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호

불완전한 것들을 위한 예술, 정관·김혜주

도예를 기반으로 에술과 공예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는 두 작가 정관과 김혜주가 모였다. 8월 16일부터 9월 9일까지 지우헌에서 함께 <미해결의 장> 전시를 꾸린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이기태

정관과 김혜주 작가는 세대가 다르지만 ‘도자’를 매개로 이어졌다. 두 작가 모두 전통적 매체라는 흔한 고정관념을 깨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열린 챕터로 넘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들이다. <미해결의 장>이란 전시명의 ‘미해결’은 어쩌면 이들 머릿속을 부유하는 질문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아닐까. 예술가는 특정 전시만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문점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 평생토록 작업을 지속하며 답을 찾아가는 고행의 길을 걸은 후에 비로소 “이만큼은 깨달았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바로 작가니까 말이다. 두 사람 모두 도예라는 틀 안에서 완전함을 꿈꾸며 불완전한 요소들을 다룬다. 정관은 이 분야가 가진 조형성과 도상에 팝아트적인 색감과 문자를 접목하고,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공예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해체하지 않은 듯 해체하고, 또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면서 그렇지 않은 그의 작품은 마치 공예의 경계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김혜주 작가는 도자와 소리를 함께 작업하는 작가로, 특정할 수 없는 음과 우연성, 불규칙함을 간직한 도자 사이의 간극을 조명한다. 각자 자신만의 작품을 전개하지만 닮은 점이 많은 두 작가. 전시를 앞둔 지금 이들을 만나 그들의 작업 세계와 이번 전시의 신작에 관해 물었다.




정관  국민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한 뒤 뉴욕 시라큐스 대학교 VPA 도예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진행 중이다. 2019년 갤러리 밈에서 전을 개최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 작가로서 경기도자미술관과 함께 2022년 <숨겨진 빛; 한국의 현대도예>전을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열기도 했다. 이 외에도 패션 브랜드 얼킨, 이솝 등과 협업을 진행했다. 현재 국민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출강한다.




정관, ‘What to Value B#2’, 2022, 혼합토에 백유, 산화소성 후 전사, 27×13×22cm, 사진 제공: 작가


정관

작품에 조금은 직접적인 텍스트를 사용해 사유를 더하고 있죠. 이러한 방법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도자의 도상을 변형, 왜곡, 보존하는 방식을 통해서 완전하고 경직된 형태들에 내용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왔습니다. 텍스트도 마찬가지로 유약의 왜곡, 흘러내림을 통해 유사한 기능을 하고자 했던 시도의 일환입니다. 작업에 사용하는 문자는 기술, 숙련, 완성도, 조형성, 개념 등 공예와 예술 분야에서 통용하는 언어입니다. 한글, 영어, 한자 등 다양한 문화권의 문자를 사용해 시대성을 드러내죠. 쉽게 읽을 수 없는 해체적 양식인 동시에 심미적 수단이자 의미 전달을 위한 가변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어요.


작가님의 작업에서 도상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기능하나요?

제 작업에서 ‘도자의 도상’은 ‘도예’라는 분야가 가진 경직성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도예에서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제작 과정이나 진행 형식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거죠. 저는 국내에서 도예 교육을 받았고, 학생으로서 평가를 받기도 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평가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피드백이 오가는 가운데 기존에 했던 것들을 답습할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도예가 어느 정도 경직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어요. 예술이 기존 예술에 저항하며 발전한 것처럼 도예 역시 도예에 저항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러한 도상을 차용해보았습니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첫째는 공예와 예술에서 관습에 대한 저항과 이를 통해 정답이 아닌 방향에서 가치를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둘째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죠. 요즘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고 그들의 욕망을 고스란히 좇아서 산다고 생각해요. 저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고 만들면서,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담습니다.


이번 전시 출품작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옥을 개조한 ‘지우헌’이라는 공간은 정말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서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이러한 특별한 공간과 작품이 자연스럽게 공명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일은 오히려 재미있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작 ‘What to Value’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도 기술, 기능, 완성도 등과 같은 공예와 예술에 맞닿아 있는 단어를 전통 찻잔의 꽃무늬 패턴과 결합해 선보입니다. 제 트레이드마크 기법인 파편화된 유약, 흘러내린 형체 등도 볼 수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저의 작품 세계의 정수를 보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혜주  서울여자대학교 조형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도예계의 신예. 중랑아트센터, 바롬갤러리, 공예트렌드페어 등에서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지우헌이 발굴한 첫 번째 신진 작가인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정식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도예에서 주목받는 신예인 만큼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욱 넓은 영역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혜주, ‘1/x, 1/xx, 1/xxx•••••_B’, 사진 제공: 작가


김혜주

작가님의 작품은 도예와 음악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신선합니다. 이렇게 2개의 다른 장르를 함께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소리에 민감했어요.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연주해보기도 하고 합창을 해보기도 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귀에 꽂히는 음에 관심이 많았어요. 소음과 일상적인 소리는 어떠한 높낮이가 있는 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부유하는 음들이 모여 멜로디가 되고 화음을 이뤄 결국은 특정한 소리가 되는 순간에 환희를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 관심이 있는 건 음악이라기보다는 현대음악의 재료 중 ‘미분음’입니다. 이는 정의되지 않은 음을 뜻하는데요. 쉽게 말해 불완전하거나 어긋난 음입니다. 도예 역시 수분과 가마의 상태에 따라 수없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모가 있는 듯합니다. 그 둘 사이 접점을 찾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전개하는 중이에요.


전반적인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으며, 이것을 어떻게 작업으로 발전시키는지요? 이번 출품 작품에 빗대어 설명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과 멜로디, 또는 글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작업 중 ‘1/x, 1/xx, 1/xxx•••••_B’는 오선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오선지 안에서 미분음은 어떤 형태로,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한 작업입니다. 표준음과 표준음 사이에 무수히 많은 미분음이 존재하니, 이는 오선지 위 어딘가에서 배회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음의 조각들_미분음 B(Pieces of Note_Microtone B)’에서는 표준음을 의미하는 영상 속 원과 미분음을 뜻하는 도자기가 동시에 공존하며 표준음에서 조금씩 어긋난 미분음을 시각화하려 했는데, 이는 표준음과 미분음이 대화하는 듯한 형상을 피아노로 표현한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의 음악을 설명한 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영상 속 원이 미분음 위에 덧입혀지며 그림자가 지는 모습을 나타냈는데, 표준음과 미분음이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결국 표준음에 의해 미분음의 그림자가 지면서 미분음이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형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구상하는 신작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전시는 모두 ‘미분음’을 주제로 한 신작으로 구성합니다. 흔히 소음으로 여겨지는, 형태가 불분명한 미분음과 기능이나 완성도 등을 추구하는 도자의 제작 과정에서 흙의 물성으로 인해 생기는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형태에서 교집합을 찾았어요. 그다음 미분음을 흙의 변화와 움직임에 빗대어 표현하거나 영상 매체를 더해 미분음과 일직선상에 존재하는 표준음이 동시에 공존하도록 만드는 등 미분음과 도자 공예의 교집합을 시각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도예에서 추구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일지 사유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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