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호

비로소 스물여섯, 유인수

연기를 시작한 열여덟 살부터 모든 기억이 오직 작품 활동뿐이라는 배우 유인수. 요즘 그는 진짜 스물여섯의 청년으로 살기 위해 어느 때보다 큰 용기를 내는 중이다.

FREELANCE EDITOR 이선화 PHOTOGRAPHER 윤송이


그레이 컬러 재킷과 팬츠, 니트 톱과 타이,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 가죽 부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골드 링은 불가리.



스트라이프 패턴 재킷과 플라워 프린트 셔츠, 데미지와 주얼 장식 데님 팬츠, 네크리스, 벨트, 블랙 로퍼 모두 돌체앤가바나.



2017년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데뷔해 공백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어쩌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연기하는 친구를 보며 문득 연기 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16년에 열린 전국 청소년 연기 경연대회에 참여해 독백 연기 부문 대상을 수상한 것도 기회가 되었죠. 이후 <기억의 밤>, <학교 2>, <열여덟의 순간>, <비밀의 숲 2>, <지금 우리 학교는>, <환혼>, <나쁜 엄마> 등에 출연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통해 매번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유난히 여운이 길었던 캐릭터를 고른다면?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윤귀남을 연기하는 매 순간이 쉽지 않았어요. 내성적인 저와 너무 다른 귀남이를 연기하면서 일상까지 어그러지는 것 같았죠. 한동안 악역은 연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아이러니하네요. 힘들었던 만큼 큰 사랑을 받았고, 저 역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귀남이를 연기하던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것 같아요.

7월부터 방영 중인 tvN <경이로운 소문2>에 합류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이번에 맡은 ‘나적봉’은 어떤 인물인가요?
적봉이는 기존의 팀에 합류하는 신입 카운터예요. 우리가 살며 한 번쯤 경험했거나 경험하게 될 ‘신입’ 그 자체죠. 누구에게나 어리숙하고 부족한 시절이 있잖아요.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뜻대로 되지 않아 속으로 끙끙대고, 의도와 다르게 일을 그르치기도 하죠. 그런 적봉이를 보며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위로받길 바래요. 처음부터 잘하거나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차기작을 고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장르나 캐릭터보다 ‘얼마만큼 몰입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는 편이에요. 극중 인물과 동화되기 때문에 그게 누구냐에 따라 제 삶이 좌지우지되거든요. 시기도 중요하더라고요. 연기하던 당시 파고들고 곱씹던 것들과 맞닿을수록 마음이 가요. 가끔 지난 작품을 찾아보는데 그때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떠올라요. 그때의 생각과 기분, 마음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거든요.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인 만큼 소모되는 에너지도 클 것 같아요. 스스로를 어떻게 채워내나요.
사소한 것에 호기심이 많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깻잎이 이슈가 되었잖아요? 저도 깻잎의 정체를 알고 놀랐어요. 숱하게 깻잎을 먹으면서 깨의 잎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 날부터 저는 깨에 집중하고 있어요.(웃음) 깨는 어떻게 심고 나는지, 언제 어떻게 수확하고, 또 어떤 재배 방식을 거치는지, 더 나아가 깨 농사짓는 분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하루 종일 멈추질 않아요. 학창 시절에는 저의 이런 성격이 콤플렉스였어요.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걸 살피지 않아 오해를 사기도 했고, 실제로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도 허다했죠. 하지만 배우로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끈질기게 고민하고 사색하는 성격을 일종의 재능으로 여겨주시는 분들이 많아 꼭 맞는 업을 찾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20대 유인수의 삶도 궁금해요.
그러고 보니 그간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주 하지 못했네요. 최근 작품에서 굉장히 밝고 에너제틱한 사람으로 비춰졌지만 사실 저는 잔잔한 음악만 틀고, TV조차 들이지 않은 고요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웃음) 일과를 끝내고 적막한 집으로 돌아가면 우울해지는 분들도 있다는데 반대로 저는 그 적막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배우라는 동적인 직업을 가진 동시에 혼자서 골프 치고 등산 다니는 정적인 일상도 꾸려가고 있지요.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와 어울리는 노래를 꼽는다면?
다섯의 ‘유스’와 토이의 ‘리셋’. 제가 이 두 노래로 아침을 시작했거든요. 영화 <비긴 어게인>을 보면 “음악을 듣는 순간 모든 평범한 순간이 아름다워진다”는 대사가 나와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잖아요. 매일 벌어지는 상황이나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만요. 그 순간순간을 증폭시켜주는 게 음악이죠.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고요.

벌써 가을이네요. 남은 2023년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올초부터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주 어린 시절 말고는 가족과 여행한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제가 출연한 작품을 보며 즐겁게 응원해주는 가족들 덕분에 항상 든든해요. 이런 타이밍과 분위기에 힘입어 여행과 같은 멋진 추억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하필 막내 동생이 지금 군대에 있긴 하지만, 11월이 첫 휴가라고 하니 그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뻔하지만 궁금하네요. 오늘 촬영 소감은 어떤가요.
<럭셔리>와는 첫 작업이잖아요. 솔직히 <럭셔리>라는 이름 탓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촬영에 임해야 할까 적잖은 고민을 했어요. 엄청나게 어렵고 부담스러울 것 같았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러모로 편한 촬영이었습니다. 멋진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최고의 스태프들이 힘을 보태주셨고 촬영장이 아니면 입어보기 어려운 근사한 옷도 여러 벌 입었죠. 사실 오늘 새벽까지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신을 연기하고 왔어요. 잔뜩 날이 서 있었는데 많은 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사람 유인수로 리셋시킬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오버사이즈 코트와 화이트 셔츠, 쇼츠 모두 발렌티노. 블랙 타이와 네크리스, 이어 커프, 가죽 벨트, 레이스업 슈즈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


STYLIST  박송미   HAIR  제레미(팀 바이 블룸)  MAKEUP  지수(팀 바이 블룸) COOPERATION  발렌티노(2015-4655), 돌체앤가바나(3442-6888),
불가리(2056-0170), 보테가 베네타(3438-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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