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세상, 슈퍼 에이지

65세가 넘어도 활발하게 일하고 경제활동을 영위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노년층의 탄생. <슈퍼 에이지 이펙트>가 예측하는 가까운 미래의 풍경이다. 이 책의 저자 브래들리 셔먼은 다가올 ‘슈퍼 에이지’ 시대가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엄청난 위기와 모든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고 말한다.

GUEST EDITOR 정규영 PHOTOGRAPHER 이경옥

브래들리 셔먼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고령화에 초점을 맞춘 글로벌 전략 연구 및 자문 회사인 ‘더 슈퍼 에이지The Super Age’의 창립자이자 CEO. 20대부터 미국 은퇴자협회(AARP) 등 고령화 관련 단체에서 일하며 전 세계적인 고령화 문제와 인구통계 기반 미래 트렌드를 연구해온 그는 현재 주요 국가 정부와 기업에 고령화 시대의 고용과 복지 등에 대한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슈퍼 에이지Super Age는 일반적으로 은퇴 연령으로 여겨지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이 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한국은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7%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데, 그 변화 속도는 훨씬 빠르다. 앞으로 2년 안에 한국은 ‘슈퍼 에이지’ 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슈퍼 에이지 이펙트>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젊은 인구보다 65세 이상 노인의 수가 많아지는 ‘슈퍼 에이지’ 시대에 대한 책이다. 저자 브래들리 셔먼은 <슈퍼 에이지 이펙트>를 통해 더 오래 살기 위한 지침이나 건강하게 더 잘 늙는 법 대신 인류가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 ‘슈퍼 에이지’ 시대가 앞으로 가져올 변화를 다양한 인구통계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무엇보다 그가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슈퍼 에이지라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메가 트렌드가 엄청난 위기와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특히 한국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경우엔 모든 세대에게 더욱 공정하고, 평등하고, 화합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고 이야기한다. 슈퍼 에이지 시대에 우리 삶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브래들리 셔먼은 은퇴와 경제성장, 노후 계획 등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개념들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가올 미래를 ‘슈퍼 에이지’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
슈퍼 에이지는 내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UN의 인구 모델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그들은 세계 인구가 고령화aging 단계에서 고령화한aged 단계, 초고령화한super aged 단계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슈퍼 에이지는 인류가 이전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이런 초고령화 시대가 되면 사회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이런 현상에 ‘실버 쓰나미Silver Tsunami’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훨씬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쓰나미는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지만, 재건의 기회이기도 하니까. 다가올 슈퍼 에이지 시대의 변화를 잘 이겨낸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사회에는 더욱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출산률은 0.7명 미만이며,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런 변화에 그리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보면 최근만의 현상도 아니다. 일찌감치 산업화가 진행된 영국과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250년간 점진적으로 일어난 변화가 한국에는 50년 동안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각국 정부가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 역시 보편적인 현상이다. 세금을 많이 걷고 복지 혜택을 줄이는 것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변화는 그보다 빠르다. 젊은 인구가 줄어들어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니까 나이 든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말이다.


한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을까?
독일은 이런 변화를 15년 전에 이미 겪었다. 젊은 구직자의 수가 줄어들자 BMW와 포르쉐 등의 자동차 회사가 생산 라인을 인체공학적으로 재설계하고, 휴식 시간을 늘리며, 업무 사이사이 스트레칭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나이 든 노동자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그 결과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생산성이 30% 이상 향상되었다.

한국은 나이에 따른 상하 관계가 분명한 사회다. 노인은 사회적으로 존경의 대상이지만, 그들에게 서비스를 받거나 함께 일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 역시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25년 전 워싱턴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피츠버그에 있는 집에서 워싱턴까지 혼자 차를 몰고 가는 길에서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펜실베이니아 시골의 휴게소에 잠시 쉬려고 차를 멈췄을 때, 70~80대 노인들이 주유소와 카페테리아 등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기 불편한 광경이었다. 편안한 은퇴 생활을 즐겨야 할 사람들이 왜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고령화 문제를 연구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할 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65세 이후 은퇴하는 것도 20세기에 생겨난 개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할 때까지 일해왔다.

은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
인류 역사에서 은퇴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은퇴는 인류의 생산성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20세기에 생겨난 개념이었다.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세대는 85세 이상 초고령층이다. 슈퍼 에이지는 노령 인구가 젊은이들의 숫자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이전처럼 65세 이상 고령층이 은퇴한다면 일할 사람이 없어 경제가 침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정한 수입이 없다면 소비 역시 줄어들 거다. 악순환이다.

으스스한 미래다. 슈퍼 에이지가 불러올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간단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포용적인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나이 든 노동자들은 경험이 풍부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기업 채용에서도 나이보단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도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은 생성형 AI와 로봇에게 맡기면 되지 않나? 코딩 같은 복잡한 업무까지 AI가 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경험 외에도 창조성과 호기심, 공감과 소통 능력 같은 것들은 나이가 들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저서 <슈퍼 에이지 이펙트>에서 수많은 인구통계학적 수치와 도표를 통해 슈퍼 에이지 시대로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수치가 있다면?
150세. 현재 세계 최고령자의 나이는 120세이지만, 학자들은 지금 태어난 사람 중에 150세까지 생존할 사람이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그리고 2086년. 지구 전체 인구가 감소할 거라고 예측되는 시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점을 2050년대 정도로 보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21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출생률을 높이는 등 인구 감소를 극복한 사례는 없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북유럽 국가들과 다양한 정책을 통해 출생률을 큰 폭으로 높인 프랑스 같은 예가 있기는 하지만 그 나라들 역시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인구 감소를 증가 추세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슈퍼 에이지 시대가 온다면, 어디서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을까?
이미 익숙해져서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Joe Biden은 81세의 나이로 재선에 도전한다. 85세의 배우 제인 폰다Jane Fonda가 구찌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88세의 매기 스미스Maggie Smith는 로에베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다. 내가 처음 고령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25년 전에 비해 세상은 이미 놀라울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25년 전이면 20대였을 텐데, 그때부터 고령화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노화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걸 실감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 은퇴한 그분들은 요양원에 들어갔고, 건강이 빠르게 나빠졌다. 은퇴가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 계기다. 그보다 더 결정적이었던 건 슈퍼 에이지와 관련한 인구통계학적 자료였다. 구체적인 자료와 수치를 들여다볼수록 이 현상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흑사병 이후 인구 구성이 이렇게 큰 규모로 바뀐 적은 없었으니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패션과 시계, 자동차 등 럭셔리 산업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럭셔리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가령 미국에서 애플 제품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세대는 65세 이상의 남성이다. BMW 차량 중 플래그십 모델인 ‘7시리즈’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70세에 가까우며, 스포츠카, 모터바이크 모두 50세 이상 연령층이 가장 많이 구매한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가 침체되지 않은 가장 큰 원인으로 6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의 구매력을 드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럭셔리 산업 역시 이들의 필요와 요구에 응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한 럭셔리는 기존 노인들을 위한 제품과는 여러모로 달라야 할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73세인데, 얼마전 여생을 보낼 새로운 집에 입주했다. 그 전엔 19세기 후반에 지은 빅토리아풍 3층 주택에 살았는데, 지나치게 크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1층 집을 사서 노후 생활에 맞도록 완전히 레노베이션했는데, 그 집에 발을 들이면 현대적이고 아름답다는 감탄부터 나온다. 노인을 위해 지은 집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고령층의 필요와 편의성을 충족하면서도 보편적으로 매력적인 디자인이 필수적일 것이다.

슈퍼 에이지 시대가 위기이자 기회인 건 국가와 기업뿐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과거처럼 국가와 자녀가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긴 인생을 대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마치 머나먼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항해와 비슷하다. 먼 바다를 최단거리로 가로지르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날씨와 바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계속 항로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2~5년마다 재정 상태와 경력 등을 점검하고 자신의 준비 상태와 목표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강한 동안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젊은 시절부터 고령화를 연구해온 당신은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운 좋게 젊을 때부터 노후를 대비한 저축과 투자를 충실히 해왔기 때문에 재정적으로는 꽤 안정된 편이다. 하지만 계속 다시 점검하고 조정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부모님의 예처럼, 나 역시 1895년에 지어진 주택에 살고 있는데 노후를 보내기엔 여러모로 불편하다. 70대 이후를 보낼 주택을 짓기 위한 부동산 투자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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