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호

MUSEUM DINING IN PARIS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떠나는 특별한 미식 투어. 전시만 보고 지나치던 미술관의 다이닝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GUEST EDITOR 한동은

LA HALLE AUX GRAINS AT BOURSE DE COMMERCE

2021년 개관 이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파리의 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 케링 그룹의 회장이자 현대미술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가 오랜 기간 품고 있던 과업의 결과물로, ‘피노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프랑스 옛 상업 거래소 건물을 복원해 완성했다. 특히 원형 천장의 프레스코 벽화 ‘무역의 파노라마’는 1889년 그려진 작품을 그대로 복원한 것으로 이곳의 하이라이트다. 이 벽화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명당은 따로 있다. 바로 미술관 가장 위층인 3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라 알 오 그랭’. 한쪽 창밖으로는 ‘무역의 파노라마’와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중앙 원형 홀이, 반대쪽 창밖으로는 퐁피두 센터가 내다보인다. 인테리어는 미술관의 다른 공간과 동일하게 로낭과 에르완 부훌렉Ronan & Erwan Bouroullec이 맡았다. 그들은 유럽 중세 시대 레이스의 일종인 기퓌르guipure를 현대적인 격자무늬로 재해석한 커튼을 활용해 공간을 구획했다. 유연하게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빛이 파고들어 화이트와 모노톤의 차분한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상업 거래소로 사용되기 이전, 이 건물은 대규모 곡물 거래소인 ‘라 알 오 블레La Halle aux Bls’였다. 그 정체성을 계승한 레스토랑 ‘라 알 오 그랭’은 곡물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식재료로 독창적인 메뉴를 선보인다.미쉐린 3스타 셰프이자 부자 관계인 미셸 브라Michel Bras와 세바스티앙 브라Sbastien Bras가 주방을 이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곡물은 프랑스 남부 작은 시골 마을 오브라크Aubrac에서 공수한다. 보리, 기장, 완두콩, 팥, 커민 등 50여 가지 곡물을 싹을 틔우거나 굽고, 발효하고, 튀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2 Rue de Viarmes, 75001 Paris




FABULA AT MUSÉE CARNAVALET

‘역사광’이라면 루브르 박물관보다 더 먼저 이곳을 찾을지도 모른다. 마레 지구 중심에 위치한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파리혁명, 루이 14세, 마리 앙투아네트, 빅토르 위고 등 프랑스 역사의 풍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컬렉션과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2016년 대대적인 보수 및 확장 공사를 거쳐 2021년 다시 개관했다. 지난해, 루이 14세 동상이 지키고 있는 박물관의 프랑스식 정원에 레스토랑 ‘파뷜라’가 등장했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5월 초에 시작해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10월 말까지 시즌제로 운영하는 레스토랑 파뷜라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낭만적인 파리의 저녁을 선사한다. 시즌마다 새로운 셰프와 믹솔로지스트를 영입해 매해 다른 느낌의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 두 번째 시즌인 올해는 셰프 쥘리앵 뒤마Julien Dumas와 세계적인 스타 믹솔로지스트 레미 사바주Rmy Savage가 17세기 프랑스식 정원을 모티프로 한 메뉴를 선보인다. 해산물과 채소, 식물을 잘 활용하는 셰프로 알려진 쥘리앵 뒤마는 신선한 재료에 미묘한 허브의 아로마를 혼합한 요리를 선보인다. 비트 케첩, 루바브 버터, 완두콩 가스파초 등 제철 채소로 만든 다채로운 소스가 입맛을 돋운다. 믹솔로지스트 레미 사바주 역시 여름에 어울리는 살구, 베리 등의 과일 베이스에 금잔화, 시소잎 등으로 마무리해 강렬한 아로마의 칵테일을 낸다. 해산물은 지속 가능한 어업을 통해 수확한 것만을 공수하며, 야생 허브 또한 파리 도시 농장에서 조달한다. 음악 역시 파뷜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파리의 젊고 감각적인 DJ와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프로그램 ‘파뷜라라라Fabulalala’를 운영한다. 16 Rue des Francs Bourgeois, 75004 Paris




LE RHODIA AT MUSÉE BOURDELLE

몽파르나스 인근에 자리한 ‘부르델 박물관’은 프랑스 조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Antoine Bourdelle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사용하던 작업실을 보존하고 확장해 만든 곳이다. 팬데믹 시기에 2년이 넘는 기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위해 문을 닫았던 박물관이 올 3월 재개장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새로운 카페 레스토랑 ‘르 로디아’가 문을 열었다는 것. 부르델의 딸 로디아와 그의 남편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셸 뒤페Michel Dufet가 살았던 집을 개조한 곳으로, 로디아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가구는 20세기 중반의 빈티지 제품과 다양한 목재로 제작한 가구를 함께 배치했다. 특히 7~8인 크기의 대형 식탁은 부르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돌과 목재 등의 재료로 제작했다. 산뜻한 노란색 벽, 높은 층고와 통창, 모던한 조명들이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인상을 전한다. 창밖으로는 부르델 박물관의 시그너처인 조각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부르델의 청동 흉상과 벽 조각상을 조망할 수 있는 복도 테라스 자리 역시 인기가 좋다. 장 르네 샤시놀Jean-Ren Chassignol 헤드 셰프는 부르델과 그의 견습생으로 함께 일한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출신의 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남미 음식과 작가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요리를 혼합한 메뉴를 선보인다. 마늘 수프, 세비체, 엠파나다 등 편안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18 Rue Antoine Bourdelle, 75015 Paris




ROSE BAKERY AT MAISON DE BALZAC

파리를 여행하다 보면 한 번쯤은 ‘로즈 베이커리’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파리의 ‘르 봉마르셰Le Bon March 백화점’, ‘주 드 폼Jeu de Paume 미술관’, ‘낭만주의 박물관Muse de la Vie Romantique’ 등에 지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음식과 식재료에 관심이 많던 영국인 로즈Rose와 그의 남편인 프랑스인 장 샤를 카라리니Jean-Charles Carrarini가 2002년 시작한 로즈 베이커리는 지난 21년간 파리는 물론 런던, 뉴욕, 도쿄 등 전 세계 도시 곳곳에 지점을 오픈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 로즈 베이커리의 문을 열 때의 정체성은 변화하지 않았다.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하고, 채식이나 글루텐프리, 락토프리 등 모든 이의 다양한 식단에 맞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지점은 쾌적하고 조용한 파리의 부촌 16구에 위치한 ‘발자크의 집’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박물관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가 7년간 살던 집에 꾸민 곳으로, 파리 3대 문학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 작가의 초판, 원고, 삽화, 개인 소장품 등을 전시하며 주기적으로 기획전 역시 개최한다. 발자크의 집과 목가적인 마당을 차지하는 로즈 베이커리는 마치 누군가의 옛 비밀정원에 들어온 듯한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화려한 기교 없이 집에서 내어주는 듯한 편안한 맛의 세이버리 메뉴들이 눈에 띈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키슈quiche, 오늘의 수프, 샐러드, 샌드위치는 물론 스콘, 타르트, 비스킷 등의 베이커리류도 있어 브런치나 티타임에 제격이다. 47 Rue Raynouard, 75016 Paris




FOREST AT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근현대 미술을 좋아한다면 파리에서 놓칠 수 없는 미술관이 있다.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샤갈 등 유럽을 대표하는 20세기 화가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는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이다. 개선문과 에펠탑 사이에 위치해 다른 관광지로의 접근이 용이하며, 흥미로운 동시대 미술을 전시하는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미술관’과 건물을 공유해 함께 둘러보기도 좋다. 2년 전, 셰프 쥘리앵 세바그Julien Sebbag가 아트 디렉터 겸 디제이 도리옹 피셀Dorion Fiszel과 손잡고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 레스토랑 & 바 ‘포레스트’를 선보였다. 포레스트는 미술관 내부와 에펠탑이 한눈에 담기는 외부 테라스에 펼쳐진다. 내부 벽에는 파리의 라이징 아티스트 알리스 그리니어 느부Alice Grenier Nebout가 그린 숲과 꽃 드로잉이 영사되어 시시각각 움직이는 몽환적인 디지털 숲을 관람할 수 있다. 쥘리앵 세바그는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옥상에 위치한 해산물 레스토랑 ‘토르투가Tortuga’, 채식 레스토랑 ‘크레아튀르Cratures’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은 스타 셰프다. 그는 자신의 시그너처인 해산물과 채소 요리에 지중해와 동양의 터치를 가미한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참치 타르타르를 골드 키위, 민트, 샬럿과 함께 버무리고 구운 헤이즐넛으로 식감을 더한 ‘블룸Bloom’, 로스트 비프와 감자를 얇게 썰어 밀푀유처럼 겹쳐서 샐러리로 만들고 치미추리 소스를 곁들인 ‘블러드Blood’ 등이 그 예. 숲을 모티프로 한 칵테일도 인기다. 물, 불, 호밀이라는 3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독창적인 칵테일을 완성했다. 11 Avenue du Prsident Wilson, 75116 Paris




LES OMBRES AT MUSÉE DU QUAI BRANLY

7구 센 강변에 위치한 ‘케 브랑리 박물관’은 파리에서 가장 이국적인 다양한 문명을 탐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 비유럽권 대륙의 초기 문명 유물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건축을 맡았고, 권위 있는 조경가 질 클레망Giles Clement이 수직 정원을 조성했다. 이곳의 레스토랑 ‘레종브레’는 거장 셰프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가 감독한다. 프랑스 각 분야의 대가들이 총집합해 일군 박물관인 것이다. 루프톱 테라스에 위치한 레종브레는 360도로 파리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눈앞에 펼쳐지는 에펠탑 전망이 압권이다. 지난해 알랭 뒤카스는 자신의 제자 알렉상드르 상페르Alexandre Sempere에게 주방장 자리를 위임했다. 새로운 메인 셰프는 알랭 뒤카스 특유의 지중해 스타일을 기반으로 현대 프랑스 요리의 독창성과 지속 가능한 요리 기술을 결합한 요리를 제공한다. 여름이 가기 전 이곳에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다. 테라스 한쪽 끝에서 스타 믹솔로지스트 마고 르카르팡티에Margot Lecarpentier와 협업해 ‘바 데종브레Bar des Ombres’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셰프 알렉상드르는 바에서 즐길 수 있는 핑거 푸드를 특별히 고안했고 마고는 핑거 푸드와 조합이 좋은 총 12종의 칵테일을 선보였다. 두 젊은 셰프와 믹솔로지스트의 협업은 올 10월까지만 만날 수 있다. 27 Quai Jacques Chirac, 75007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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