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세계를 무대로 뛰노는 한국 예술인

예술의 힘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작가만큼이나 큐레이터, 디렉터의 힘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요즘이다. 그중에서도 벌써부터 2024년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예고한 이들이 있다.

EDITOR 정송




김성희

지난해 9월, 약 5개월 동안 공석이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새로운 관장이 임명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 김성희. 김 관장은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기획자로 활동해왔다. 서미갤러리, 카이스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우리나라 1세대 대안 공간 중 하나로 불리는 ‘사루비아 다방’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2000년에는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을 기획했고, 2007년에는 ‘국제인천여성비엔날레’ 총감독을 맡는 등 여러 차례 큰 프로젝트를 지휘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는 사단법인 캔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작가를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펼쳐왔다. 그리고 이를 지역사회와 연결해 사회와 미술이 좀 더 긴밀하게 교류하는 데 일조하고자 노력해왔는데, 이는 미술관이 가진 사회적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 청주관 총 4개의 관으로 이뤄졌다. 향후 3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이곳의 전시와 여러 연계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김성희 관장. 그가 걸어온 길을 비춰봤을 때 지금 이 시점, 이를 가장 잘 이끌어갈 인물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숙경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이숙경 감독은 1993년부터 5년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 연구사를 역임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시티 대학과 에식스 대학에서 각각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는 영국의 테이트 리버풀을 거쳐 테이트 모던의 국제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국내외 굵직한 전시 큐레이팅을 경험해온 그는 2023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총감독을 맡으며 큐레이터 인생에 전환점을 맞았다. 이 감독은 그동안 자신이 체득해온 서로 다른 문화와 큐레이팅 방식을 녹여 서로를 바라보는 ‘수평적 시선’을 제시했다. 이때 전시 베뉴 중 하나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일본 작가 모리 유코Yuko Mohri가 설치 작업을 선보였는데 그 인연은 올해 열리는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일본관 큐레이터와 선정 작가로 이어졌다. 이들은 ‘예술과 생명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같은 우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질 계획이다. 한편, 이숙경 감독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 부설 휘트워스 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돼 오는 8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대륙을 가로지르며 종횡무진하는 그의 행보가 얼마나 더 거침없을지 함께 지켜보자.




이지영

2년 전 세계적인 아트페어 가운데 하나인 ‘프리즈Frieze’가 서울에 론칭하며, 이제 한국은 명실상부 미술계에서도 인정받는 시장이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일찍이 유럽과 미국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메가 갤러리들이 한국에 진출해 한남동과 삼청동을 갤러리 거리로 수놓는 데 일조해왔다. 그렇지만 프리즈 론칭을 기점으로 더 많은 갤러리가 서울 시장과 컬렉터 파워에 주목하게 되었고, 다들 조심스럽게 한국 진출 계획을 세우면서 하나둘 한국인 디렉터를 선임하거나 사무실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가고시안 갤러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3년 9월 두 번째 ‘프리즈 서울’ 개막에 맞춰 가고시안은 중대 뉴스를 발표했다. 바로 한국 디렉터 이지영을 선임하고 컬렉터와 더욱더 적극적인 커넥션을 만들어가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지영 디렉터는 PKM갤러리를 시작으로 에스더쉬퍼와 스프루스 마거스를 거쳐 커리어를 쌓았으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주요 국공립 및 사립 미술관에서 개최한 다수의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은 분명 ‘기업급 화랑’이라 불리는 가고시안 갤러리에 힘을 실어줄 자산이다. 이지영 디렉터와 함께 가고시안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서울의 지반을 탄탄히 닦고 있다.



  

김해주

2017년부터 아트선재센터의 부관장이 되어 신체와 기억, 이주와 언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기획한 김해주 감독. 그는 특히 ‘춤추는 미술’, 즉 퍼포먼스 아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큐레이토리얼 활동을 펼쳐온 인물이다. 지난 2022년에는 ‘부산비엔날레’ 전시 감독을 맡아 ‘물결 위 우리’라는 제목 아래 부산의 역사와 도시 구조의 변천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를 파헤치고 이를 다른 나라의 이야기와 연결해 범지구적 담론을 생성해낸 바 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을 인정받아 그는 2024년 열리는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이숙경 감독과 함께 한국인 최초로 해외 국가관의 큐레이터로 선임됐다. 김해주 감독이 함께하는 건 바로 싱가포르 국가관과 선정 작가 로버트 자오 렌후이Robert Zhao Renhui의 전시. 이들은 ‘Seeing Forest’란 주제 아래 원래 울창했던 숲이 벌목된 뒤 다시 재생을 거쳐 숲을 이룬 일명 ‘이차적인 숲’을 탐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공존의 섭리를 다룬다고 덧붙였다. 비록 큐레이터와 작가가 속한 문화와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서로 다른 시각을 하나로 모아 이번 협업에 더욱 시너지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한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