 때 2000명 이상 증가한 3600여 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지역의 예술계가 회복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직 다른 국제적인 유수 아트페어와 비교하기엔 무리지만,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인도네시아 자국의 컬렉터와 갤러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여러 갤러리,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확고한 예술계를 구축하는 나라의 갤러리 역시 이에 조금씩 관심을 더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한국의 박지현 작가가 워크숍 프로그램 일환으로 선보인 ‘Thomson 6.1944 S106.8229 E’.



‘하이라이트’ 섹션에 소개된 사이풀 가리발디Syaiful Garibaldi의 ‘The Mini Musa’.


SECTIONS

‘갤러리 부스’ 섹션에는 40개의 인도네시아 갤러리와 28개의 해외 갤러리까지 총 68개의 갤러리 부스가 마련됐다. 참여 갤러리는 자신들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가들을 앞세워 컬렉터를 유혹했는데, 가장 눈에 띈 부스는 단연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로 프로젝트ROH Project’였다. 이번 페어에서 ‘살롱Salon’이라는 제목을 꺼내 들고 그간 교류해 온 방콕 시티시티 갤러리, 실버 렌즈 갤러리, 노바 컨템퍼러리, 한국의 휘슬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갤러리와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부터 한국의 박민하와 김태윤 등을 두루 소개하며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또 세마랑 갤러리Semarang Gallery에서도 현재 족자카르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대거 선보였다. 그중에는 한국의 복합 공간과도 같은 ‘이츠 레디 스페이스It’s Ready Space’를 운영하는 작가 리욜Ryol의 비정형적 인물 회화도 있었는데, 이미 첫날부터 컬렉터의 선택을 받기도 했다. 갤러리 부스 외에 페어를 위해 총 9개의 커미션 작품을 선보이는 ‘스폿Spot’ 섹션도 페어장 곳곳에 마련했다. 파트너사가 후원한 ‘하이라이트Highlight’ 섹션 역시 화려함을 자랑했다. 스위스 자산 관리 그룹인 율리어스 베어Julius Bär의 VIP 라운지, UOB 인도네시아 아트 스페이스 등이 각각 수상작을 선정해 페어 기간에 전시를 펼쳤다. 지역 워크숍과 연계한 작가 프로젝트 결과물도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도무송’ 칼판을 주재료로 작업하는 한국 작가 박지현은 워크숍에서 채집한 재료로 대형 조각 작품 ‘Thomson 6.1944 S106.8229 E’를 만들어 선보였다. 이 밖에도 예술가 집단과 비영리단체가 모금하기 위해 마련한 ‘신Scene’ 섹션, 작가와 컬렉터, 큐레이터 간의 활발한 소통을 위한 ‘AJ 토크’ 플랫폼까지 고루 준비해 많은 관람객과 적극적인 교류의 순간을 만들고자 노력했음이 엿보였다.



호세 산토스Jose Santos의 ‘Order of Things’.



아트 자카르타는 지역적인 색깔을 유지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인도네시아가 오랫동안 겪은 식민시대 역사를 이해한다면

이들의 예술 색깔을 좀 더 심도 있게 즐길 수 있을 것.



2023 아트 자카르타의 갤러리 부스 전경.



KOREAN POWER

이곳에서 만나는 한국 갤러리와 작가들, 작품들도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트 자카르타는 태생적으로 동남아시아 미술 신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국제적인 시각을 키우기 위해 기타 아시아 지역의 갤러리를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중이다. 그 결과 2023 아트 자카르타에는 아라리오 갤러리, 아뜰리에 아키, 비트리 갤러리, 갤러리 이배, 예화랑, 띠오 갤러리, 백아트 총 7개의 한국 갤러리가 참여해 다양한 작가를 선보였다. 노상호, 노보, 김재용, 권오상, 심래정, 김지희 등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이들이 이곳에서도 자신들의 특출 난 예술적 감각을 가감 없이 선보이며, 다시 한번 한국이 아시아에서도 탄탄한 예술가 기반을 가진 나라라는 점을 입증했다.



AN ENTHUSIASTIC ART LOVER

지금 아시아에서 톰 탄디오만큼 예술에 열정이 넘치는 이가 또 있을까? 예술이 좋아서 컬렉터로 시작한 그는 이제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 아트 자카르타의 디렉터가 되어 정열적인 사랑을 불태운다.


이번 ‘2023 아트 자카르타’ 역시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소감이 어떠한가?

익숙했던 공간인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를 벗어나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에서 이를 개최한 첫해다. 규모도 작년보다 커졌고, 파트너사도 많아진 만큼 더욱 잘되리라 믿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이 들러줘서 매우 기쁘다. 예년보다 커진 공간에서 열게 된 만큼 규모가 있는 설치 작업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페어는 ‘시장’이기 때문에 판매를 위한 작품, 특히 선호도가 높은 평면 작품이 많은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긴 시간을 머무는 곳이니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장소가 이를 가능하게 해줬다.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힘내서 앞으로도 더 성장하는 페어로 만들어보겠다.


디렉터로서 아트 자카르타만의 강점을 소개한다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아트페어라는 점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부분은 분명하게 ‘사람’이다. 결국 예술도 작가, 즉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닌가. 작가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들면 그것이 예술계가 되는 것이고, 컬렉터가 하나둘 모이다 보면 그것이 또 시장의 힘이 된다. 아트 자카르타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예술가, 컬렉터, 그리고 이를 만드는 아트 자카르타 팀, 파트너 회사까지 합해서 모두 ‘우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아트바젤Art Basel’이나 ‘프리즈Frieze’, 그리고 한국의 ‘키아프KIAF’ 같은 대형 국제 아트페어와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환영받는 이유도 회사가 만든 듯한 페어가 아니라 공동체적 성격을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인도네시아 예술 커뮤니티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한국 독자가 많다. 그 특징에 대해 짧게 설명한다면?

인도네시아에는 예술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바로 족자카르타와 반둥이다. 이곳에 젊은 작가들이 모여 레지던시도 진행하고,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도 만들고, 또 이전에 인도네시아에서는 볼 수 없던 대안 공간을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와 일본에 의해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 그러다 보니 그 영향력이 작업에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을 알고 작품을 본다면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은 자국 작가와 예술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듯 보이는데, 실제로 그러한가?

요즘 고민하는 지점이다. 현재 대다수의 인도네시아 컬렉터는 자국의 작가에게만 관심이 많다. 물론 좋은 일이기는 하다. 당장 젊은 작가들이 예술을 지속할 수 있고, 전업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컬렉터들이 해외로 나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또 이를 컬렉팅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예술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 정말 큰 숙제다.


그렇다면 2024년에는 어떠한 새로운 것들로 아트 자카르타를 채울 것인지 힌트를 부탁한다.

국제 엑스포 입구에 아주 작게 인도네시아 예술 커뮤니티를 위한 펀드 레이징 부스를 마련했었는데, 2024년에는 이를 좀 더 키워서 우리 손이 그간 잘 닿지 않았던 곳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또 봄에 진행하는 ‘아트 자카르타 가든’을 열심히 기획하고 있다. 탁 트인 야외에서 보는 예술은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11월쯤 마련할 ‘2024 아트 자카르타’는 지난해와 같은 규모로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에 살펴보니 딱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올해 미처 아트 자카르타를 보러 오지 못한 한국의 컬렉터나 예술 애호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트 자카르타를 해외 컬렉터와 예술계에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다. 누구라도 아트 자카르타에 방문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우리에게 연락하길 바란다. 언제나 문을 활짝 열고 환대하겠다. 예술을 직접 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인도네시아의 예술 신에 대해 기사와 사진으로 먼저 접했다면 이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해볼 차례다.



COOPERATION  아트 자카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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