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3년 10월호

스푸르스 마거스가 가늠하는 세계

한남동에서 2주 가량 연 전시 를 통해 서울에 대한 관심을 표한 스푸르스 마거스. 이를 이끄는 모니카 스푸르스와 필로메네 마거스 두 공동 대표를 만났다.

EDITOR 정송


1983년 모니카 스푸르스와 필로메네 마거스는 스푸르스 마거스를 설립했다. 쾰른을 시작으로 현재 베를린, 런던, 로스앤젤레스, 뉴욕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쾰른, 홍콩, 베이징, 서울에는 오피스를 두고 있다. ‘현대미술’을 언어로 삼아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작가는 물론 예술 애호가와도 거침없이 소통하는 이들은 어쩌면 조금은 어려울 수 있는 예술의 문법을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오려는 시도를 지속해왔기에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례로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와 제니 홀저Jenny Holzer,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 아네 임호프Anne Imhof 등 개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과감하게 벽지로 만들거나 벤치로 사용하고, 거실에 카펫으로 깔아놓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로써 예술을 그저 감상하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 지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 2018년부터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컬렉터와 지속해서 커넥션을 만들어왔지만, 본격적인 공간을 물색하거나 전시를 선보인 적 없던 이들이 이번에 서울에서 단기 팝업 전시를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본격적인 서울 진출인 만큼 존 발데사리, 제니 홀저, 바버라 크루거를 비롯해 차오 페이Cao Fei, 도널드 저드Donald Judd,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 안드레아스 슐츠Andreas Schulze, 송현숙, 카리 업슨Kaari Upson 등 총 24인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다시 한번 일상의 오브제를 흥미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예술과 일상, 그리고 관람객이 상호작용하는 관계성에 주목했다. 이번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갤러리스트로서 가진 사유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서울에 지점을 낸 해외 갤러리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 공간 오픈이 아닌 팝업 전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필로메네) 2018년부터 서울에 오피스를 운영하며 문화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 갤러리 공간을 여는 건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동안 우리 갤러리의 소속 작가 가운데 토마스 샤이비츠Thomas Scheibitz, 다비드 오스트로브슈키David Ostrowski, 아날리아 사반Analia Saban 등이 한국 갤러리와 전시를 열면서 이미 협업의 기회는 많이 있었다. 그리고 프리즈 서울에도 참여하고, 이번에 팝업 전시 까지 열면서 단계별로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신중하게 접근하려 한다. 지금은 팝업 전시, 그리고 그룹전이 적합한 때라고 판단했다.


스푸르스 마거스가 대표하는 작가의 면면이 화려하다. 20~21세기 주요 작가의 이름이 빼곡한 것을 볼 수 있다. 갤러리의 운영 철학과 전속 작가를 맺는 기준 등이 궁금하다.

(모니카) 현재 우리는 70여 명의 예술가 및 재단과 협력하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우리와 함께한 이들의 수가 증가했다. 그중에서 바버라 크루거, 조지 콘도George Condo, 피슐리 & 바이스Fischli & Weiss같이 꽤 많은 작가가 1980년 갤러리 초기부터 함께해오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기도 하다. 나와 필로메네는 많은 작가와 작품을 살펴본다. 때론 한 작가를 몇 년 동안 관찰하기도 하는데, 서로 ‘이 작가다’ 싶어 파트너를 맺을 때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세심한 과정이 필요하니까.

(필로메네) 9월 중순에 베를린 지점에서 파멜라 로젠크란츠Pamela Rosenkranz의 전시를 오픈했다. 모니카가 말한 ‘전속을 맺기 전 수년간 지켜본’ 작가 가운데 하나다. 함께 2012년부터 몇 년 동안 스위스 쿤스트할레 바젤, 베네치아 비엔날레, 독일 카셀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등에서의 활동을 보고 ‘아, 만나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듯 작가든 공간이든 오랫동안 살피며 신중하게 결정한다.

(모니카) 우리는 스스로를 ‘프로그램 갤러리’라고 소개한다. 이는 강력한 예술적, 문화적 비적을 바탕으로 갤러리를 운영한다는 의미다. 예술 담론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부분 모두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그래서 여성 예술가와 젊은 작가까지 모두 아우른다. 또 조지 콘도, 송현숙, 헨니 알프탄Henni Alftan처럼 회화의 역사적 조건을 탐구하는 작가들도 우리 프로그램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인물이라 모두 소중한 우리의 협업자다.




전시 작가를 선정한 기준은?

(필로메네) 9월에 선보인 전시는 세 번째 전시 이후 시간이 흐르고 또 팬데믹을 거치며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성장한 아이디어다. 코로나 19가 유행하기 직전인 2019년 바버라 크루거와 제니 홀저가 한국의 주요 기관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했고,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던 2020년에는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역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의 작품이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재난과 치유>에서 소개되기도 했고. 이를 염두에 두고 큐레이터적으로 접근했다. 어려운 시기 전후에 서울에서 소개된 작가들을 이번 전시에서 다시 한번 모은 셈이다.


전시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모니카) 한국어로는 ‘가능한 세계들’이라고 번역했다. 예술, 디자인, 건축,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각적으로 연결된 부분을 포착해 예술적인 담론을 생성해 내는 자리다. 1989년과 2006년, 2007년 총 세 번 쾰른에서 개최한 후 처음으로 다른 곳에서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이를 기획한 파스콸레 레체스Pasquale Leccese의 아이디어에 따른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적 사물에 숨겨진 유머를 찾아내는 유쾌한 접근 방식이 특징인 전시다. 전시를 찾는 관람객에게 ‘가능한 세계들’을 해석할 다양한 여지를 열어뒀다. 이 ‘가능한 세계들’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작품, 팬데믹 이후 우리 일상과 사회 및 개인의 변화 사이에 찾을 수 있는 공통점에서 발견할 수 있겠다.


갤러리만큼이나 두 사람이 생활하는 집도 궁금하다. 일하는 공간이 아닌 쉼이 주가 되는 공간에는 어떠한 작품을 걸어두는지 궁금하다. 수많은 컬렉션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나?

(모니카) 사실 좋아하는 것과 일반 대중의 선호는 다른 문제다. 나는 어떤 그림을 걸고 그 그림을 매일 마주하며 살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겐 그것이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런 점에서 일하는 공간에는 좀 더 일반적인 시선에 초점을 맞춘다. 예술 작품은 우리를 어떻게든 지지하고 격려하며 삶의 균형을 맞춰준다. 또 어떤 작품은 흥분하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차분하게 가라앉히기도 한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강력하게 연결된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품에서 어떠한 매력을 찾았는지, 무슨 감정이 촉발됐는지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 그 공간에서 경험하고 싶은 느낌에 따라 배치한다. 그런데 결국 이를 알기 위해서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예술에 대해 많이 읽고, 다른 이와 이를 나누고, 전시를 보러 다니며 작품에 집중하길 바란다. 어떠한 작품이든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클리셰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한국 작가와 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모니카) 우리는 지난 9월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 한국 작가 송현숙의 작품을 소개했고 그동안 꾸준히 한국의 아트 신에 주목해 왔다. 이곳은 현대미술을 수집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그것이 오랜 전통 같다. 그래서 한국, 특히 서울에 올 때마다 미술관, 갤러리, 대안 공간,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하는데, 우리에게 이는 굉장히 특별한 문화 교류의 일환이다. 이는 항상 새로운 질문과 아이디어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활동이다.




앞으로 자주 한국을 찾을 계획이 있는가? 이곳에서 한 차례의 팝업 전시만 선보이는 것이 퍽 아쉽다.

(필로메네) 2018년에 서울에 오피스를 연 이후 한국에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이곳에 ‘방문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다’라는 생각보다는 항상 ‘여기 있다’고 여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늘 이곳에서의 문화적 교류를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신중하게 다음을 기약해보겠다.



COOPERATION  스푸르스 마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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