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3년 9월호

르망의 로망

여기 한 세기를 이어온 모터스포츠 대회가 있다. 현존하는 어떤 대회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만큼 인기도 높다. 르망24시는 그렇게 100주년을 통과했다.

GUEST EDITOR 김종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터스포츠 대회는 무엇일까? 르망24시다. 또 단일 대회로 가장 큰 규모의 모터스포츠 경주는 무엇일까? 역시 르망24시다. 종합적으로 보면 모터스포츠의 왕으로 군림하는 F1이 화제성과 규모 면에서 크다. 하지만 F1은 여러 경기의 총합이다. 단일 경기로서 인기와 규모로 치면 르망24시를 최고로 꼽는다. 왜 르망24시가 특별할까? 일단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 1923년 5월 26일에 처음 개최됐다. 1936년 프랑스 총파업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8년)을 빼고 전통을 이어갔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시간이 100년이다. 올해 르망24시는 탄생100주년을 맞았다. 경기 횟수로는 91회.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한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르망24시를 수놓았다. 부가티, 벤틀리, 페라리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부터 스포츠카 명가 포르쉐를 비롯해 재규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 유럽 브랜드도 활약했다. 그뿐인가. 대중적 브랜드인 푸조, 르노, 포드, 토요타까지 르망24시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했다. 이들이 참여한 클래스는 현행 기준 하이퍼카 부문이다. 르망24시에서 가장 강력한 차들이 경쟁하는 클래스다. 하이퍼카 클래스에서 숱한 자동차 브랜드가 격돌하며 르망24시의 역사를 만든 셈이다.

대회 방식도 남다르다. 보통 모터스포츠는 얼마나 빠르게 달리느냐를 놓고 승패를 가른다. 하지만 르망24시는 빠르기만 하다고 우승할 수 없다. 르망24시는 내구 레이스다. 24시간 동안 얼마나 멀리 달렸느냐로 우승을 가른다.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오후 4시까지 서킷을 몇 바퀴 돌았는지 총 거리가 핵심이다. 물론 24시간을 못 채우고 차가 멈춰서는 경우가 부지기수. 완주한 것만으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즉, 르망24시에서 우승하려면 속도뿐 아니라 꾸준히 달릴 수 있는 내구성이 관건이다. 속도에 강인함까지 갖춰야 한다. 언제나 끈기는 스포츠의 중요한 덕목 아닌가. 그냥 자동차 경주보다 더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다.

축제 같은 분위기도 르망24시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대회 방식 특성상 하루 동안 열리기에 사람들도 하루 내내 서킷 주변에 머문다. 르망24시의 서킷은 13.626km 길이의 서킷 드 라 사르테다. 그냥 서킷이 아니다. 서킷과 공도를 조합했다. 자연스레 마을의 축제가 된다. 당연히 축제에 걸맞은 부대시설도 있다. 하루 종일 달리는 차만 볼리 없잖나. 사람들은 각종 부스를 구경하며 기념품도 사고, 술도 마시고 캠핑도 한다. 밤에 달리는 경주차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르망24시는 약 70만 명이나 모이는 엄청난 규모의 축제다.



르망24시가 낳은 것들

르망24시가 남긴 기록도 흥미롭다. 전통 있고 독보적인 모터스포츠 대회인 만큼 자동차업계에 미친 영향도 크다. 우선 가장 많이 우승한 브랜드는 포르쉐다. 19회나 우승했다. 1970~1980년대 르망24시를 주름잡은 포르쉐는 2014년에 다시 르망24시에 복귀했다. 그러고선 2015년부터 3연패를 달성했다. 포르쉐의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르망24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지금도 그 역사가 현행 포르쉐에 남아 있다. 포르쉐는 키를 스티어링 휠 왼쪽에 꽂고 시동을 건다. 스마트 키로 변한 요즘도 시동 버튼이 왼쪽에 있다. 일반적으로 오른쪽에 두는 방식과 다르다. 그 이유를 르망24시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까지 르망24시의 출발 방식은 레이서가 차에 달려가 탄 후에 출발했다. ‘르망 스타트’로 불리는 출발 방식이었다. 그때 왼손으로 시동 걸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조작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출발할 수 있었다. 그 시절부터 내려온 방식을 포르쉐는 지금까지 고수하는 셈이다. 그만큼 르망24시는 포르쉐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르망24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브랜드는 아우디다. 21세기 들어 르망24시의 제왕은 확실히 아우디였다. 2000년에 처음 우승한 이후로 2014년까지 13회나 우승했다. 15년 동안 두 번 빼고 내리 우승했으니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르망24시에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 점도 눈에 띈다. 연료 효율을 위해 디젤엔진을 처음 도입했다. 24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경기 특성상 속도와 내구성만큼 연료 효율도 중요하다. 주유하기 위해 피트에 덜 들어갈수록 더 길게 달릴 수 있는 까닭이다. 아우디는 이런 디젤엔진 기술을 바탕으로 르망24시 최장 주행거리 기록도 세웠다. 24시간 동안 5410.713km나 달렸다. 르망24시를 통해 이룬 아우디의 헤드라이트 발전사도 중요하다. 야간에도 계속 달려야 하기에 밝은 시야를 확보할수록 유리하다. 아우디는 최신 기술로 무장한 헤드라이트를 선보이며 우승 횟수를 늘려갔다. 아우디는 르망24시에서 최신 기술을 뽐냈고, 그 기술은 양산차에 스며들었다. 아우디를 지금에 이르게 한 디젤엔진이나 첨단 헤드라이트 기술은 르망24시에서 발화한 셈이다. 모터스포츠로 쌓은 기술력을 양산차에 적용한 대표적 예다.




100주년다운 화려한 격전

특별한 모터스포츠 대회인 르망24시가 지난 6월 100주년을 맞았다. 다들 역사적인 순간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100주년 대회는 최근 들어 르망24시 팬들을 가장 흥분하게 하는 조건을 갖췄다. 단지 100주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르망24시에 메이저 브랜드의 참여율이 저조했다. 전통 강자인 아우디가 떠나고, 내리 3연속 우승을 차지한 포르쉐도 떠났다. 메이저 브랜드로선 토요타 혼자 남아 그동안 못 이룬 우승을 이어나갔다. 걸출한 브랜드가 서로 자웅을 겨루지 않았기에 흥미가 떨어진 터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100주년 대회 우승이라는 역사적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여러 브랜드가 뛰어들었다. 100주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관심도, 의미도 차고 넘쳤다.



우선 1960년대 르망24시에서 절대 강자로 불리던 페라리가 참여했다. 반세기 만에 최상위 클래스로 복귀한 셈이다. 르망24시 최다 우승을 기록한 포르쉐도 복귀했다. 마침 포르쉐는 올해 창립 75주년이다. 이런 특별한 해에 르망24시 100주년에서 우승한다? 뜻깊은 우승을 챙길 기회였다. 르망24시 100주년은 그만큼 의미가 남달랐다. 푸조도 출사표를 던졌다. 르망24시에서 잔뼈가 굵은 푸조는 100주년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 위해 오랜만에 복귀했다. 아우디와 포르쉐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르망24시에서 달려온 토요타도 있다. 그동안 르망24시에서 쌓아온 역량을 다수의 경쟁자에게 뽐낼 기회였다. 심지어 캐딜락까지 합류했다. 르망24시 최상위 클래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던 미국 브랜드까지 참여한 것이다. 100주년다운 특별한 무대에 걸출한 주연들까지 다수 모였다. 판이 제대로 벌어졌다. 모두 탐낸 르망24시 100주년 우승컵은 결국 페라리가 들어 올렸다. 포디엄 가장 높은 곳은 페라리 경주차 51번 499P가 차지했다. 24시간 동안 총 342랩을 주행하며 가장 멀리 달렸다. 페라리는 르망24시 100주년 대회에서 우승하며 총 10회 우승을 달성했다. 50년 만에 돌아온 보람이 있었다.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방법

르망24시 100주년 경기는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이 주목했다. 이런 기회를 르망24시와 연관 있는 브랜드가 놓칠 리 없다. 리차드 밀은 100주년을 기념한 에디션을 선보이며 의미를 기렸다. 리차드 밀은 르망24시의 이벤트 대회인 르망 클래식을 후원하며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왔다. 르망 클래식은 과거 르망24시에서 활약한 클래식 경주차를 다시 서킷으로 모은 행사다. 르망24시의 전통을 되새기는 의미를 넘어 그 자체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올해도 클래식 경주차 800대가 르망24시를 누볐다. 포드 ‘GT40’, 페라리 ‘250 LM’, 포르쉐 ‘917’ 같은 르망24시의 전설적 머신이 엔진을 맹렬히 돌리며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리차드 밀은 르망24시 10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에디션 시계와 한정판 책자를 선보였다. ‘RM 72-01 르망 클래식 에디션’은 150개 한정 모델이다. 외관은 르망24시를 상징하는 녹색과 흰색을 조합해 표현했다. 또한 르망24시의 경주 출발 시간인 오후 4시를 상징하는 의미로 해당 인덱스 16에는 붉은색을 칠했다. ‘RM 72-01 르망 클래식 에디션’은 자체 개발한 인하우스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를 탑재했다.

르망24시 한정판 책자는 100주년의 역사를 사진으로 풀어냈다. 리차드 밀의 자회사 레 에디숑 서클 디아트Les Editions Cercle D’Art에서 출판한 <르망24시 1923-2023>이다. 책자에 수록된 사진은 대부분 미공개 사진이다. 르망24시의 역사를 새롭게 발굴한 셈이다. 총 320페이지 넘는 분량을 기념 앨범처럼 시간 순으로 배치해 쌓인 역사를 점층적으로 느끼게 했다. 르망24시의 역사적 순간과 주요 인물의 활동을 시기별로 분류한 점도 특징. 이번 한정판 책자에서 르망 클래식과 함께해온 리차드 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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