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주얼리 세계의 문학적 해석

반클리프 아펠 회장 & CEO 니콜라 보스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이번 전시의 시작점으로 꼽았다. 문학은 물론 음악과 무용, 패션 등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과 관심을 드러내온 그는 2000년 반클리프 아펠에 합류한 이래, 여러 예술 세계와의 접점을 통해 메종의 헤리티지를 강조하고 창조성을 증폭시켜왔다.

EDITOR 윤정은

전시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주얼리 작품은 물론 큐레이션과 시노그래피의 전반에 걸쳐 표현의 다양성과 영감의 원천, 시대, 기법, 젬스톤, 장인 정신까지, 반클리프 아펠 역사의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담아냈다. 과학적인 동시에 시적이고, 또한 경쾌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산책로를 걷는 느낌으로 모든 색상과 형태를 따라가면서 다양한 영감과 배움의 기쁨을 채우길 바란다.


전시 장소로 서울 디뮤지엄을 선택한 이유는?

<반클리프 아펠: 시간, 자연, 사랑> 전시는 2019년 밀라노에서 처음 공개했고, 2022년에는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에서, 2023년 1월에는 사우디 국립박물관에서 선보였다. 이 특별한 전시를 이번에 서울 디뮤지엄에서 이어가게 되어 기쁘다. 디뮤지엄과는 지난 2016년에 <아트 오브 클립The Art of Clip> 전시를 개최하며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또 다시 관계를 이어가게 되어 기쁘다.


다른 도시에서 선보인 이전의 전시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장소부터 다르다. 전시는 컬렉션과 공간의 결합이다. 공간의 변화는 관람자의 감정과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디뮤지엄은 특히나 개성 있는 장소다. 2개 층에 걸친 전시 구성과 동선, 공간과 공간 사이의 이동 방식 등이 지금까지의 전시와 완전히 다르다. 사용되는 색상이나 그래픽 요소도 달리했다. 컬렉션 면에서도 이전까지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작품이 몇 점 포함되어 있다. 컬렉터들에게도 소개하지 않은, 반클리프 아펠 고유의 소장품이다. 우리는 서울에서의 전시를 독특한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었다. 전 세계를 순회하는 프로젝트를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테마만 골자로 삼아 장소와 상황에 맞춰 최대한 정교하게 다듬고자 했다. 따라서 이번 서울 전시는 고유하고 독창적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큐레이터 알바 카펠리에리와는 어떻게 만났나. 그에 대해 소개해달라.

밀라노에 리치몬트 그룹이 운영하는 디자인 학교 ‘크리에이티브 아카데미Creative Academy’가 있는데 그곳의 석사학위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참여해왔다.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의 교수인 알바 카펠리에리도 마침 프로그램의 객원 강사였고, 덕분에 여러 차례 함께 작업할 기회가 있었다. 알바 카펠리에리는 이탈리아 최고의 주얼리 전문가 중 하나이고 열정 넘치는 학자다. 골동품과 고대 주얼리부터 최첨단 아방가르드 예술을 비롯해 패션과 디자인 등 관련 분야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지식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 비첸차에서 ‘주얼리 뮤지엄The Jewellery Museum of Vicenza’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문학에서 영감받아 전시를 기획한 점이 돋보인다.

문학과 연계한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학은 영감의 원천이고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나를 포함한 프로젝트 팀원의 상당수가 문학에 특별한 열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알바 카펠리에리가 처음에 전시를 문학적인 콘셉트,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이탈로 칼비노의 세계와 연결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너무나 반가웠다. 그가 제시한 세계관이 메종에 영감을 주는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전시를 기획할 때엔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관람객이 여러 주제와 공간의 연속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학은 특정한 주제가 있기 때문에 연결 고리가 완벽하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 <다음 천년을 위한 6가지 메모>는 문학의 미래와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그가 정리한 문학에 대한 콘셉트가 주얼리 세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를 시작점으로 삼아 전시에 특별한 풍미를 더했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이 주얼리와 전시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인다면?

이탈로 칼비노가 언급한 가치들은 메종의 정체성과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정밀성’이나 ‘가벼움’은 실제로 워크숍에서 제작된 작품을 평가할 때 자주 쓰는 용어다. 알바 카펠리에리는 이 가치들에 기준을 두고 일관되며 조화로운 방식으로 주얼리 작품들을 구성했다. 전시 전반에 걸쳐 이탈로 칼비노가 말하는 주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이탈로 칼비노가 훗날 강의를 통해 여섯 번째 가치로 언급했던 ‘일관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이탈로 칼비노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다. 함께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 중 <나무 위의 남작The Baron in the Trees>, <존재하지 않는 기사The Nonexistent Knight>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도시들Invisible Cities>을 특히 좋아한다. 이 작품들에서 환상, 동화, 어린 시절의 감성을 잃지 않은 20세기 문학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주제와 공간도 흥미롭지만 컬렉션의 면면도 굉장하다. 전시 작품을 수급하는 과정은 어땠나.

전시 작품의 대부분은 반클리프 아펠의 소유지만 외부의 협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미스터리 세팅’ 작품이 전시된 일부 공간에 몇 점의 프라이빗 컬렉션을 함께 전시했다. 전시의 개념을 이해하고 기꺼이 제공해주는 컬렉터들 덕분에 가능했다. 아끼는 소장품을 수개월 떠나 보낸다는 게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프로젝트에 기여한다는 점에 의미를 둔 것 같다. 간혹 본인이 착용하겠다며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흔쾌히 수락해줬다.


그럼 대여한 작품들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나.

물론이다. 프라이빗 컬렉션은 전시 후 곧바로 반환된다. 반클리프 아펠 소유의 컬렉션 또한 상설 전시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기본적으로 내부에 보관하거나 다른 전시 혹은 박물관에 대여해준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 특별히 메종의 중요한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2000점 중 300점 정도를 추렸는데 하나하나 걸작이다. 출처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전부 모았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의미 있는 작품들이 이처럼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수많은 작품 중에 개인적으로 특히 애정하는 작품은? 전시 제목인 <시간, 자연, 사랑>에 맞춰 3가지를 꼽아주면 좋겠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지프Zip’ 네크리스다. 아마도 반클리프 아펠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20세기의 하이테크 기술과 아방가르드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착용할 수 있도록 매우 유연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의 ‘시간’ 테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연’ 테마에서는 ‘버드 오브 파라다이스Bird of Paradise’ 브로치를 꼽겠다. 반클리프 아펠에 처음 입사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중 하나다. 80년 전에 탄생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고, 색감 또한 경이롭다. ‘사랑’ 테마에서는 ‘로미오의 줄리엣’ 브로치들을 언급하고 싶다. 문학에서 받은 영감을 낭만적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최근 버전과 1950년대에 제작한 버전을 나란히 전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70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달라진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COOPERATION  반클리프 아펠(1877-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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