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ART

영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영 컬렉터 노재명·박소현

30대 초반의 부부 컬렉터 노재명과 박소현에게 아트 컬렉팅은 즐거운 취미이자 소통의 창구다. 작품을 통해 가족, 주변 지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삶의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EDITOR 김수진 PHOTOGRAPHER 이우경

노재명·박소현  1990년대생 부부 컬렉터. 노재명은 미국에서 경제학과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후 관련 일을 하고 있고, 박소현은 피아니스트다. 2018년 결혼 후 함께 상의하고 고민하며 두 사람만의 취향이 깃든 컬렉션을 꾸려가고 있다. 노재명은 현재 전남도립미술관 자문위원, 아시아 작가들을 조명하는 ‘골드 아트 프라이즈’의 선정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컬렉션을 위한 개인 수장고를 갖추고, 아트페어에 맞춰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삶. 갤러리스트나 초고액 자산가에 대한 소개가 아니다. 일하고 육아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1990년대생 노재명·박소현 부부 이야기다. 미술에 ‘진심’인 이들은 누군가가 골프 치고 맛집 탐방하듯 예술 작품을 수집한다. 스트리트·어번 아트를 기반으로 견고히 쌓아 올린 동시대 미술에 대한 취향이 엿보이는 200여 점의 컬렉션이 그 결과물. 컬렉팅의 시작은 노재명 컬렉터가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당시 주변 친구들에게 영향받아 구입한 카우스KAWS의 아트 토이였다. “어릴 때는 동전이나 우표를, 10대 시절에는 한정판 패션 아이템을 열심히 모을 만큼 수집이 일상이었어요. 유행 타는 아이템을 구입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낄 즈음 아트 토이를 접하게 됐죠.” 이후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는 프린트와 에디션을 중점적으로 모았고, 대학 졸업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원화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박소현 컬렉터는 남편을 만나 아트 컬렉팅에 눈 뜬 케이스. “전시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작품을 구입할 생각은 못 했어요. 연애 시절 남편이 아트 토이를 자주 선물해줬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소장’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결혼 이후 함께 컬렉션을 꾸려가고 있는 두 사람은 이를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찾고, 더 다양한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3층 규모의 주택을 개조한 신촌 수장고에는 이들의 확고한 취향이 깃든 작품이 가득했다.


덴마크계 스페인 작가 안톤 무나르Anton Munar의 ‘콘 루비아 이 루나Con lluvia y luna’. 올해 4월 페레스프로젝트의

이전 개관전 <더 뉴, 뉴The New, New>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됐는데, 리넨 위에 물감을 풍부하게 올려 그린 환상의 세계가 볼수록 매력적이다.


개인이 수장고를 보유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에요. 많은 컬렉터가 꿈꾸는 공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공간을 갖추게 된 계기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품을 계속 모으다 보니 공간적인 한계에 부딪혔어요. 어느 순간부터 좋은 작품을 둘 곳이 없어서 소장을 고민하는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대다수의 작품을 꽁꽁 싸맨 채로 넣어놓아야 하는 것도 아쉬웠고요. 더 많은 작품을 더 자주 보고 싶어 이 공간을 꾸렸습니다. 건물은 지하와 1층 수장고, 2층 뷰잉 룸까지 총 3개 층으로 이뤄져 있어요. 수장고를 마련한 후 컬렉팅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한층 더 깊어진 것 같고, 아트 관계자나 국내외 다양한 컬렉터와 소통의 기회도 많아져서 좋아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VIP 프로그램에 참여해 수장고 프라이빗 투어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부담도 되고, 그래서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공들인 공간이라는 게 느껴져요. 설계할 때 특히 신경 쓴 점이 있나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디자인하고 감리했어요. 특히 1층에는 높이 230cm의 대형 랙을 여러 개 배치해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전시할 수 있게 구성했어요. 더불어 작품을 보관하는 공간인 만큼 온도, 습도, 빛에 특히 신경 썼습니다. 건물의 단열에 공들였고, 벽 안쪽에는 냉난방기, 제습기, 가습기 등 각종 설비를 갖췄어요.


두 분의 컬렉션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줄 수 있나요?

‘전 세계의 다양한 영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영 컬렉터’. 저희 컬렉션의 90% 이상이 젊은 작가의 작품이에요. 저희와 같은 또래 작가를 응원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들의 변화와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상당하기도 하거든요. 물론 도태되거나 사라지는 작가들도 많지만, 그 나름대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이 가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 중인 남킴Nam Kim의 2022년작 ‘안전지대Safe Space’는 올해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트 페어 ‘아트 SG’에서 구매했다.

팬데믹 시기, 해외에 나가지 못하던 중 온라인상에서 작가를 알게 되었고, 실제로 작품을 접했을 때 더 마음에 들어 소장하게 되었다.


‘눈이 매서운 좋은 컬렉터’로 소문이 자자해요. 성공 가도를 달리는 아티스트가 신예였을 때의 작품을 여럿 소장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저희가 정말 많이 들은 질문이 “그걸 왜 사?”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거 어디서 사?”로 바뀌더라고요.(웃음) 예를 들어 사이먼 후지와라Simon Fujiwara 같은 작가의 경우 저희가 작품을 소장할 당시에는 결과물보다 작업의 개념과 과정으로 주목받고 있었어요. 오랜 시간 개념 미술 분야에서 활약해온 작가였고 미술계 내에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은 작가로 인식되어 있었죠. 그러나 현재의 그는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매우 높아졌어요.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와 진행한 프로젝트, 새로운 ‘Who the Bær’ 시리즈 등이 크게 사랑받고 있어 저희도 기분이 좋고 뿌듯합니다.


작품 스타일은 다채롭지만 일관된 취향이 있는 듯 보여요. 컬렉팅할 때 기준점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저희는 재미있고 유니크한 작품을 수집합니다. 기이하든, 특이하든, 아름답든 강렬한 인상을 주고 뇌리에 오래 남아야 해요. 2층 뷰잉 룸 중앙에 놓인 데이비드 알트메즈드David Altmejd의 조각상이 대표적입니다.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기이하고 징그럽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눈에 밟히고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불편한 첫인상이 호감으로 바뀌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 작품을 계기로 관점의 변화가 좀 생긴 것 같아요. 수집의 스펙트럼이 좀 더 넓어졌달까요.


컬렉터로서 좋은 안목을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좋은 작품을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해요. 국내 갤러리, 미술관, 기관이 주관하는 문화 행사 등은 물론이고 해외 아트페어에도 되도록 참석하려 하죠. 페어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역마다 아트 신이 다르고 컬렉터의 성향도 각양각색이어서 행사가 열리는 도시의 미술관이나 프라이빗 컬렉션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좋은 컬렉션을 만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컬렉터로서 롤 모델이 있나요?

마인드를 배우고 싶은 분들은 있어요. 마이애미의 억만장자 컬렉터 호르헤 페레스Jorge Perez가 대표적이죠. 지난해에 그분의 컬렉션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작품 하나하나 직접 도슨트하는 모습에 감명받았어요. 보통 그 정도의 컬렉터들은 가볍게 인사 정도 나누고, 투어는 전문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구나, 느꼈죠. 엄청난 작품들이 복도, 직원 책상 뒤, 화장실 등 공간 곳곳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는 걸 보고 또 한번 놀랐고요. 본인이 작품을 수집하는 건 수장고에 보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향유하게 하고 싶어서라는 말이 참 와닿더라고요. 저 역시 오래도록 그런 열정으로 우리만의 컬렉션을 꾸려가고 싶어요.


높이 230cm의 대형 랙 여러 개를 설치해 대형 작품 여러 점을 비치할 수 있게 설계한 1층 수장고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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